[정신의학신문 : 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씨는 최근 직장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초기라고 해서 치료를 받으면 앞으로 생활하는 데에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진료 시간에 듣기는 했지만, 그 날 이후 온갖 잡생각이 줄어들지를 않고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주변에서는 금방 괜찮아질 거라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A씨 스스로도 그래 보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심적인 불안함은 전혀 나아지지를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잠을 설치게 되고, 요즘에는 ‘내가 암에 걸린 것이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난 병에 걸려 마땅해’라는 생각을 자주 하거나,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자살에 대한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중년에 주로 겪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바로 ‘건강’입니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 상에 큰 문제를 느끼지는 않지만 일에서, 가정에서 오는 무게 때문에 늘 피곤함에 시달리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주관적으로 강하게 느끼지요. 그만큼 실제로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그 고통은 단순한 개인의 괴로움에 그치지 않고 주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심지어 불행히도 중년에는 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의 발생률이 20-30대에 비해 상승하게 됩니다.

신체 질환의 발병은 정신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데요, 이는 아프다는 사실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주변 환경에 대한 여러 걱정도 한몫을 하기도 하지만 질병 그 자체, 신체의 내부 변화 혹은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약물이 어떠한 정신과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암을 포함한 여러 질환에서 나타나는 전염증성 사이토카인(pro-inflammatory cytokine)의 변화가 피로감뿐 아니라 우울증, 인지 기능의 저하를 일으킨다고도 합니다. 그 외에도 만성적인 통증의 경우 불면, 우울, 불안 등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럼 신체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정신과적 문제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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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문제는 역시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증 질환, 혹은 만성 질환을 겪는 분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처지로 인해 적응의 어려움을 겪는데, 심한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우울증은 자살 시도의 위험성을 높일 정도로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경우의 우울증은 만성적인 신체질환으로 인해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본인과 주위의 관심이 우울증 자체보다는 신체 질환에 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료의 필요성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들도 흔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서는 우울증의 약물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울증이 의심될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의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불안, 초조도 주의해야 할 증상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정도의 불안보다는 훨씬 더 심한 상태를 말하는데, 주로 입원 중 병원을 뛰쳐나가려고 한다거나 갑자기 치료를 거부하며 이유를 알 수 없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환청, 혹은 편집증적 증상도 동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으며, 약물 처치를 통한 증상 조절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외에도 일종의 혼란 증상(Confusion)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벼운 경우에는 오늘의 날짜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에서 끝나지만, 심한 경우에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거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주로 신체적 문제가 급격히 악화되거나 수술 후, 혹은 어떠한 약물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섬망(Delirium)’이라고 부르며 특히 고령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섬망은 보통 원인이 된 신체적 문제가 해결이 되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경우가 많으며, 정신과적 처치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불면, 신체화 증상 등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러한 정신과적 증상은 기존에 앓고 있는 신체 질환의 치료에 큰 장애물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에서 언급되었던 문제들은 대부분 만성 질환, 혹은 중증 질환에서 더 흔히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의 순응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지요. 이는 환자 본인과 주위 사람들을 모두 지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질환을 치료받고 있건 위와 같은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이 되면 언제든 본인의 주치의와 상의하고, 필요할 경우 정신과 증상을 평가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병이든 가능한 한 빨리 발견해 조기에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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