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50세 A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자신감도 부쩍 떨어졌다. 이유는 아마도 이번에 부서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 때문이다.

훌륭한 젊은이다. 요즘은 취직을 위해 온갖 스펙을 갖추어 온다고 하더니 확실히 다재다능하고 패기가 넘친다. 새로운 걸 습득하는 능력도 훌륭하다. 정말로 나보다 머리가 몇 배는 더 빨리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뿐인가, 체력은 어찌나 좋은 지 회식 다음 날에도 업무에서 흔들리는 일을 본 적이 없다.

 

‘나도 한창 때는 잘 나갔는데…’

속된 말로 나이가 깡패라고, 그 신입사원만 보면 나 스스로가 저물어 가는 태양 마냥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초라 해진다.

그저 나이를 먹었으니 저 친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일 뿐, 내가 저 젊은 사원보다 나은 게 도대체 뭐가 있는가?

 

중년은 무거워요. 네, 무겁습니다.

배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년이라는 시절은 가정과 일에서 많은 책임을 떠안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짊어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굉장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한 영화에서 나온 대사가 기억나네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저는 이걸 뒤집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큰 책임에는 그에 합당한 큰 힘이 필요하다.”

 

사진_픽셀

 

오늘은 중년의 가장 큰 무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중년은 분명 그 어느 세대보다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해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중책에서 훌륭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가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을 가지고 있지요.

그것은 바로 정신화(마음 헤아리기, Mentalization)입니다.

 

사연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나이가 들어 30대가 지나고 나면 외면적으로 보이는 능력은 감소하는 부분이 분명히 많이 있습니다.

신체적 능력이 대표적이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능력이나 무언가를 학습하는 능력 또한 예전 같지 못하죠.

얼핏 보면 정말로 중년은 ‘지는 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년의 무기는 보다 더 은밀하고 깊은 곳에 있습니다.

정신화(마음 헤아리기, Mentalization)는 요즘 매스컴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는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일종으로,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이나 생각, 의도 등을 파악하는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는 대인관계를 형성, 유지해 나가고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화는 이미 어린 시절에 부모와의 적절한 애착관계를 통해 형성이 된다고 알려져 있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화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 방법이 나와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인기를 통틀어 정신화 능력이 모두 동일하다고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운동 능력도 반복 연습을 통한 단련을 하면 향상이 되고, 학습 능력, 계산 능력 등이 연습과 반복을 통해 더 나아질 수 있듯이 정신화 능력도 분명히 향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화 능력의 향상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양한 유형의 대인관계 경험과 지식의 축적은 중년에게 사람에 대해 보다 깊은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정신화 능력이 성숙하게 되면 다양한 세대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그들을 이해하며 아우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이지요.

 

사진_픽셀

 

노인 의학의 전문가였던 로버트 버틀러(Robert Butler)가 언급한 중년의 과제 중 하나는 새로운 세대와 적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자신의 능력과 힘을 책임감 있고 윤리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에릭슨(Erik Erikson)은 중년의 과제로 생산성(Generativity)을 꼽았는데, 이는 자신의 아이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세대를 이끌고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공감하는 중년의 이러한 역할들은 절대로 단순한 지식만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지혜가 필요하죠.

그리고 정신화(마음 헤아리기, Mentalization)는 지혜로운 사람의 필수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을 쌓아온 지식과 경험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해 남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것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그런 이야기를 듣지요.

저는 이런 사람들 중 상당수는 ‘정신화’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정신화(마음 헤아리기, Mentalization)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그 중요성은 중년뿐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똑같이 해당되죠.

정신화의 절대적인 능력은 분명히 개인 간에 차이가 존재하지만, 한 개인의 인생에서 정신화 능력이 최고조에 달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중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혹시 너무 바빠서, 지금은 너무 지쳐서 남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는 않았나요?

노력을 멈추는 순간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기회는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정신화(마음 헤아리기, Mentalization)는 참 따뜻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중년은 그 능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기에 중년이 ‘인생의 황금기’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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