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40세 여성 OO씨는 얼마 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찾을 결심을 했다. 내가 강박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근에는 집안의 물건 하나하나가 내 생각대로 정리되어 있으면 견디지를 못하고, 혹시나 손에 무언가 묻었는지 몰라 하루에도 수십 번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손세정제를 사용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털털하고 수더분하다는 이야기를 주로 듣는 그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후 그녀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즈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과도하게 매달리고 있었다.

너무 여러 번 씻고, 잠긴 문을 확인하느라 직장에 지각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휴일에는 괜히 나가서 고생하느니 집에 있자 싶어 친구들도 전혀 만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강박증이 정말로 생길 수 있는 걸까?
 

사진_픽셀


‘강박증’은 우울, 조울과 마찬가지로 전문가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쓰는 용어 중 하나입니다. 주로 무언가에 집착을 하거나 특별한 습관이 있을 때 ‘강박이 있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단어의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정신의학에는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라는 병이 있습니다. 강박장애는 우리가 원치 않는 생각이 반복해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강박 사고(obsession)와 이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하는 반복적인 행동(compulsion)이 과도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경우 주로 진단합니다. 일반적으로 10대, 혹은 20대에 호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전적,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함께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연구들을 따르면 약 15% 미만의 강박장애는 35세 이후에 진단이 된다고 합니다. 이를 후발성 강박장애(Late-onset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라고 부르는데, 여러 면에서 어린 나이에 발생하는 강박장애와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늦은 나이에 발생하는 강박장애는 가족력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적다고 합니다. ‘타고났기 때문에’ 병이 생기는 경우는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강박장애에 비해 적다는 뜻이지요. 중년에 겪게 되는 여러 트라우마들로 인한 스트레스(직업적 어려움, 가족 혹은 지인의 상실 등)는 기존에 강박적 성향이 없던 사람도 강박장애를 앓도록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는 진단 당시 강박 장애의 증상뿐 아니라 우울증, 혹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불안 장애 등이 동반되어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뿐만 아니라 후발성 강박장애(Late-onset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의 경우 주어진 상황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임신이 대표적인데,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와, 태아에 대한 염려가 한데 뭉치면서 청결, 오염에 대한 강박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들도 있다고 합니다.

강박 장애에서의 ‘강박 사고’는 기본적으로 내가 원치 않는 생각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보다는 먼저 나 스스로를 괴롭게 만듭니다. 그 생각이 논리적이지 않고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울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강박장애를 오래 앓다 보면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도 굉장히 흔합니다. 이와 더불어 30대 이후에 발생한 강박 장애는 갑작스러운 직장에서의 기능 저하, 가정 내 불화 등 삶의 중요한 영역에서 무시하지 못할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의 치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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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 장애는 그 원인이 무엇이건 뇌에서의 특정 신경회로의 이상, 그리고 그 안에서의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진단이 된 이후에는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치료는 주로 약물 단독 치료, 혹은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의 병행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강박장애의 발병 시기와 관계없이 동일합니다. 

강박장애는 질병이 오래될수록, 발병 시기가 빠를수록, 증상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치료 예후가 좋지 않으며, 병전 사회적 기능이 양호하고 증상의 기간이 짧거나 그 정도가 약할 경우 치료의 예후가 좋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기 발병한 강박장애보다는 후발성 강박장애가 치료에는 더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혹시 극심한, 혹은 오랜 스트레스 후 사소한 것에 집착을 많이 하고 스스로 강박 장애가 생겼다고 생각을 하신다면, 그리고 괴로워하고 계신다면, 꼭 진료를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병이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혹시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조기에 발견할 경우보다 더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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