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여성은 약하다. 여자는 남자보다 쉽게 상처 받고 쉽게 무너진다. 여자들은 심적으로 나약해서 한번 상처 받으면 오랫동안 무력하게 주저앉아 버린다. 여자는 여리고 유약해 보호받고 관심 받아야할 대상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디 가서 함부로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몰상식한 사람 취급 받으며 뭇매를 맞을 문구들이다. 가뜩이나 남혐 여혐의 코드가 시끄러운 시국이니 말이다. ‘여자는 보호 받아야할 대상’이라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눈초리를 받아 마땅한 현실이다. 물론 신체 골격이야 여성이 더 연약한 것이 당연한 생물학적 사실이겠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멘탈’에 대한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쉽게 상처 받고 무너진다는 인식에 대한 이야기 이다. 대중의 무의식에 이러한 ‘여성은 연약하다’라는 인식은 생각보다 깊게 뿌리 박혀 페미니즘, 양성평등의 부단한 노력에도 쉽사리 걷히지 않고 있다.

다소 위험한 발언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차별적인 인식은, 실제로 주변에서 사람에게 상처받고 우울감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신적 외상 이후에 발생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같은 질환의 경우에도, 남성들은 일반적인 트라우마 전반에 걸쳐 질환이 발생하지만, 여성들의 경우에는 유독 대인관계상의 폭력 등에 의해 발생하는 빈도가 유의하게 높다고 알려져 있다(Kessler RC 외, 1995). 물론 성추행이나 강간 등과 같이 주로 여성이 공격 받는 입장의 사회적 폭력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같은 여성의 사회적 스트레스 취약성에 대해, 보다 생물학적인 원인을 제시하는 연구들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 Bonn 대학의 연구팀에서는 일명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Oxytocin)이 공포 조건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사회적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에 작용하는 옥시토신의 중요성에 대해 조명했다. 사회불안 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등과 같은 질환의 발병 원인에 대해, 행동이론적으로는 파블로프 조건화 반응에 의한 기전을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 스트레스나 특정한 위협 사건 등과 같은 공포 자극에 조건화되며 일상생활에서도 불필요한 조건반사적 과각성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Bonn 대학 연구팀은 이러한 과정에 작용하는 옥시토신의 역할을 알아보고자, 실험 대상들을 상대로 중립적인 사진과 사회적 맥락의 사진을 각각 제시하며 전기충격 자극과 함께 조건화를 시켰다. 그리고 전기충격에 의해 사진 자극이 조건화되는 그 과정 중에 실험군 대상에게는 옥시토신을, 대조군에게는 식염수를 투여했다. 그 결과 옥시토신을 투여한 집단에서는 사회적 자극에 대한 공포조건화가 유의하게 강화되었고, 조건화에 따른 뇌 MRI 영상에서도 공포 회로에 연관된 영역의 활성화가 증가됨을 관찰할 수 있었다. 옥시토신에 의해 사회집단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한 회피 반응이나 공포 반응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통해, 여성에서의 옥시토신 레벨이 남성보다 더 높은 사실과 연관 하여 여성에서의 높은 사회불안장애 유병율의 원인을 되짚고 있다.

공포 자극이나 불유쾌한 자극에 대한 조건화 반응은 불필요한 과각성의 경우 불안장애를 유발 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개체의 안위와 보존을 위한 진화적 발달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야생에서의 생존을 통한 진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의 진화 또한 거듭해 왔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타인의 얼굴 표정이나 대인관계에서의 분위기 같은 사회적 상황 정보 속에서, 본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미묘한 요인을 반사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진화를 촉진시키는 생물학적 요인으로 옥시토신이 작용해왔다면, 옥시토신은 개체를 사회적 철퇴나 소외,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해주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연구결과와는 달리 옥시토신을 분비할 경우 기존에 형성된 공포 조건화 자극에 대한 반응의 ‘소거’가 촉진된다는 실험결과 또한 밝혀진 바 있다. 옥시토신이 투여될 경우 ‘누군가가 나를 위협할 것이다’ ‘내가 공격 받거나 배신당할 것이다’라는 위협 사실과 짝지어져 조건화되었던 자극들에 대한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상대방의 행동과 표정, 말투를 ‘신뢰’하게 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옥시토신은 기존에 형성되었던 사회적 자극에 대한 경계를 잠재우고 타인을 ‘믿을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새로운 자극에 대한 공포 조건화를 강화하며 타인을 ‘경계할 수 있게’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사실은 옥시토신이 출산 후 모유수유중인 여성에게서 많이 분비된다는 점에서 또한 괄목할만하다. 아이를 품에 안고 수유하는 여성은 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보내게 되지만, 동시에 아이와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주변에 대한 경계에 더욱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족보존의 모성애가 무리생활과 사회생활의 역사 속에 진화해온 과정에는 ‘사랑의 묘약’ 옥시토신이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여성은 남성보다 쉽게 상처 받는 존재일 수도 있다. 표현이 과하다면 적어도 남성보다 주변에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성을 좀 더 민감하고 더 많이 상처 받게 하는 머릿속 주인공이 만약 옥시토신이라면, 그것은 그만큼 그들이 누군가를 좀 더 사랑하고 더 많이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여성은 진화적으로 모성의 상징일진대, 모성은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헌신의 아이콘인 동시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거는 경계의 원천이다. 비록 그 경계와 신뢰가 모성을 파괴와 슬픔으로 몰고 간다 할지라도 말이다.

당신이 더 많이 상처 받고 더 많이 눈물 흘리는 이유는, 당신이 멘탈이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신뢰하고 있기 때문일수 있을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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