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홍종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애착(attachment) : 양육자나 특별한 사회적 대상과 형성하는 친밀한 정서적 관계

 

백화점 지하 1층.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제 귀에 확 와 닿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오빠 미안해. 이쪽인 줄 알았는데 반대쪽이네."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 전 바로 뒤를 돌아 남편을 확인했습니다. 정확히 제가 상상한 모습이더군요. 이 여성의 목소리가 그랬습니다. 정말 남편에게 미안한 목소리였죠. 그리고 그 목소리 안에 느껴지는 불안. 그것이 제 귀를 자극했던 것이죠.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남편은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소아 환자를 치료하며 '애착'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특히 볼비가 주장한 생애 6개월 이후에 형성되는 '안전기지(secure base, safe base)' 애착 단계는 단골 메뉴입니다. 기어 다닐 수 있게 된 아이는 부모를 안전 기지 삼아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는 행동을 합니다. 부모가 안전 기지 역할을 잘할수록 아이는 탐색 행동이 많아지죠.

 

이제 마흔이 넘은 A. 그녀는 이 직장에서 일한 지 벌써 20년입니다. 그녀에겐 동기가 한 명 있습니다. 특별히 자신보다 진급이 빠르지도 않고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 그 친구는 너무 당당해요. 모든 일이 저와 달리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저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부정적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더 높다고 예상합니다. 그래서 항상 결과를 대비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모든 일에 주눅이 들고 우유부단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부정적 결과를 불러올 것으로 생각하는데 결정을 쉽게 내릴 순 없겠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보통 이들에게 '안전기지'가 제대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죠.
 

사진_픽셀


제 어리석은 질문에 자퇴한 고등학생 환자가 해 준 말입니다.

"선생님 고양이를 키우기로 했어요."
"정말이니? 엄마가 이미 강아지를 키우고 있잖아."
"뭐 어쩔 수 없죠."
"너도 참 대단하다. 그런데 고양이와 강아지는 잘 다툰다던데. 누가 이기니?"
"뭘 물어봐요. 낮에는 제가 있으니 고양이가 이기고, 저녁 되면 엄마가 돌아오니 강아지가 이기죠."

그렇습니다. 고등학생 환자는 고양이에게 안전기지인 것이고, 그의 어머니는 강아지에게 안전기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양이와 강아지는 각자의 안전기지가 있을 때 기를 펼 수 있었습니다.

 

애착은 양육자와 관계에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도 이뤄지죠. 혹시 아내의 어두운 얼굴, 남편의 처진 어깨가 보이시나요? '부모와 자식 간 애착'만큼 '부부간 애착'이 중요합니다.

레지던트 시절, 일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정신 치료한 적이 있습니다. 이 할머니의 말을 끝으로 오늘의 글을 마치려 합니다.

"남편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도 좋았지만, '난 언제나 당신 편이야. 당신 뒤에 항상 내가 있어.' 이 말이 그렇게 좋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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