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전 안 좋은 습관이 있는데 어디든 약속에 자꾸 늦어요.

친구들 모임에도 늦고 일 제출기한도 늦고 아이 어린이집 차량 태우러 나가는 시간도 늦어요. 약속이 있으면 미리부터 움직여서 준비하는데도 결국은 아슬아슬하게 시간이 맞춰지거나 늦거나 해요.

일에서 늦는 건 좀 더 완벽하게 마무리해서 제출하고 싶어서라지만 약속시간에 매번 늦는 건 대체 왜일까요? 늦고 나면 자책하고 다음엔 제시간에 나와야지 하면서도 늘 아슬아슬하거나 늦거나 해요. 대체 왜 그럴까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질문이 짧아 질문자님의 자세한 사정을 알 수는 없네요. 꾸물거리고 지연시키는 행동(procrastination)의 원인도 다양합니다. 먼저 낮은 불안 수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약속 시간이나, 일의 정해진 시간에 대해 그리 불안해하지 않으니 급하게 여겨지지도 않는 거죠. 선천적으로 불안 수준이 낮은 이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아직 성격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신생아에서 같은 자극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질문자님께서 ‘까다롭지 않고 순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혹은 성장 과정에서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이 사안에 대해 긴장하며 바삐 처리하기보다 여유롭게, 혹은 가끔은 시간을 어기면서까지 처리하는 것을 보며 은연중에 이를 학습해온 탓도 있습니다. 성인의 성격은 타고난 기질의 바탕 위에 성장과정의 경험이 덧씌워져 서서히 형성되지요. 평소 느긋하고 여유로운, 그래서 가끔 약속 시간에 늦기도 하는 성격이 그래서 생겨난 것은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또 한 가지 가정은, 완벽주의입니다. 어떤 일이든 100% 해내려는 무의식적 욕망은 사람을 너무 지치게 만들거나, 혹은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면 회피하고, 미루게 만들기 마련이거든요. 혹시 약속에 나서기 전, 혹은 일을 끝내기 전 ‘완전히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이 효율적인 일처리를 방해하진 않았을까요? 완벽주의로 인해 해야 할 일들이 미뤄지고 있다면, 이를 조금은 내려놓고 유연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일의 결과, 성과에만 집착하기보다 과정을 즐기는 마음가짐도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인이야 무엇이든 간에 약속 시간에 늦는 정도가 양해할 만한 수준이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리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아요. 필요 이상의 자책은 스트레스가 될 뿐이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업무나 약속에서 반복적으로 늦고, 이로 인해 자신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훼손한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자주 늦는 상황이 있으면 그 상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잘 들여다보고, 약속에 늦은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세요.

또,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게으름을 피우는 데는 상황의 복잡성이 한몫하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 일의 순서를 정돈할 필요가 있지요. 노트를 펼쳐,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하고, 일의 중요도 순서와 처리 순서를 간략하게 기록해봅시다.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윤곽이 잡힌다면, 효율을 고려하여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도 일의 지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