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평범한 30대 직장인입니다.

학교도 무난하게 졸업하고, 취업도 무난하게 했죠.

취업한 뒤에도 무난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네요.

 

저는 딱히 결혼을 하고 싶지도 않고, 연애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요.

대신 저는 여행을 정말 좋아해요. 국내, 국외 상관없이 최대한 여행을 자주 다녀요.

집에서도 이런 제 결정을 존중하고요.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도 좀 찍고, SNS에 가끔 올려요.

SNS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느 정도 교류도 해요. 이렇게 여행 사진을 올려놓고, 교류를 하면서 여행 정보를 얻을 수도 있거든요. 또 제가 조언을 해 주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이런 활동이 삶의 낙이에요. 

 

문제는 이번 여름휴가를 다녀오고나서부터에요.

어딜 가든 고생일 것 같아서, 이번 여름은 한적한 곳에 있는 호텔 안에서만 쉬었어요. 사진을 찍을 만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휴가라서 대충 한 장만 찍어 올렸죠.

그런데 그 사진을 본 사수가 뿔이 났네요. 

 

ㅇㅇㅇ씨는 여행을 다 그렇게 호텔로 다니는 거냐면서, SNS 보면 너무 부럽다고 저에게 말하길래 그냥 웃고 넘겼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ㅇㅇㅇ씨는 부자라고, 고급지게 여행을 다닌다고 비꼬는 말투로 얘기하거나, 업무를 나눌 때도 호텔에서 쉬었으니 일을 더 하라고 말하고, 회식 때는 진짜 여행은 자랑하지 않고 다니는 거라고 말하고, 오늘은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 결혼을 못한다고 알려주시네요.

이런 상황을 어찌해야 좋을까요?

 

사진_픽셀

 

A) 10년 전만 하더라도,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이 지금보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내가 내 사생활을 알리고 싶은 사람에게 말을 하고,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됐었죠.

물론 내 사생활을 목격당하거나, 소문이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일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목격자나 소문을 내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는 일이니까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SNS가 등장하면서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어요.

물론 SNS에서도 사생활을 공개할 그룹을 지정할 수는 있죠.

모든 사람에게, 친구들만, 혹은 비공개 같은 선택지들이 주어지지만 사실 활용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자신의 활동을 공유하고, 의사소통하는 것이 SNS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죠.

완전히 공개하거나 아예 안 하는 것은 쉽지만, 뭐든 적절히 하는 건 어렵죠.

 

‘사생활이 걱정된다면 SNS를 아예 하지 마!’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SNS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직업이라면, SNS를 쉽게 포기할 수 없어요.

또 내 게시물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부분을 다른 사람이 꼬투리를 잡는 것은 예측할 수도 없고, 그런 이상한 사람 때문에 SNS를 포기하는 것은 억울하죠.

이상한 건 상대방인데, 내 자유를 잃는 셈이니까요.

 

이런 면에서 SNS는 운전하는 것과 비슷해요. 내가 운전을 아무리 잘해도 상대방이 이상하면 사고가 나죠.

또 그렇게 사고가 나서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내 몸이 아픈 것이 바로 사라지지도 않고, 오랜 기간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방어 운전을 해요. 내 차 주변에 있는 운전자가 뭔가 이상해 보이면 피하죠.

그 사람이 이상하게 운전해서 사고가 나면 나는 보상을 받을 수는 있지만, 내 몸이 아프게 되는 것 자체가 싫으니까요.

 

SNS를 사용할 때도 비슷한 원칙을 적용할 수 있어요.

내가 어떤 게시물을 올리든 그것은 내 자유예요. 단 그 게시물이 나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자극할 수 있는지 고민은 해 봐야겠죠.

물론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지만, 내가 아프게 될 수 있으니까요.

이런 면에서 직장의 상황도 신경은 쓰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할 수 있어요.

직장에 재난 같은 일이 생겼는데 휴가 사진을 올리는 것은, 휴가 사진을 올리지 않는 것보다 장점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SNS와는 별개로, 현재 사수의 행동은 엄연히 직장 내 폭력이에요. 사수에게 항의를 먼저 하고,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해요.

직장 내 폭력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절차를 밟아 상담을 하시고, 만약 그런 곳이 없다면 사수보다 높은 직급의 관리자와 상담을 해야 할 것 같네요.

만약 항의 자체가 쉽지 않은 분위기라면, 가족 등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될 거에요. 정서적인 지지와 정당한 저항 방법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겠죠.

폭력은 숨길수록 그 힘이 강해지고, 공개될수록 그 힘이 약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 현명하게 폭력을 공개하시길 바랄게요.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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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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