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명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해를 하는 청소년 모두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사실이 그렇지도 않다.

우울한 사람 모두가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의 약 10% 정도가 자살관련 행동문제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역으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사망한 분들의 7-80% 이상이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 문제를 경험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청소년 자해 문제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으로서 청소년들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심리적, 사회적 문제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대유행처럼 번지는 자해 콘텐츠의 확산현상을 특정 질환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원인적 요소가 될 수 있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해결방법을 찾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사진_픽사베이

 

임상현장에서 가출 등의 청소년기 행동문제가 기저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문제의 치료 이후 극적으로 호전된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청소년 보호관찰소에서 보호관찰중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70% 이상에서 주의력결핍문제를 보이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즉, 행동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알고 보면 주의력 결핍의 문제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기 주의력결핍 문제는 많은 경우 우울을 동반한다.

초등학생 시기의 주의력결핍 문제는 성장하는 학생들이 야단을 맞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이들은 칭찬과 사랑의 관심으로 성장할 때 온전한 정체성을 확립해나갈 수 있는데,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주의력의 문제로 성장과정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는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반항적이 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반항성의 기저에는 우울이 깔려 있다.

청소년기 우울의 특징이 감정적인 양상이 아니라 행동의 문제로 나타난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모든 사례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적인 도식을 만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외국에서도 청소년기의 자살을 염두에 두지 않는 자해행동(Non- Suicidal Self Injury, NSSI)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가 수행된 바 있다.

아직 연구 결과가 많지는 않고 체계적 분석의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 상황이지만, 주의력결핍문제와 자해행동과의 상관성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핀란드의 연구에서는 주의력결핍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청소년(32%)에 비하여 주의력결핍 문제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의 경우(69%)에서 자해행동의 빈도가 유의미하게 높다고 보고하고 있다.

여성, 어렸을 때의 정서, 행동적 문제가 있었던 경우 그리고 우울증이 동반된 경우가 자해행동을 더 많이 하는 위험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연구에서는 아동기 주의력결핍장애가 있었던 여자 청소년이나 청년에서 NSSI의 위험성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하였으며, 주의력장애가 지속되는 경우에서 일시적인 경우나 아예 없었던 경우보다 자해빈도가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유사한 연구로 헝가리에서도 주의력장애 진단을 받은 청소년의 67%에서 NSSI의 문제를 보였다고 하며 특히 여자 청소년(71.4%)에서 남자청소년(28.6%)보다 그 빈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사진_픽셀

 

위험요인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사회적 환경이 이를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급속히 변화될 때 해당 문제는 대유행하게 될 수 있다.

이는 전염병과 유사하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동일한 질병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감염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것처럼, 정신적 면역력이 약화된 청소년들이 자해를 미화하고 유행처럼 선도하는 분위기를 접하게 될 때 대유행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해는 자살의 선행적 행동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자해행동을 했던 적이 있는 경우 자살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청소년 자해행동은 자살과의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가 있으며 NSSI는 낮은 자존감, 무기력, 우울 등의 정서 상태와 연관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구조신호의 하나로도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자해 후 부모의 손에 이끌려 진료실에 와서 앉아있는 청소년은 우울, 좌절, 고립감 등의 감정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냥요” 이 한마디로 본인의 자해행동 모두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 있는데 이야기하기 싫다는 저항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지에 머물러 있던 자해 행동이 힙한 유행으로 청소년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현상은 매우 당혹스럽지만,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취하는 일종의 자극추구라는 점에서 자해행동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자해행동을 미화하는 콘텐츠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할 것이다.

부모와 자녀, 선생님과 학생 등 다양한 관계 형성의 장에서 기성세대가 청소년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청소년의 면역력을 높이는 작업도 필요하며 그중 하나가 청소년들의 주의력결핍 문제를 세밀하게 평가하고 치료하여 호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_이명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자살예방행동포럼 라이프 대표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