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미워지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

[정신의학신문 : 이명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랑함과 좋아함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 감정이니 모두 나름의 이론을 펼 수 있다.

보통 좋아함이 캐주얼하고 사랑은 더 고차원적인 감정으로 알려져 있으며, 좋아함의 단계를 거쳐 사랑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호감으로 시작하여 점차 함께 있는 것을 원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발전되어 결혼(또는 이와 유사한 정도의 강력한 관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픈 욕구는 행복의 순간들로 이어지며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에게서 볼 수 있다.

 

좋아함이라는 감정이 사랑보다 가볍고 소프트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나 인간관계에서 사랑 못지않은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좋아하는 감정이 사라진 부부의 경우 함께 있는 시간은 고역이 되며, 만성적 권태기의 삶을 살아가거나 이혼이라는 형태로 관계가 정리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며 업무적 관계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스스로 이런 상황을 선택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진_픽사베이

 

그런데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어느 유명 철학자의 책에 나온 청소년과의 대담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해본다.

“너는 부모를 사랑하니?”

“네.... 그럼요.”

“그런데 너는 왜 맨날 집에 늦게 들어가니? 너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야.”

 

이 문구를 보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궤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 자신의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돌아보아도 어떻게 하면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꼼수를 부리긴 하였어도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떨어지고 싶은 것은 부모의 품보다 더 넓고 더 재미있고 함께 하면 좋은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로부터의 분리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대표적 발달과업이기도 하다.

 

그레타 거윅 감독, 시얼샤 로넌 주연의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그렸던 모녀관계의 갈등도 이와 유사하다.

엄마와 말싸움을 하다가 차에서 뛰어내리는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으며 궁상맞은 시골집을 떠나 뉴욕으로 공부하러 가길 원하는 딸, 현실적인 문제로 집에 머무르길 원하는 엄마.

서로 간에 상처주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뉴욕으로 떠나게 되는 딸, 그런 딸을 배웅하지 않다가 뒤늦게 공항에 달려가면서 흐느끼는 엄마의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부모 자녀 간의 관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좋아함은 같은 공간에 함께 있음을 원하고 추구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 안에서 지지고 볶는 것이 싫고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아지는 것,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이다.

결혼을 하거나 유학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도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분리되길 원하는 의식적, 무의식적 욕구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부모와 청소년 자녀 간의 갈등 문제에서 이 이슈는 매우 자주 등장한다.

서로 미워하고 욕하는 이면에는 사랑과 좋음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자녀가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_픽셀

 

사랑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그럴 수 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날 선 말도 오고 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돋쳐있듯이 사랑하는 관계에서도 언어의 가시가 존재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항상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아프고 쓰린 말을 하곤 한다.

 

입에 쓴 것이 약이 되듯 아프고 쓰린 말은 사람들을 성장하게 하지만, 경우에 따라 그것은 입안의 상처를 찔러서 덧나게도 한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라는 가시가 미처 제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니라면 좀 더 부드럽게 이야기했겠지만 가족이기에 안타깝고 그래서 본래의 의도와 어긋나는 가시 돋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알아서 이해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또 대개는 알아서 가시를 제거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감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 정작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유 역시 아마도 가시에 찔리기 싫어서가 아닐까?

 

장미가 그 자체로 아름답듯이 가족의 사랑 역시 설사 가시 돋침이 있더라도 그 자체로 소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상대가 많이 아파하고 있는 상태라면 가시를 제거하고 다가가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맨날 같이 있어보세요, 그게 되나, 저도 할 만큼 해봤어요”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포기하면 관계는 악순환의 일로에 놓이게 되며, 정 어려우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해결해야 한다.

 

 

글쓴이_이명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자살예방행동포럼 라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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