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명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현대인들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으며 많은 상황에서 정신적, 심리적 문제에 대한 해결 욕구를 가지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사석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는 누구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 “나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져오기도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치료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삶의 어려움을 다루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과에 가면 환자로만 본다.” “상담은 안 하고 약만 준다.”라는 세간의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황을 연결하여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고 행동적 반응을 결정하는 기관은 바로 뇌(brain)이다. 뇌는 신경과 신경전달물질의 너무나도 복잡한 구조와 기능적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고, 바로 그러한 뇌의 구조적, 기능적 이상으로 인하여 인간의 생각, 감정 그리고 행동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정신의학은 뇌과학의 발달을 근간으로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로 증명하고 치료에 반영하기 위하여 노력해오고 있다. 정신의학적 치료는 단순히 말로 위안을 주고자 함이 아니고, 약물로 증상을 완화시키고자 함도 아닌 심리적, 사회적 그리고 생물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것에서 그 최상의 가치가 발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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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온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하는 중요한 판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를 정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모든 진료과에 공통적이라고 볼 수 있다. 건강한 일반인에 대한 건강검진을 ‘병원에서’ 하는 이유는 얼마나 건강한지를 평가하기 위함이 아니고 질환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약물학적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은 매우 전문적인 능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골든타임은 재난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신체질환에 대한 조기치료가 예후를 결정하듯 정신질환 역시 마찬가지이다. 생물학적 치료가 꼭 필요한 사람을 붙잡고 하염없이 이야기만 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정신과적 치료에 약물치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를 우선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는 경우에 그런 것이지 약물치료 지상주의 때문은 아니다. 약물치료에 보완적으로 정신치료를 적용하여 효과가 있다는 연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약물치료 없이 단독으로 행해지는 정신치료 역사는 오래되었고 그 효과성도 이미 밝혀져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실감, 다양한 방법의 정신치료로 도울 수 있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개개인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의 대부분 ‘상실, LOSS’로 귀결된다. 사랑하는 사람, 건강, 인간관계, 직업, 돈을 잃는 경험은 인간사 공통적 스트레스 요인이며,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운동에서 보여지는 폭력으로 인한 존엄성의 상실도 인간의 마음을 갉아먹고 상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생각해보자.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중 상실과 관련 없는 것이 있는지?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본연의 가치 있는 인간 주체로서의 기능 상실에 대하여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상실감에 대한 분노가 적절히 해소되지 못하면, 밖으로 분출되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거나 밖으로도 분출되지 못하는 경우 자신의 내부로 되돌아오게 되면서 우울을 야기하게 된다. 우울증의 심리적 기전을 ‘공격성의 내적 회귀’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그 맥락에 인함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심리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다루게 된다. 자신을 공격하는 것의 최후는 자해 또는 자살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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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은 사실로 벌어진 일이나, 상실에 대한 내적 반응은 사람마다 다 다르며,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길고 깊은 이야기와 치료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무의식을 탐구해 나가는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도 있고, 자기자신(SELF),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WORLD),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FUTURE)에 대한 사람들의 인지적 오류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인지행동치료도 있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 자동적 생각이라고 하며 우울한 경우 대개 비관적인 자동적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개는 자신을 계속 우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는 부정적인 자동적 생각에 대한 점검은 하지 못한다. 정말 그 생각이 맞는 것인지, 너무 극단적으로 부정적 관점의 생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필요하다.

이런 것을 인지행동치료라고 하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받아볼 수 있다. 대인관계적 양상을 특히 조망하여 접근하는 대인관계정신치료도 있으며, 간단한 안구 동작을 유도함으로써 부정적인 기억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줄이고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돕는 ‘안구 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EMDR,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도 널리 행해지고 있다.

 

 

<약물치료를 통해 뇌의 화학적 불균형을 정상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종종 “부정적 생각에 압도되는 것은 뇌의 화학적 작용의 결과일 뿐이야”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생물학적 관점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경우에 따라 너무 복잡할 경우에는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몸에서 열이 나는 원인은 무수히 많다. 그렇다고 열이 나는 원인을 분명히 확인하지 못했기에 의사들이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염증을 일으키는 균에 대한 항생제 반응 등을 관찰하여 적절한 치료 선택을 하기 위해서 환자의 발열을 관찰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열을 내리기 위한 처치를 하게 된다. 열은 그 자체로 매우 사람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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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우울도 이와 유사하다. 우울하고 불안한 이유가 무수히 많고 나는 어떤 이유로 인해서 우울하고 불안한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겠지만, 객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라도 마음의 열에 해당하는 우울은 조절되어야 한다. 증상을 잡아야 보다 심층적인 ‘내면 들여다보기’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필요한 경우 약물로서 뇌의 화학적 작용에 관여하여 환자를 괴롭히는 우울함을 진정시키는 약물치료를 시도하기도 한다.

정교화된 약물치료로 우울만 개선이 되어도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의 정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말하는 ‘정상적’이라는 것은 어떤 균일화된 마음의 규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성장배경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반응이 다양할 수 있지만, 다양한 것이 곧 비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의 열이 내리면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주체적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러한 치료적 과정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상의하며 결정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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