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올해로 25살인 직장인 여자입니다.

현재 미용 목적으로 다이어트를 진행한 지 3개월째인데요, 처음에는 식단 운동을 건강하게 잘 이어가서 체중 감량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가 이번 달 내내 폭식증으로 인해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작년에 두 달만에 10킬로를 빼고 요요가 온 이후로 폭식증이 생겼어요. 그러다가 이번엔 정말 건강과 미용적 목적을 위해서 꼭 다이어트를 성공해야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초콜릿, 과자, 빵 등의 군것질들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밤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이유로, 외롭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음식을 찾게 됩니다.

정말 저는 음식에 중독된 사람 같아요. 배가 고파서, 맛이 있어서 먹는 게 아니고 그냥 음식을 욱여넣습니다.

하지만 먹고 나면 소화가 되지도 않고, 이번에도 또 실패구나 라는 생각에 입에 손가락을 넣어서 억지로 구토하려 합니다... 토하고 나선 그런 제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울며 잠이 들어요.

다이어트를 하면서 살이 조금 빠지면 사람들이 ‘살 많이 빠졌네, 예뻐졌다’ 이런 말들을 들어야만 스스로 자존감이 높아지고 ‘내가 정말 예쁜 사람이구나’하고 인정이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제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보다 거울 속에 살이 더 붙진 않았는지, 체중계에 올라서 300g이라도 늘어나 있으면 우울감에 빠지고...

 

사진_픽셀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을 뺐는데 점점 요요가 오고 있는 게 너무 불안하고 두려워요.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나를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고, 그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하루 종일 저의 생각은 다이어트와 식단에만 머물러 있어요.

어떤 운동을 해야 하고, 어떻게 먹어야 하고, 어떤 게 먹고 싶은데 스트레스받고... 마음을 고쳐 먹으면 되겠지 싶다가, 점점 심각해지는 다이어트 강박과 폭식증, 음식중독이 계속됩니다.

전문가들로부터 정신적인 상담이 필요할 것 같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올려봅니다!

 

A) 안녕하세요.

폭식, 과체중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이어지는 구토 후 다시 이어지는 폭식... 식이 습관의 문제는 다람쥐가 쳇바퀴를 굴리듯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거기서 벗어나려 할수록 빠져드는 늪과 같아요.

질문자님께서 얼마나 절박한 심정일지 글 곳곳에서 그 흔적이 느껴져 더욱 안타깝습니다. 먼저 힘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질문자님의 문제들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건강하지 못한 식사와 다이어트 습관
2. 외모, 체중,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함
3. 지속되는 폭식과 제거 행동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체중은 젊은 여성들에게는 특히나 민감한 문제이지요.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평가받는지가 매우 중요한 나이이기도 하고요.

아마 추측건대 작년의 2개월간 10kg 감량했던 다이어트는 심한 절식으로 인한 무리한 다이어트였을 것 같아요. 금세 요요가 따라올 수밖에 없고요.

무리한 절식과 체중 감량은 체내 영양소와 수분 밸런스를 망가뜨립니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마음도 제 기능을 못 하고 혼란에 빠져요. 예민한 기분, 감정 기복 등이 이어지다 이내 와르르, 무너집니다. 불면, 우울증 등이 생기거나 반대급부로 폭식과 같은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작년에 다이어트 직후에 느꼈던 외모의 변화, 타인의 시선 변화가 그릇된 다이어트 습관을 부추긴 것 같네요.

 

폭식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볼까요.

질문자님께서 겪고 계시는 증상은 단순한 폭식 행동뿐만이 아니라, 제거 행동이 함께 동반되는 다소 심한 수준의 폭식으로 보입니다.

질문자님께서는 겉으로 보이는 체중의 증감과 외모의 변화가 중요하다 여기시겠지만, 실은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폭식하게 만드는 내면의 ‘그 무엇’이지요.

그리고,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선 그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무엇이 반복적인 폭식과 제거 행동을 부를까요? 질문자님께서는 이미 답을 알고 계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폭식의 원인을 외로움, 심리적 스트레스 등을 이야기하셨어요.

질문에 모든 내용이 담겨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면의 부정적 정서들이 ‘폭식 유발자’로 보이네요.

우울, 불안, 외로움 같은 것들이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허기’를 자극하고, 이로 인해 폭식이 나타나는 패턴입니다.

이 대목에선 우울증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네요.  

 

사진_픽셀

 

현재 이런 문제들이 대인관계를 비롯한 일상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발견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지 전문적인 평가가 꼭 필요합니다.

또, 감정 기복 및 부정적 감정들, 스트레스들에 대한 취약한 대처에 대해서는 인지행동치료나 약물치료 등의 전문적인 개입이 꼭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폭식증, 거식증과 같은 식이 패턴이 한 번 자리 잡히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그림자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요.

또 식이장애를 가진 반수 이상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과 질환을 동반한다 알려져 있는 만큼, 빠른 결단이 필요합니다.

전문적인 치료와 더불어,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식습관과 안정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해요. 먹는 행위는 기분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거든요.

 

또 한 가지,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셨어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자신이어야 하고, 모든 결정의 기준은 자신의 마음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죠. 참 안타깝습니다.

정신의학에서는 식이장애를 가진 이들이 ‘자기 상이 훼손되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보다 사회적 기준, 타인의 시선이 건강을 해쳐가며 체중을 조절해야 하는 중요한 삶의 목표가 되는 거죠.

이 지점에 ‘나’에 대한 존중은 없어요.

 

이 부분은 뿌리가 깊은 자존감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강남역 한복판에서 넝마주이를 걸치고 다녀도 자신만 당당하면 괜찮습니다.

반면에, 화려한 외양이라도 자존감이 낮다면 속 빈 강정처럼 공허함, 좌절만 느끼게 되죠.

자존감은 성장 과정에서 만난 부모를 비롯한 중요한 인물들, 인상적인 사건들을 경험하며 마음 안에서 조금씩 자랍니다.

현재 타인의 시선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행동이 최근 생긴 문제들을 해결한다고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말이겠죠.

낮은 자존감의 뿌리를 되짚어가며, 조금씩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 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취약한 아이’를 껴안아 줄 수 있어야, 자신에 대한 사랑도 자라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자기애를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 현재 문제를 극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방향일 것 같아요.

물론, 이 부분 또한 혼자서 애쓰기보다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부디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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