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저는 결벽증이 있어서 일상생활이 좀 불편한 케이스입니다.  

예를 들면 화장실에 갈 때 문손잡이를 절대 만지지 않고, 들어갈 땐 발로 문을 닫고 나올 땐 휴지로 문 손잡이를 싸서 열고 나오거나 일반적인 문도 미는 문은 절대 손으로 열고 닫지 않고 발로 열고 들어갑니다.

대중교통을 타면 손잡이를 절대 잡지 않고, 손잡이를 안 잡기 위해 빈자리가 있는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지하철을 탑니다.

공중화장실은 사실 어쩔 수 없는 경우 아니면 잘 안 가고요. 손은 너무 많이 씻어서 요즘은 한포진인지 습진이 생겨 있습니다. 

제가 어쩌면 비정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정상은 확실히 아닌 것 같고, 막상 비정상은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비정상이라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요.

 

사진_픽셀

 

제 결벽증이 왜 생겼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어렸을 때 형제에 대한 부모님의 차별 또는 아버지의 체벌 또는 어머니의 무관심, 이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사랑을 못 받은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부모님이 동생을 더 사랑하셨지 그렇다고 저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어서 그래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긴 합니다. 

 

저의 가장 큰 고민은 대인관계에 있습니다.

일단 중고등학교 때 왕따 또는 은따였고 성인이 된 지금도 돌이켜보면 많이 부정적이어서 진심을 털어놓을 친구를 만나지 못했어요.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어요.

사춘기 때 왕따를 당할 때 또는 부모님으로부터 차별을 받았을 때, 진지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도 있었는데 대학 때 저를 너무 헌신적으로 사랑해 주는 이성 친구를 만나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되었고, 지금은 정말 어른스럽고 생각이 바른 남편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안 좋은 기억도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이 있어서 혹시나 남편을 지치게 하거나 정 떨어지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정도입니다.  

사실, 지금은 다른 걱정보다 퇴근 후 같이 쇼핑을 하거나 차 마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정도의 불편함이 있거든요. 이 부분은 개선을 해야 할까요?  

 

A) 안녕하세요, 질문자님께서 적어주신 내용으로 뭐라 진단을 내리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님의 결벽증 증상은 강박장애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화장실 문을 손으로 잡지 못하고, 버스 손잡이를 잡지 못하며, 조금만 외부와 접촉해도 반복해서 손을 씻는 모습은 강박증 중에서도 가장 흔한 오염(contamination)과 관련된 형태로 보입니다.

 

물론 강박증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외부와 접촉 후 손에 세균이 득시글거리는 듯한 혐오와 불안을 유발하는 <강박사고>와, 이런 염려와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반복적인 씻기, 필요 이상의 긴 시간 동안의 샤워와 같은 <강박행동>이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질문자님께서 여러 대중 시설들을 피하는 이유가 강박적인 침투 사고로 인한 것이고, 손을 씻는 행위로 인해 불안이 가라앉는다면 강박증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네요.

자신의 결벽증 행동의 기저에 그러한 생각이 작동하고 있다면, 꼭 강박장애의 가능성에 대한 평가와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병의 유무를 따지는 중요한 기준은 일상생활, 대인 관계,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지의 여부입니다.

그러니, 현재 강박으로 보이는 증상들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걸림돌인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병이 있다고 비정상일까요? 과연 병의 유무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눌 수 있을까요?

치료해야 할 정도의 병이 있다는 사실이,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닐 것 같아요.

정신분석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정상적인 사람의 기준을 약간의 히스테리와 강박, 편집증을 가진 것으로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무수히 넓은 스펙트럼 위, 그 어딘가에 위치하지요.

정상과 비정상, 그 기준과는 별개로 증상이 강박장애를 진단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더라도, 불편감이 있다면 이에 대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티가 나지 않는 사소한 행동들이, 자신에게는 큰 의미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사진_픽사베이

 

결벽증에 대해 질문을 주셨지만, 사실 질문자님께서 안고 계시는 더 큰 고민은 삶 전반에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섣부른 억측일 수 있겠지만, 성장과정에서 겪은 형제간의 차별, 따돌림의 경험이 질문자님의 삶을 소극적이고 취약한 방향으로 이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여온 우울과 불안이, 성인이 된 후에도 강박과 사회불안의 형태로 나타난 게 아니었을까요.

그러니 강박과 사회불안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참 다행인 것은, 질문자님께서 좋은 연인과 남편을 만나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않았던 정서적인 욕구들이 충분히 채워졌다는 거예요.

고통스러운 성장과정이 있더라도, 성인기에 만나는 좋은 인연들 덕에 행복한 삶을 사는 분들이 있어요.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시각도, 누구를 만나고 나중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따라 180도 바뀌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자님께서는 어떻게 보면 정말 행운아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어릴 때의 동생과의 차별, 학교에서의 위축된 생활이 예전에는 참 힘들었을 텐데, 이제는 고통스럽지 않다니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닌, 퇴근 후 차 한잔할 친구가 없다는 귀여운(?) 고민만 남았다니, 여러 문제들을 넘어서 이제는 질문자님께서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마지막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보다 현재 자신에게 불편함이 있다면, 이에 대한 도움을 받는 것은 좋을 것 같아요.

반대로, 굳이 불편하지 않다면, 꼭 필요하지 않다면 억지로 애쓰실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의 건강한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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