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중독포럼 김장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왜 사냐는 물음에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지요? 

그것이 목적이든 과정이든, 현재 이르지 못한 상태이든 아직 손에 쥐지 못한 것이든, 합법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결국은 그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맛있는 음식, 소속감, 우정, 뜨거운 사랑, 성취, 승부, 취미활동 등이 삶 속에서 성취할 수 있는 건강한 행복들일 것입니다.

 

누구나 그러한 행복들을 얻기 위해서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이 각자의 기대만큼 쉽게만 얻어지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우리가 익히 배우고 경험해 왔듯 보다 깊은 수준의 행복들은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가능만 하다면 쉽게, 또 즉각적인 만족을 얻기를 원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너무도 쉽게 극한 행복으로 이끄는 지름길, 하지만 그 길의 끝에서 지옥문이 열리는 지름길, 고대부터 기록되어 왔고 현재도 우리 곁에 있으며 역사가 지속하는 한 생명을 유지해 나갈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약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피로회복제와 다이어트약물의 가면, 이 두 가지가 일반인이 마약을 처음 접하게 되는 흔한 이유들입니다. 

TV 뉴스에 조폭들이 필로폰을 대량으로 밀매하다 적발되는 딴 세상 얘기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지만, 우리 현실 속에는 야간 근무 시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고민인 우리의 동료, 체중이 늘어 옷빨이 안 받는다고 투덜대는 우리 친구가 있습니다.

뒷골목과 유흥가에서 유통되는, 혹은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살 수 있는 피로회복제나 다이어트 약물에는 마약류(마약 혹은 향정신성의약품)로 분류되는 성분들이 들어있습니다.

이들 약물들에 흔히 들어있는 에페드린 혹은 슈도에페드린이 대표적인 불법 마약류인 필로폰의 원료가 되는 물질이라는 사실!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접한 피로회복제나 다이어트약이 마약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마약의 효과는 여러분들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합니다. 

얼마나 강력하냐고요? 

마약류 약물의 맏형 격인 필로폰을 해본 분들은 이야기합니다. 자신들은 천국을 살짝 엿보고 온 사람들이라고요.

하지만 죽어서나 보았어야 할 장면을 엿본 사람의 말로는 비참한 겁니다.

필로폰 한 방이면 천국 문 앞인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성취할 수 있는 행복들(우정, 사랑, 학업, 취미 뭐든) 이런 게 다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해본 사람들이 다들 얘기하죠. "우린 관 뚜껑에 못 박기 전에는 필로폰 못 끊어요."

 

그렇습니다. 단 한 번의 사용만으로 여러분을 지옥문 앞으로 데려갈 줄 정도로 강력합니다. 

특히 한 번도 이러한 약제를 접해보지 않은 깨끗한(?) 뇌는 소량의 마약에도 반응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시켜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중독물질의 사용은 내성(tolerance)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성인이 되어 생애 처음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이내 취해 곯아떨어졌던 분이 수년 뒤에는 한 자리에서 몇 병씩 마시고 있는 모습이지요.

처음엔 다이어트약을 한 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식욕이 억제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이어트 효과도 줄어들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그래서 하루에도 몇 알씩 복용하게 됩니다.

이전만큼 깨끗하게 졸음이 가시지 않게 되면 더 강한 약을 찾게 되고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더 강한 약을 더 많이 구하기 위해 음성적인 루트를 찾게 되고, 불행히도 그렇게 절박해진 분들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범죄자들은 너무 많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 단계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보면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애초에는 약을 수단으로 하여 이루고자 했던 소기의 목표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가장 큰 관심은 약을 구하고 먹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예뻐 보이고 업무도 더 효율적으로 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결국에는 행복해지려 했던 의도는 무색해져 있고, 점차 사람들도 만나지 않게 되면서 직장도 그만두게 되는 것이지요.

손해만 막심한 주객전도입니다.

내가 약을 먹는 게 아니라 약이 내 삶을 잡아먹고 있는 거죠.

 

마약의 중독성은 해외여행 가서 먹고 온 맛있는 음식이 집에 와서도 생각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보다는 뼈에 사무친 기억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입니다.

유원지에 가서 십 년 만에 자전거를 타도 큰 어려움 없이 탈 수 있고, 동창회에 가서 수십 년 전 교가를 따라 부르게 해주는 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일반적으로 뇌 깊숙한 안쪽의 해마라는 부위가 담당하는데요.

해마 옆에 있는 편도라는 부위가 우리 경험 중 감정이 사무친 기억은 강화해서 따로 포장해 두게끔 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약으로 유도된 강렬한 기억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주 단순한 유발요인에 의해 되살아나게 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일은 평생 이어지게 됩니다.

 

YOLO! 한 번 사는 인생, 뭐든 한 번은 경험해 보겠다는 생각. 

진취적이고 용기 있음에 틀림없습니다만 마약 사용에 있어서만큼은 예외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마약예방 프로그램(Meth project)의 카피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NOT EVEN ONCE(절대 단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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