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지금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에요?"

 

그날따라 A의 날 선 태도는 용도를 다 한 수세미의 올처럼 비교적 매끈했던 상담의 표면을 자꾸만 뚫고 올라왔다. 

A는 내가 건네는 안부 인사나 질문들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반복해서 물었다. 

그간 내게 과도하게 예의를 차린 관성으로 불쾌감을 누른다고 눌러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제 질문에 무슨 뜻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네. 뭔가 자꾸 돌려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하실 말씀 있으시면 그냥 하시면 좋겠어요."

오늘따라 A는 상담의 과정이 전혀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당혹스러운 태도에도 내가 어서 빨리 자신을 안심시켜주기를 바라며 아랫입술 안쪽을 지근지근 깨물었다.

 

A는 대인관계에서 늘 날이 서 있었다. 

잠시 방심을 하고 있으면 여기에서 툭, 저기에서 툭툭, 나를 건드려대는 느낌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편안할 수 없었다. 

어떤 의미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끝도 없는 시나리오를 펼치고 숨은 뜻을 짐작하느라 머릿속이 녹초가 될 정도였다.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왜 굳이 나를 보면서 했을까, 그런 농담들을 왜 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 했을까, 방금들 나눈 눈빛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없는 단체 채팅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중립적인 단서에도 금세 불안에 치받혀 어떤 식으로든 방어막을 펼치고 경직된 채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자기변호를 애써 하던 A는, 어느샌가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에도 이전의 일들을 곱씹었고 그때마다 마음은 이리저리 널을 뛰었다. 

시시각각 증식하는 자신의 가설을 일렬로 늘어놓고, 확증편향에 기대어 불균형한 증거를 필사적으로 수집하고 각각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식이었다. 

 

1년여 사귄 애인과 번번이 싸우게 되는 이유에도 하나의 패턴이 있었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다가도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방금 그 얼굴 표정의 의미' 혹은 '방금 그 말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A가 묻는 것이 다툼의 신호탄이었다.

같은 일이 빈번히 반복되자 애인은 A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를 점차 그만두었고 짜증을 내비쳤다.

더 이상 자신을 안심시키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A는 필사적으로 항전했다.

그 항전은 애인의 앞에서도, 슬픔과 분노에 가득 차 귀가하는 길에서도 반복되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인 것을 내가 모를 줄 알고..?'

머릿속은 너무나 바빠, 이제는 사실과 생각과 감정과 가설이 구분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쉬는 동안에도 좀처럼 자신의 페이스를 찾지 못했고 유쾌한 경험이나 생산적인 일에 접근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사진_픽셀

 

성모 마리아의 형상으로 구워진 토스트가 미국 경매에 출품돼 2만 8000불에 낙찰되어 회자된 에피소드는 우리 뇌의 독특한 특성을 반영합니다.

토스트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보다니, 굳이 사람이 그렇게까지 이상해질 필요가 있을까 싶고요.

황금빛으로 구워진 토스트 위에서 버터와 잼이 아름답게 녹는 모습을 바라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우연히 까맣게 탄 빵의 모습을 의미적으로 조직화해서 → 이것을 경매에 내놓았고 → 이 토스트의 경매에 다수가 참여하여 → 2만 8천 불에 구매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원래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뇌는 논리와 규칙을 찾으려 동기화된 기계이지요. 

어린아이들조차 페인트의 얼룩이나 구름의 모양을 보고 그 의미를 읽어내려 합니다.  

이건 코끼리! 이건 토끼!

 

그러나 우리는 즐거운 자극만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변화하는 표정과 말투, 대화가 멈추거나, 누군가 지루해하거나, 모임이 일찍 끝나거나 혹은 모임이 취소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아주 사소한 우연적 사건들에 기반해 우리의 부정적 추정과 가설은 끝도 없이 머나먼 곳으로 달려 나갑니다. 

이 사고의 내용이 이상한 경우 피해망상, 과대망상, 죄책망상, 의처증 등이 생기는 것이고, 이 사고의 과정이 문제인 경우 사고의 비약이나 사고 단절, 뜬금없는 연상의 이완이나 부적절한 지리멸렬함이 관찰됩니다.

 

생각의 속도는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측정 가능합니다. 

사실 이때 생각이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생각이 도약하고 비약하는 것이 문제지요. 

왜 갑자기 표정이 변했지? -(생각의 jump!)→ 저 사람, 나를 싫어하는구나!

이런 경우 우리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던 꼬리를 놔두고 뜬금없이 또 다른 대상의 꼬리를 낚아챕니다. 

지극히 중립적인 얼굴 표정에도 부정적인 감정을 (혼자) 읽어내는 오귀인(misattribution), 의미 없는 우연한 사건이 자신과 관련 있는 일이라 잘도 넘겨짚는 관계사고 역시 사회적으로 마음이 지쳐있는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보이는 증상입니다.

'쟤들이 지금 내 욕을 하나..?'

 

머릿속 가설과 사고에 기반해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힘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근거가 없기에 오히려 그 믿음은 신앙처럼 단단해집니다. 

왜 그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마땅한 증거나 기반이 없으니, 지인들도, 임상가도, 과학자도, 그 결연한 가설을 반증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 사고 과정과 사고내용에 문제가 생기는 정신증 환자의 경우 복내측 전전두피질, 편도체, 뇌섬엽, 선조체 등에서의 이상성이 관찰됩니다.

이렇게 정상에서 벗어난 활동성 혹은 연결성들은 관계사고를 넘어선 관계망상과 유의한 상관을 보입니다.

이 영역들은 본래 자신과 관련지어 사방의 정보를 처리하는 자기-참조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본인과 관계가 있는 듯 느껴집니다.

생각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생산적인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죠.

그러나 뜬금없는 의심과 추정이 본인의 가치감, 자존감, 효능감에 얽히고설켜 발목을 잡아채 아래로 내리 끄는 경험은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더욱이 이 해당 영역들은 정서 처리와도 관련이 있어 사고는 사고에서만 그치지 않고 감정적 고통감은 가중됩니다.

분노에 가득 찬 생각 안에 갇히는 분노 반추 역시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습니다.

상기한 내측 전전두피질과 뇌섬엽, 대상피질이 이 분노 반추와 관련 있는 영역입니다.

분노 반추는 분노스러운 상황을 반복해 곱씹고 재생하는 것, 복수 행위를 정신적으로 시연하는 것 모두와 관련됩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버튼이 눌렸는지 모를 그 선명하고 왜곡된 사진 속에서 나의 모욕감과 수치심은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여러 연구들에서 분노 반추가 고통스러운 염려와 뜬금없는 분개, 분노와 공격성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그러나 대개 누군가가 당신을 싫어한다고 뭐 큰일이 나진 않습니다)', 

'저 사람들이 나의 험담을 하고 있으면 어쩌지 (자기도 사실 타인의 험담을 하면서!)', 

'실은 내 애인이 나를 하찮게 여기면 어쩌지 (...헤어져야 됩니다).'

하며 늘 선제적 방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본인이 억지로 꿰어 놓은 비참한 가설들이 언젠가는 그 파국적 형체를 드러낼 것이라 확고히 믿기에, 우연히 중립적인 단서에 부아가 치밀기 시작하면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좌중에 세련되지 못한 한 마디를 굳이 던집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러나 통념과 달리, 정서를 폭발적으로 표현하며 경험하는 카타르시스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부족합니다.(*)

오히려 최근의 연구들은 화를 표출할수록 화가 더욱 많이 나며 분노 반추는 서로의 분노를 북돋울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가 화를 표현할 때 분노 외의 감정, 즉 외로움, 슬픔, 묘한 안도감 등을 돌아볼 수 없기에 내 모든 감정 반응은 분노로만 몰리고 불유쾌한 경험에서 뜻밖의 성찰이나 지혜를 배울 기회는 박탈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분노를 경험하고 사회적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 추후의 우울로 이어졌고 한편으로는 인지적 초점이 좁아져 문제해결력이 저하되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더욱 복잡한 방향으로 꼬이기 십상입니다.

 

사람들의 농담이나 이야기가 거슬려,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야?'라든지, '그런 얘기는 왜 하는 건데?' 따위의 분노를 좌중에 던져버리는 상황을 생각해볼까요.

파티의 흥은 깨지며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우리는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이미 뱉어놓은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해 분노의 게이지는 점점 올라가고,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더 과도하게 화를 냅니다.

더욱이 사람들은, 부정적인 정서를 표현할 때 작업기억이 더 잘 유지됩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은 떠들썩하고 유쾌한 상황에서 이미 지나 보낸 일이지만, 이미 화가 난 당신만은 그 상황 안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때의 분위기와 대화 내용과 표정들을 기억해두었다 마음대로 왜곡해 분개하기도 쉽고요. 

 

흘려보내야 할 정보들을 홀로 손에 꼭 쥐고 분노에 가득 차 있다면, 그 손이 당장 다른 곳에 필요할 때 우두커니 주먹만 쥐고 서 있어야 하겠지요. 

당신의 정서적, 인지적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당신은 여전히 화를 내고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넘겨짚음과 과거의 기억과 부정적 감정이 멋대로 뛰어드는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인 퍼즐 놀이를 있는 그대로 관조하고 이어서 단호하게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뇌 내 전기-화학적 신호들이 사고와 정서와 자기개념 영역 이곳저곳으로 달려 나가 멋대로 연결 짓도록 두지 마세요.

 

당신은 원래 그만큼 화나 있지 않았고 사람들은 원래 당신에게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어요.

나의 존재, 나의 가치감을 누군가 건드린 것 같아 불쾌한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 '아, 나 또 이러네' 하고 세상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 정도 아니에요.

그리고 설사 악의가 있는 빈정거림이었다고 해도, 그런 이야기들로 당신의 가치가 훼손될 수 없음을 (나 자신과 타인에게) 분명히 알리세요.

그 무례에 기꺼이 휘말려 들지 마세요.

 

 

(*) 그러니 카타르시스를 강조하며 가이드라인 없이 감정을 폭발시키도록 하는 사이비 치료자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과학도 아니고, 

요새 트렌드, 그거 아니에요.

 

 

저자 약력_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젊은연구자상 수상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CBT기반 어플- 마성의 토닥토닥" 연구 책임자
한국연구재단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정서조절 인공지능 모델 개발 II" 연구 책임자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해당 글들을 책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 허지원)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무너진 마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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