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저 같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A의 표정에 이름을 붙이자면, 어떤 날은 노여움이었고 어떤 날은 처연함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제 이야기 들으면 웃어요. 어떻게 그렇게 사람 운이 없냐고.

열심히 '으쌰 으쌰' 해보려다가도, 딴죽을 걸거나 엎어버리는 사람들만 있으니 점점 예민해지기도 하고, 한 번도 뭐가 수월하게 풀린 적이 없기도 하고요.

어떤 날은 자다가도 이게 화병이구나 싶을 정도로 화가 올라오는데, 또 어떤 날은 이렇게 여기저기 치이는 게 내 팔자인가 싶어서 그냥 무기력하고요."

 

A는 잠이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을 끄고 누우면 너무 많은 생각들이 쏟아졌다.

그때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그때 그 일만 아니었으면, 아니었으면.

 

<아니었으면>의 단서들을 달면 지금보다는 모든 것이 더 나았을 것이 분명하니 화가 점점 차오르기도 했고,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억울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폭발하듯이 차올라 어느 날은 아예 생각이 끊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살아온 날들은 평탄하지 않았다.

특별히 임상적 수준의 트라우마로 기록할 일들은 없었지만, 성취에 있어 중요한 사회적 관계와의 불화와 단절, 수년에 걸쳐 억울하게 듣게 된 나쁜 평판과 계획하거나 진행하던 일의 반복된 중단 등등, 누구든 몇 날 며칠 혹은 몇 달씩은 마음고생을 심하게 할 일들이었다.

 

그런데 A의 경우 초반 몇 회기의 치료에서 이미 특유의 '패턴'이 두드러졌다.

A가 겪은 일들이 실제로 매우 힘들었겠음을 공감할라치면 A는 점점 더 감정에 몰입해버렸다. 마치 피해자 역할극을 하듯.

혹은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면 또 다른 사건들을 끌어다 붙여 본인의 힘든 삶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치료의 과정 역시 매우 더디어, 매 회기마다 새로운 내용으로 표면만 달리하여 또다시 본인이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게 하루를 사는지에 대해 토로하며 이야기를 원점으로 되돌릴 뿐이었고,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보다는 타인의 행동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히 기술했으며, 종종 다른 내담자들의 삶은 어떤지에 대해 물으며 불행을 경쟁하고자 하였다.

 

"이건 당연히 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위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오면 이게 일을 하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이러니 이제는 사람 믿는 것도 무섭고, 환멸 나요. 사람 ** 만드는 것도 아니고 정말..

청부살인하는 사람 고용하는데 얼마인지 뭐 그런 거 인터넷에 떠돌잖아요, 저는 그게 농담 같지가 않아요. (급히 말을 덧붙이며) 뭐 진짜 제가 누굴 죽이진 않겠지만..

아무튼 뭘 더 하고 싶지도 않고 지금처럼 현상 유지하는 게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저같이 사는 사람도 있나요?"

 

네 라고 말할 뻔했지만 일단 또다시 같은 패턴을 이야기하도록 두었다.

그날은 A에게 정말 힘든 날이었던 것도 같았다.

 

사진_픽셀

 

사람들은 본래 <잘 되면 내 덕, 못 되면 남의 탓>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사실 그 사건 자체로는 어떤 의도성도 없으나) 내게는 꽤나 부정적인 의미로 작용하는 일들이 별안간, 꽤나 자주 일어나는 곳이기에 내가 나 자신을 좋게 좋게 보아줘야 그나마 내 흥에 겨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자기 본위 편향이라고 합니다. 

긍정적 사건에 대해서는 자기 귀인(= 내부 귀인, 내 덕이지!), 부정적 사건에 대해서는 타인 귀인(=외부 귀인, 네 탓이야!)을 하는 식이지요. 

특히 자기개념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에는,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 귀인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학점을 꽤 잘 받는 학생, 나는 매너가 좋은 사람, 등의 개념이 위협받을 때에 시험문제가 이상한 데에서 나왔어! 혹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처음 봤어! 하는 식입니다. 

 

그나마 알량하게 유지되는 우리의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자기 본위 편향은 어찌 보면 눈 가리고 아웅인 식으로 보이겠지만 꽤나 기능적입니다.

여러 연구들은 자기 본위 편향이 무너지면 심리적, 신체적 질병의 발생과 유지로 이어진다는 실재의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누군가의 평안을 위해 혹은 왜곡된 생각들로 과도한 죄책감을 의무적이며 지속적으로 경험해야만 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들의 자기 본위 편향은 약화되어 스스로를 지킬 기력을 잃습니다.

모두가 내 탓.

우리 가족의 불행과 가난, 부모의 이혼, 그 사람의 죽음, 나의 이별, 나의 실패.

모든 것이 내 탓.

 

실험 장면에서 연구를 위해 우울감을 조성했거나 실제 임상적 수준의 우울감을 경험해 온 경우에도, 이 자기 본위 편향은 쉽게 약화됩니다.

치료 장면에서는 이러한 지나친 내부귀인을 수정하는데 오랜 시간을 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는 오히려 이 자기 본위 편향이 과잉하여 자기 연민과 억울감, 외부귀인이 지나친 경우에 대한 것입니다.

내부귀인에 대한 치료적 수정과는 조금 다른 것이, 과도하게 남 탓, 상황 탓을 하는 외부귀인을 수정할라치면, 수정은 둘째치고 내담자들에게 이런 습관을 인정시키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다른 사람의 탓을 하며 억울감을 호소하는 것은 실효가 없어도 뭐 남들 보기엔 그럴듯해 보입니다.

주위로부터 지지나 응원을 얻기도 하지요.

결국 이 고질적이고 드라마틱한 대처 패턴을 놓지 못합니다.

 

원망스럽고 억울하다 기억되는 일 중에서 누구 탓을 하기도 애매한 경우도 있고, 본인 탓이었던 일도 있습니다.

설령 누구의 잘못이었대도 이제 와서 이미 소용없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감과 절망감, 수치심과 모멸감이 엉켜있는 그 기억들에 대해 쏘 쿨하게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참 드물 것입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나쁜 나(bad me)가 아닌 가여운 나(poor me)를 설정하는 이유는 아무튼 살아 보려고 그러는 것이지요.

누군가를 외부로 비난이라도 해야 통제감 상실과 불안전감, 불안감, 열패감에서 주의를 돌릴 수 있으니까요.

 

사진_픽사베이

 

부정적 사건을 외부 귀인하거나 타인의 마음을 넘겨짚어 곡해하거나 현실을 왜곡하여 피해망상을 발전시키는 등의 정신증적 증상은 좌측 외측 전전두 피질, 복측 선조체, 상 측두회, 해마 주변 영역의 이상 활동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비단 환자들뿐 아니라, 일반 인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에서도 내게 위협적으로 보이는 특정 사건에 신경을 쓰고 이를 처리하는 인지적 과정과 관련해 이 영역들의 기능성 활성화는 중요하게 고려됩니다.

실제로 직업적,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면서 즐겁게 잘 지내다가도, 내가 하려는 일에 번번이 딴죽을 거는, 자꾸 신경에 거슬리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치미는 경험들은 누구나 하게 되지요.

다만 일반 인구의 경우 정신증 환자와는 달리 '어이, 정신 차려! 너의 이 병리적인 사고 전개 뭐야!'하고 달려 나가는 자신의 생각을 급히 알아차려 멈춰세웁니다.

누구든 일에서의 실패 혹은 사랑에서의 실패를 전적으로 남의 탓이나 상황 탓으로도 돌리고 싶겠지만, 어찌어찌 정신줄을 잘 붙잡아가며 현실감을 유지한 상태에서 '남의 탓 많이, 그러나 자기 탓도 조금' 해가면서 사는 것이 가장 건강한 귀인 양상인 것이지요.

 

이 중에서 상 측두회 일부를 포함하는 측두정엽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짐작하는데 관여하는 영역입니다.

여러 연구자들이 이 사회적 뇌의 핵심 영역을 무척이나 사랑하여 경두개 자기자극술(tDCS)로 뇌의 활동성을 일시적으로 증가시켰다, 감소시켰다 하며 최근까지 다양한 일반인 대상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악취미라면 악취미로 보이겠지만 특정 뇌 부위를 일시적으로 억제했을 때에 비로소 그 영역이 가지는 기능이 뚜렷이 드러나기에 이런 방법은 최근 들어 tDCS와 같은 비침습적 두뇌 자극술의 발전과 더불어 널리 활용되는 편입니다.

 

아무튼,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능을 담당하는 우측 측두정엽의 활동성을 tDCS로 억제해두면, 상대가 혹여 가지고 있을지 모를 적대적인 의도에 대한 집착이 증가합니다.

좌측 측두정엽의 활동성을 억제하면 비적대적 의도로의 귀인이 증가되고요.

측두정엽과 귀인 양상 간 관련성 확인에 실패한 연구들도 지속 보고되기에 분명 더 다양하고 심도 있는 연구가 축적될 필요가 있겠으나, 우측 측두정엽이 공감, 도덕적 판단뿐 아니라 유독 타인에 대한 적대감과 공격성을 억제,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는 많은 연구들을 고려한다면, 타인이나 상황에 분노감을 보이고 남 탓하는 행동이 이들 영역의 이상성에서 비롯되는 것은 꽤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귀인은 매우 중요한 인지적 자기보호 자원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복잡한 상황을 비교적 단순하고 수월하게 설명해버리고, 내게 이로운 쪽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지요.

현재의 나를 보지 않으려는 방어 역시 이러한 외부 귀인의 패턴을 공고화하고 분노를 밖으로 돌리는 데에 기여합니다.

그때만큼은 자기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고요.

다만 이런 대처가 자동적인 습관이 되어버린다면 좌절에 대한 인내력은 점점 부족해집니다.

또한 버티는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 좌절이 눈앞에 예측되는 경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무력해진 상태에서 분노와 억울감과 소외감을 과잉 생산해내기도 쉽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 질리게 만든다는 것 알면서 억울감과 외로움을 이렇게나 굳이 자가발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무튼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실패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이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일 준비는 아직 안 되어있으니까요.

알아요.

잘 해왔어요.

내담자들 중에서도 자기 자신을 해치며 우울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렇게 남 욕을 하며 버티는 게 다행으로 보이는 분들도 있어요.

열패감과 정서적 고통감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어요.

다만 이제 그 방향과 속도가 많이 잘못된 쪽으로 달려 나가 오히려 자신을 해치고 있잖아요.

그것도 모두 다 아까운, 내 에너지입니다.

그냥 다른 거 자가발전해봅시다.

나 자신에 대한 귀여움이라든가.

 

 

저자 약력_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젊은연구자상 수상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CBT기반 어플- 마성의 토닥토닥" 연구 책임자
한국연구재단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정서조절 인공지능 모델 개발 II" 연구 책임자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해당 글들을 책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 허지원)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무너진 마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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