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명칭 변경 배경

2007년 가을 어느 날 인터넷 정신분열병 환자 가족 동호회인 ‘아름다운 동행’ 멤버 3,689명의 서명이 담긴 ‘정신분열병 병명 개정을 위한 서명서’가 서울정신보건가족협회 유지나 조직이사로 부터 대한 대한조현병학회(현 대한정신분열병학회)로 전달되었다.
‘권준수 외; 정신분열병 병명개정백서, 대한조현병학회, 2011’에서 발췌
‘간질’과 ‘뇌전증’이란 병명이 있다. 전혀 관계 없는 단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같은 병을 뜻한다. ‘간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인해 2009년 ‘뇌전증’이란 용어로 변경되었다. 2011년에는 사회적 통념상 이미지가 좋지 않은 ‘정신과’라는 전문과목이 ‘정신건강의학과’로 변경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하는 ‘정신분열병’이라는 명칭이 ‘조현병’으로 변경된 일이 있었다.
다음은 2011년에 대한조현병학회에서 발표한 <정신분열병 병명개정백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이라는 명칭은 의학적 견지에서 볼 때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분열이라는 단어가 포함하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가 매우 심각하여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특수성과 맞물려 환자에게 가해지는 낙인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는 환자를 진료 현장으로 불러들여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여 그 장해를 줄이거나, 그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Schizophrenia(조현병)는 1908년 스위스의 Eugen Bleuler가 처음 명명하였다. 당시 그는 dementia praecox(조발성 치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정신병이 실제로는 회복되는 경우도 있고,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름을 새로 지어 편견을 없애고 개념을 재정립하고자, 희랍어를 사용하여 schizophrenia라는 용어를 새로 고안한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schizophrenia의 희랍어적 의미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정신분열병으로 명명하였고 이것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져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불행히도 일본은 Bleuler의 의도와는 다르게 조발성 치매의 난치성 개념으로 해석하였고, 이를 우리가 차용했던 것이다.”
“지금은 Bleuler의 시대에 비하여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 시대와 비교하여 현대에는 인권이 강조되고 있으며, 약물과 심리사회적 치료의 영향으로 치료결과도 현저하게 좋아져 정신분열병을 더 이상 난치병이라고 하기 힘든 상황이다. 또한 유전학, 뇌 영상, 신경심리학의 발달 등으로 정신분열병의 과학적 개념도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이해의 폭도 훨씬 넓어졌다. 그 결과 정신분열병이라는 명칭은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적절하지 못하며 이제 변경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내외적으로 형성되었다.”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이름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의료계의 발전을 통해 조현병에 대한 지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사회문화적으로 편견을 없애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다. 명칭변경은 이러한 시대 변화를 반영해 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나를 지키는 심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