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차별로 치료 기회를 잃고 있는 군인들

 

 ‘정신과약을 복용하는 회사원’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회사 생활이 많이 힘든 걸까?’ 왜 정신과약을 복용하게 되었는지 궁금할 수도 있고, ‘나도 그렇게 힘든 적이 있었는데.’라며 본인의 힘들었던 상황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신과약을 복용하는 군인’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앞서 이야기한 생각들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전역하고 싶어서 꾀병 부리는 건 아닐까?’ 혹은 ‘총 들고 근무하기에는 위험하지 않을까?’와 같은 따뜻한 관심이나 안타까움과는 거리가 먼 생각들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군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심지어 군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런 편견은 더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 많은 군필자들에게 ‘정신과약을 복용하는 군인’은 일단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신과약을 복용하는 군인’ 혹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군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은 분명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거나 염려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정신질환 및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군대에서는 특수한 환경 및 문화로 인해 더 두드러집니다. 2020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장병 건강권 보장을 위한 군 의료체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21세기인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군인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상급자가 직접적으로 의료시설 방문 자체를 허락하지 않거나 대놓고 꾀병으로 취급하는 사례는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아프다고 말하면 타인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는 인식은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밀 보장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이력 때문에 불이익이 생기면 어떡하지?’ 이러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괴담까지 더해져 많은 군인들이 진료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쉽사리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인이 근무하는 의무대 혹은 군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데 이러한 편견은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물론 병사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서 많은 간부들이 부대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것을 병사에 비해 더 꺼리고 있으며 진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많은 경우 본인의 연가 등을 사용해서 민간 의료를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심지어 2021년도 <간부 자살예방시스템 발전연구>에 따르면, 병의 자살사고 발생에 대한 대응반응으로 병의 자살사고는 유의한 감소 추세이나 간부 자살사고는 감소하지 않고 있으며, 2018년에는 간부의 자살사고가 병사보다 약 두배나 높게 발생하였습니다.

 반면에 병사들의 경우 외부 진료를 쉽게 이용할 수 없어 대부분 군의료를 이용해야 하는데, 군대 내에서 병사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는 데 있어 자율적으로 진료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몇몇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당시에 군대에서 경험한 내용을 기록한 책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에 따르면, 병사의 경우 의무대나 군병원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위해 내원하려 하는 경우 간부와 꼭 동행해야 하며 동행해줄 간부가 없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자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에 정신과건강의학과 진료를 위해 의무대나 군병원에 내원하는 병사들은 많은 경우 간부들의 눈치를 봐야 하며, 의무대나 군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후에 약처방을 받았다 해도 수면제나 항불안제 등의 향정신성의악품을 병사가 소지할 수 없고 복용할 때마다 간부를 찾아가 복약일지를 기록하고 간부 앞에서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회사원이라면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를 보기 위해 상사와 함께 내원해야 하고 진료 후 약을 처방받은 후에 상사가 약을 보관하다가 복용할 때마다 상사 앞에서 복용해야 하는 격입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및 사고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 하지만 진료를 보는 데 자율성이 침해되고 편안한 치료 환경이 아닌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낙인과 차별은 개인의 자존감을 위협하고 증상을 더 악화시키게 됩니다. ‘내가 정말 아픈 걸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꾀병을 부리는 건 아닐까? 나 때문에 주변이 피해를 보는 게 아닐까? 나는 왜 주변을 힘들게 하는 걸까.’ 이렇게 낙인과 차별은 치료받을 권리와 기회를 빼앗을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기도 하며 그들 스스로를 낙인 찍게 하기도 합니다.

 

 낙인과 차별이 시작되는 순간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사라집니다. ‘그들이 왜 힘들어하는 건지?’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건지?’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낙인과 차별을 없애기 위한 시작은 이러한 낙인과 차별에 대해 인지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항상 시작됩니다. <우리히어로 트라우마 지원사업>은 군인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매우 큰 사업입니다. 이러한 낙인과 차별을 줄이는데 매우 중요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군인도 아플 수 있고 아프면 치료받아야 한다.’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전달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군인들이 군 내에서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간부들의 동행이 필요하거나, 간부 앞에서 향정신성약을 복용해야 하는 등 군인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불필요한 제도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조장원 ㅣ 민트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우리히어로' 트라우마 치유 지원사업 홈페이지 가기>> click

 

 

조장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민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나를 지키는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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