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이후 다른 전공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준비하고 시험을 봐서 너무 감사하게도 원하던 곳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교 지원과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영어와 그 나라 언어(제3국어)까지 배우기 위해 최대한 매일 외국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를 영어, 제3국어에 노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은 못해도 듣고나 있자는 생각에 몇 시간 동안 듣고 있고, 잘 못알아듣고 말을 잘 못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나이스해야 하니 항상 친절하고 웃는 게 버릇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1년 정도 계속되니 제 생각이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고 이것이 제 자존감을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했는데 해외에서는 부모님 지원을 받으며 보내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돈도 못 버는 상태의 저로 인해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졌습니다.

 코로나 시기 큰 우울감이 왔는데 다행히 큰일 없이 넘어갔고, 지금은 언어 시험에도 붙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는데 여전히 떨어진 자존감은 올라올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한 말이 지금 실수였는지 걱정되고 어렵다는 언어 시험도 최고로 합격했는데 내 실력이 아니고 운인 것 같이 느껴집니다. 입학이 어려운 학교도 합격했는데 이 역시 옆에서 잠시 도와준 선생님 덕에 제 실력으로 가지 못할 학교를 간 것 같고... 재능이 없는데 괜한 아집과 고집으로 예술 분야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였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함과 동시에 걱정과 불안이 너무 큽니다. 또, 다시 늦게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실에 다른 어린 학생들과 비교하며 졸업 후 경쟁력이 없을까 봐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찰 때도 있습니다.

 생리 일주일 전부터는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한국에 가지 못한 지 2년이 넘었고 이제 곧 가는데 오히려 가는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 눈물이 납니다. 언어, 이 나이에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맞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 늦은 나이...이런 것들로 인한 걱정과 불안...다 내가 원하던 것인데도 저를 힘들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들을 잘 다룰 수 있을까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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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유학 생활 중 느끼는 우울함과 걱정, 불안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타지에서 오랜 시간 혼자 지내며 공부하고 생활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준비와 노력 끝에 언어 시험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시고 원하던 곳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낮아진 자존감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신 것 같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익숙했던 언어나 문화, 생활방식과 동떨어진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익히고 배우는 과정을 거칩니다. 마치 유년기 시절을 다시 거치는 것처럼 말이죠. 특히 이미 성인으로서 모국에서의 삶과 익숙한 생활방식, 언어, 학교와 사회생활 등을 모두 경험해본 성인이 그 과정을 다시 겪는 것이 어떻게 보면 백지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익숙했던 언어나 문화, 원래 갖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정체감을 부정하거나 축소시키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연자님께는 언어와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1년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언어적 어려움으로 인해 나를 100%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그럼에도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내 불편감이나 깊은 감정을 누른 채 괜찮은 척했던 것들이 알게 모르게 쌓여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사실 내 마음은 이런데...’라는 생각과 함께 나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느낌, 원래의 나를 잃어가는 느낌을 주었던 것 아닐까요. 또,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사회인으로서 일을 했던 사연자님이 다시 학생이 되어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존하는 상황이 발달 과업 상 오히려 퇴보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누적되다 보니 원래 사연자님이 가진 능력이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실망감, 좌절감을 스스로 크게 느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서 거둔 언어 시험이나 입시에서의 훌륭한 성취를 본인의 몫으로, 칭찬받아 마땅한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우신 것이죠. 이렇게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면서 언젠가 무능함이 밝혀질까 봐 걱정하는 심리상태를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잘 알려진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해 누가 봐도 성공했고 실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 자리까지 올라온 것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라거나 타이밍,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하며 본인의 노력이나 실력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면 증후군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을 때 타인들로부터 거절당할 것이라는 불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연자님 역시 열심히 공부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매일 대화하며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어렵다는 언어 시험이나 입시에 통과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노력한 시간과 흘린 땀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해 본인의 노력과 성취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의 삶과 그 안에서 이룬 성취, 사연자님의 능력과 노력을 돌아보고 충분히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도 중요한 과업이지만, 낯선 나라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이만큼 해내고 있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대견하고 훌륭한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잠시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지금의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어린 학생들과의 비교로 걱정되고 불안할 수 있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들이 갖지 못한 사연자님의 강점이 있음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전공과 직장생활에서 했던 경험들이 지금 하고 계시는 분야의 공부와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도 있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연자님만의 영역을 개척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 직장생활 경험이 있다는 것이 생각지 못한 메리트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고요. 미래는 늘 불확실하며 예측 불가능하기에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이 늘 안 좋은 결과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자존감도 낮아진 상태이고 우울감도 느끼시다 보니 미래를 생각할 때 부정적인 가능성이 먼저 떠오르시겠지만, 긍정적인 시나리오들을 많이 떠올리시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기대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지나치게 먼 미래에 대한 일들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기보다는 ‘지금, 여기(here&now)’에 집중하면서 현재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시고, 작은 것부터라도 실천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공부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중요한 만큼 루틴으로 매일 운동을 하실 수도 있고, 언어 공부에 더 매진하시거나 졸업 후 진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련 인맥을 쌓아가거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의 시도를 해보실 수도 있습니다.

 생리 일주일 전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월경 전 증후군(월경 전 불쾌장애)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월경 4~10일 전부터 우울감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적, 신체적, 행동적 이상이 생리주기마다 반복되는 것을 말하는데,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스트레스에 따른 영향일 수도 있고, 우울증을 경험할 때는 세로토닌 분비가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생리주기에 따른 변화가 이와 맞물리면서 증상이 더욱 악화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 곧 오신다고 하셨는데, 한국에 올 날이 다가올수록 더 눈물이 나고 힘든 까닭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다시 만나는 그리움보다 그들과 마주했을 때 ‘늦은 나이의 학생으로서의 나, 돈을 벌지 못하는 나’라는 정체감이 더욱 부각될 것 같기 때문은 아닌지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많이 신경 쓰인다고 하셨는데, 이미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있기에 타인 역시 사연자님을 그렇게 보리라고 예측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선 스스로를 더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동안 한 노력과 성취를 충분히 돌아보면서 자신을 토닥여주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지금의 상황이 퇴보한 것이 아니라 더 멀리, 오래 뛰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연자님은 이미 많은 것을 해내셨고,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낼 잠재력과 능력이 충분히 있는 분입니다. 설사 그 과정에서 잠시 멈춰 서거나 때로 실패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더불어 유학 생활 및 진로 관련 어려움, 자존감이나 우울감 관련한 문제 등을 혼자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느껴지신다면 상담을 통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는 것도 좋습니다. 타지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외롭고 고독할 때가 많으실 텐데, 그럴 때 전문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방향을 찾기 위한 조력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시는 기간 동안 전문기관을 방문하셔서 상담을 진행하신 후 유학지에서는 화상 상담을 진행하실 수도 있고, 재학 중이신 학교의 상담센터 등을 통해 도움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고 스스로의 성취와 노력을 온전히 인정하며 즐겁고 행복한 유학 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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