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무기계약직으로 사는 30대입니다. 최근 대기업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후 계속 도전은 하고 있지만 거듭되는 실패로 인생이 답답합니다. 제 인생을 보고 남들은 무슨 문제냐고 합니다. 좋은 아파트에 살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부모님이 계시며 부모님 노후 걱정도 안해도 되고 계약직이지만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이고, 또 언제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별로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삶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들과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제 또래 친구들은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좋은 직업을 가져서 벌써 한 자리씩 차지하는데 저만 아직 애같이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비교적 노력을 덜 한 대가로 계약직으로 보람 없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살면서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됩니다. 제 인생이 시시해서 남에게 관심갖고 살고 또 다르게 생각해서 말하면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은 탓에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이 남들과 다른 궤도로 달리는 것 같아서, 제가 비정상으로 사는 것 같아서 퇴근 후 누워있고 또 회사에서도 힘없이 살고 있습니다. 제 문제는 그냥 이 삶에 만족하느냐 아니면 정말 죽을 만큼 노력해서 환경을 바꾸느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슬픈 게 저는 죽을 만큼 노력해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얼마만큼 노력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류 내고 시험 치고 면접 보고 그래도 떨어지고 그러면 또 힘드니까요. 이런 무력감은 병원에 가서 약을 먹으면 나아질까요? 그리고 잠도 잘 못 자고 또 아침에 눈 뜨면 회사 가기도 싫고 밥도 먹기 싫고 힘듭니다. 최대한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되네요. 주변에서 요즘 기운 없어 보인다고 부쩍 많이 이야기를 듣는 요즘입니다. 제 주변 사람 중 가족도, 친구도 정신병원에 간 적이 없습니다. 회사 동료는 있지만 괜히 신경쓰이게 하는 것 같아서 쉽사리 묻지도 못하겠구요.

 제 삶 활기차게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활기차게 살 수 있을까요? 운동도 헬스도 하고 필라테스도 했지만 의욕이 떨어지고 그냥 눕고 싶습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남겨주신 사연 잘 읽어보았습니다. 일의 보람이나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렵고 무기력해져서 많이 힘드신 상황이시군요. 남들이 보기에는 큰 고민이나 걱정 없이 편안한 삶인 것 같은데 정작 나는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남들보다 뒤처져 있는 것 같아 왠지 실패한 것 같은 마음도 드시는 것 같아요.

 객관적인 상황으로는 말씀해주신 것처럼 부모님 모두 건강하시고 좋은 집과 직장을 갖고 계시며, 사연자님도 직업적 안정성을 갖고 계시지만, 사연자님이 생각하시기에 본인이 조금 더 좋은 직장을 갖고 주변 사람들처럼 결혼도 하고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30대인 만큼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직업적으로도 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야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것 같고, 주변 사람들과도 대등한 입장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으신 것 같아요.

 사연에서 남겨주신 표현에서도 계약직으로 ‘사는’ 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규직과 계약직, 대기업과 현재 일하는 곳을 비교하면서 나의 삶을 ‘계약직’에 대기업이 아닌 지금의 직장이라는 기준점으로 규정짓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남들이 도달한 위치, 다른 사람과 같은 삶의 모양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우리 사회에서는 참 심한 것 같습니다. 특히 사회적, 직업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다고 여겨지는 30대 이후가 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시기에는 어느 정도 연봉을 받아야 하고, 어느 직급,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to do list가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죠. 그리고 그것을 다 해내지 못하면 남들보다 부족한 사람, 실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좌절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사연자님 역시 본인이 스스로 세운 기준 혹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느끼셨을지 모르는 부담이나 압박감에 힘드신 것 같습니다.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죠. 물론 대기업에 가고 정규직으로 일하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고 윤택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이 사연자님에게 반드시 맞는 삶이며,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인지 질문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삶의 모습이 사연자님 스스로 원하는 행복에 가깝다면 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셔도 좋겠지만, 만약 그런 삶에 대한 추구가 본인의 욕구가 아닌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설사 그런 모습에 도달한 후라고 해도 그 삶이 사연자님에게 반드시 만족감이나 행복을 주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겠지요.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성공에 기준을 두기보다 남들과 다른 삶의 모습이라고 해도 사연자님이 정말 원하는 삶, 사연자님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이라면 그 삶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정규직인지 계약직인지,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는 삶의 만족감이나 행복감에 영향을 주는 일부 요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전부라고는 결코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진짜 자아가 아닌 남들이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려다 보면 현재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닌 가짜 자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면서 괴리감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의 나로서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거나 사랑받기 어렵다고 느끼면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책하거나 스스로를 원망하게 되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아와 현실의 자아 사이에서 오는 간극에 우울감이나 괴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요즘 부쩍 기운이 없으시고 회사에서나 퇴근 후에도 의욕이 없으시며 눕고 싶고, 식욕도 많이 없어지셨다고 하셨는데, 우울감을 상당히 경험하고 계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정신병원 방문에 대한 어려움을 남겨주기도 하셨는데, 사연자님께서도 이미 본인의 우울한 상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느끼고 계시고 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처음 정신과나 상담소를 방문하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실 수도 있고,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용기를 내셔서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사, 임상심리사와 같은 전문가들을 통해 도움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또, 남들에게 행복의 기준을 맞추며 남들과 같지 못한 스스로를 너무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며, 그 삶의 방향이나 경로는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일 뿐입니다. 인생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결승선을 놓고 경쟁하는 레이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각자가 달려가는 길이나 속도, 방향이 모두 다르고 그 길에서 마주치는 풍경이나 느낌은 저마다 모두 다릅니다. 자신이 실패자라는 생각을 내려놓으시고, 사연자님의 삶 속에서 작은 것이라도 행복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 행복을 조금 더 즐기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또, 지금의 직장이나 지금 삶의 모습을 계속 유지하실 수도, 혹은 변화를 추구하실 수도 있지만 그 변화의 원동력과 목표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사연자님이 정말 원하는 것, 사연자님의 행복을 위한 것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삼성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준배 원장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졸업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임의
전)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부교수
전)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마음건강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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