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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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노래, 패션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Y2K라고도 불렸던 세기말 감성이 주목받고 있는 것인데요. 이효리 씨가 2000년대 유행시켰던 패션 아이템,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통 넓은 바지, 그 시기 중고교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가방 브랜드 등이 다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핫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1990년대나 2000년대 가요들, 1세대~2세대 아이돌이나 가수들에 대한 관심도 뜨겁습니다. 얼마 전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는 1세대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베이비복스가 특별무대를 꾸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로제의 아파트가 인기를 끌며 윤수일 씨의 노래 ‘아파트’ 역시 함께 재조명되었습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구축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의 만남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데요. 그러면서 연말 가요 시상식 무대의 대미를 윤수일 씨와 후배 가수들이 함께 ‘아파트’를 부르며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예전의 노래나 패션이 다시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이런 현상은 유난히 요즘 더 많이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듯이 말이죠. 패션업계에서는 20년 주기로 유행이 돌아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옷이라도 버리지 말고 잘 관리하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촌스러워 보이지만 조금 더 지나면 유행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패션, 문화가 다시 주목받는 현상을 ‘뉴트로’라고 합니다. 뉴트로는 새로움을 뜻하는 뉴(New)와 복고풍(회상, 회고, 추억)을 의미하는 레트로(Retro)의 합성어입니다. 비단 세기말 감성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던 자개장, 스테인레스 재질의 컵이나 상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한 카페, 한옥을 개조한 음식점 등 레트로 유행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레트로는 그 시기에 해당 콘텐츠나 아이템을 즐겼던 이들에게는 과거로 잠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비교적 고민이나 걱정 없이 행복했던 것 같은 과거로 데려다주는 것이죠. 이런 느낌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의미하는 ‘노스텔지어(nostalgia)’를 자극합니다. 이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리웠던 그 시절을 잠깐이나마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레트로는 기성세대에게 편안함과 행복감을 선사합니다. 지나간 청춘, 젊음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참 좋았는데.’라는 마음과 함께요. 그래서 예전에 쓰던 브랜드가 다시 유행하는 것을 보면 반가움과 함께 신기함을 느끼고, 예전에 좋아했던 가수가 오랜만에 다시 방송에 나와 노래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합니다.

 반면 젊은 세대에게는 레트로가 지나간 것에 대한 재경험이 아닌, 그 자체로 새롭고 신선한 것으로 다가옵니다. 이들에게는 레트로 콘텐츠나 아이템이 처음 접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죠. 세련되고 정교한 아이템, 자극적이고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에 익숙했던 젊은 세대는 레트로를 통해 아날로그적 감성을 경험하고, 약간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힙한, 그 사이 어딘가의 묘한 느낌을 즐깁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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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레트로가 유행하고 Y2K 시기의 콘텐츠와 아이템이 사랑받으며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는 문화적 연결고리가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성세대에게는 SES의 노래로 익숙한 ‘Dreams Come True’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에스파의 노래로 인식되면서, 가수는 다르지만 다른 듯 같은 노래를 즐깁니다. 또, 젊은 세대는 에스파를 통해 알게 된 이 노래로 인해 SES를 찾아보기도 하고, 반대로 기성세대는 리메이크된 노래를 통해 에스파라는 가수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연결고리는 세대와 세대를 잇고, 서로 다른 세대 사이의 이해와 소통을 촉진하는 좋은 도구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세대 차이에 의한 소통의 어려움과 오해에 관해 많이 이야기했고, 주목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MZ세대’, ‘꼰대 기성세대’처럼 서로를 특정 개념이나 단어 속에 가둬놓고 소통이나 공감 불가능한 존재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레트로를 통해 그런 오해와 불통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대 간의 이해와 공감을 위해서는 좋은 소통법,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마음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공통의 관심사’, ‘대화 주제’를 갖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데요. 그런 점에서 레트로와 Y2K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듭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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