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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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즐거운 경험, 행복한 경험, 괴로운 경험, 슬픈 경험 등등.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분들은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보내고 계실 텐데요, 그것이 무엇이든 경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나 흔적을 남깁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걷기 시작한 어린아이가 식탁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이는 식탁 위에 있던 뜨거운 뚝배기에 손을 뻗어 화상을 입었습니다. 이 아이는 그날부터 뚝배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됐죠. 아이가 좀 더 커서 이제는 제법 잘 뛰어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아이는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해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 그날의 경험은 이후로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고, 아이는 물놀이와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죠.

이처럼 어떠한 대상이나 행위 등 사람마다 그것을 처음 경험했던 순간의 감각이나 감정, 심상 등에 따라 이후 그에 대한 평가나 선호도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에게는 나쁜 경험보다는 좋은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언제나 맛있는 음식만 차려진 뷔페처럼 좋은 일들만 펼쳐질 수는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때로는 좋은 일도, 또 나쁜 일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좋은 생각과 느낌, 경험이 우리를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처럼, 우리의 발걸음을 좀 더 이로운 경험으로 안내하고 그것을 더 많이 내면화할 때, 정신적인 자양분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자원을 많이 축적할수록 내면의 힘이 커지고, 이것이 우리가 인생의 힘든 순간이나 부정적인 상황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끔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로운 경험을 더 많이 내면화해서 정신적 자원으로 쌓아 갈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당연히 좋은 경험을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좋은 경험을 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 직접적으로 이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물론 과거에 좋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에 그 행복하고 좋았던 감정에 다시 한 번 기꺼이 머무름으로써 이로운 경험을 활성화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두 번째는 이로운 경험을 강화하는 것으로, 감정적으로 편안하고 신체적으로 이완된 상태에서 좋았던 경험에 집중하며 온 마음으로 그 경험을 받아들이고, 다른 요소들까지 확장해 보는 것입니다. 즉, 당시의 경험에서 느껴졌던 감정과 감각, 생각 등을 확장시켜 보는 것이죠. 이를테면, 생일날 남자 친구가 감동적인 축하 파티를 해 줬던 장면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남자 친구의 사랑을 느껴 보고, 고마운 마음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때의 경험이 왜 자신에게 이토록 중요한지, 또 곁에 있는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긍정적인 인식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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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좋은 경험은 우리의 마음에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불씨가 되어 줍니다. 신경망의 연결과 뇌 손상 등에 대해 연구했던 캐나다의 신경심리학자인 도널드 헵(Donald O. Hebb)은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함께 발화하는 뉴런은 함께 연결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우리가 새로운 경험이나 학습을 할 때 이것이 기존의 신경회로에 연결을 추가하거나 활성화하며, 유사한 자극이 주어질 때도 동시에 관련된 신경회로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밝혀냈는데요, 이것이 우리가 다양한 경험과 체험, 그중에서도 이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또 그것을 우리 내면에 더욱 깊숙이 내면화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에게는 무의식중에 ‘부정형 편향’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과거오래전 선조 때부터 외부의 위험과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우리 주변의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진화해 온 것이죠. 비록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생존에 도움이 된 측면이 있지만, 때로는 과도하게 부정적인 감정이나 사고에 몰두해서 긍정적인 관점이나 시야를 가리고 균형 있는 관점이나 태도를 잃기 때문에, 자꾸만 의식적으로 좋은 경험을 떠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도 우리가 하는 경험들이 그저 허공으로 사라지거나 과거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은 더 긍정적인 뇌 회로를, 부정적인 경험은 더 부정적인 뇌 회로를 생성하거나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나긴 하루의 끝에서 하루 종일 나를 짜증 나게 했던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며 힘들어하기보다 행복했던 어느 날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잠들 수 있기를,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좋은 경험을 통해 내일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으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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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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