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증’은 아니고, ‘주요우울장애’가 맞습니다.
‘치매’는 아니고, ‘신경인지장애’가 맞습니다.
‘조울증’은 아니고, ‘양극성장애’가 맞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뭘 기준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까요?
우울증, 치매, 조울증 등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병명입니다.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도 자주 사용하는 병명이며, 결코 틀리거나 잘못된 병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울증이 아니고 주요우울장애라고 하는 걸까요?
그건 우리나라 정신건강의학계에서 DSM-5라는 기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요우울장애’, ‘신경인지장애’, ‘양극성장애’ 같은 진단명은 모두 DSM-5에서 채택하고 있는 진단명입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DSM-5는 정신건강의 모든 것을 정의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복잡하며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한가지 잣대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사실 불가능합니다. DSM만을 기준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비정상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입장에서,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분들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기 위한 일종의 공통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철수라는 환자를 보는 의사가 있고, 미국에서 마이클이라는 환자를 보는 의사가 있다고 한다면, 두 의사가 각자 자신의 환자를 보며 얻은 통찰을 서로 공유하여 더 나은 치료법을 토의하기 위해서는 철수와 마이클의 증상과 진단을 비교할 어떤 기준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미국에서 만든 DSM이라는 진단 기준을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의학적 공용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앞으로 여러분들께 이야기 드릴 마음의 이모저모들에서는 정상과 비정상, 병증과 일상을 나누는 기준으로 DSM이 자주 등장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DSM에 대한 설명을 먼저 간단히 드리고자 합니다.
DSM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으로, 미국 정신의학회(APA: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출판하는 서적 이름으로, 정신질환의 정의 및 증상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DSM은 ‘정상/비정상’의 구분이 아닌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군인들을 색별하기 위해 집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학자들과 일반 대중들의 관심으로 인해 점차 개정된 시리즈가 출간되었죠.
1952년 발간된 DSM-I을 시작으로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2013년 5월, 현재 사용하고 있는 DSM-5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개정 작업을 거칠 때마다 특정 진단명이 삭제되거나 추가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가출이 아동기 정신장애의 하나로 였지만, 지금은 가출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또 동성애 역시 성정체감 장애 중 하나로 분류되었었지만, 지금은 삭제되었습니다. 새로 추가될 진단명으로 게임 중독이 논의되고 있기도 합니다. PTSD가 정신질환으로 추가된 역사 역시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또, 질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기존 병들의 진단 기준과 분류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생물학적인 연구를 반영하여 알츠하이머를 진단할 때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반영하기도 하고, 기면증을 진단할 때 뇌척수액 검사 결과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연구가 계속되면서 우리 마음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특정 주제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반영하여 개정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현재 DSM-5는 전세계 많은 국가들에서 공히 사용되고 있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질환의 생물학적 원인과 정신적 기전, 질환 간의 유사성과 연관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단의 재현성과 검증력이 낮고, 예측 정확도가 낮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DSM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활용하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진단과 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DSM이 나름 정신질환들을 잘 분류하고, 판단할 수 있는 메뉴얼이 된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DSM의 체계를 기준으로 마음건강 주제들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총기 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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