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습관전도요법은 단지 피부뜯기 장애에만 적용되는 치료법은 아닙니다. 무의식적인 행동의 습관, 패턴을 교정하고자 하는 목표는 대부분의 정신과적 질환에서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습관전도요법은 ① 인식 훈련, ② 자극 조절, ③ 경쟁반응 훈련의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여기서는 각각의 단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인식훈련
습관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첫번째 과제는 습관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습관은 무의식적입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타납니다. 피부를 뜯는 행위를 시작하는 것도, 멈추지 않고 계속 뜯게 되는 것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집니다. 말그대로 '나도 모르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를 '내가 알게끔’ 바꿔야 합니다.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또 손톱을 뜯고 있구나.”, “내가 이 상처를 또 만지작거리고 있네.”, “딱지를 잡아 떼고 있구나.” 하는 것을 그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정을 위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당연한 이야기죠. 그러면 알아차리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요.
좋은 방법은 체계적으로 기록해 보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피부를 뜯고 있는 걸 알게 되었을 때마다 수첩을 꺼내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날짜와 시간, 장소, 상황, 생각이나 감정 등을 기록해서 일련의 표를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데이터를 모으고 나면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주로 손을 뜯고 손톱을 깨물게 되는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냥' 나도 모르게 '시도 때도 없이'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했던 피부 뜯기의 유발 조건을 명확하게 조사해 보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기록들을 대조해 보면 공통적으로 겹치는 조건을 분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한 시간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생각이 떠오르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건, 그렇게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조건을 파악해 두면 무의식적인 습관을 의식적으로 대비해둘 수 있게 됩니다.
2. 자극 조절
습관이 언제, 어떤 것 때문에 주로 발생하는지를 파악했다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그 조건에 노출되는 빈도를 줄이는 것입니다. 자꾸만 피부를 뜯게 되는 장소나 상황을 피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술을 마실 때 증상이 심해진다면 음주를 줄여 볼 수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심해진다면 가급적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 보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생각, 예를 들어 어떤 일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거리 등이 떠오를 때마다 피부를 뜯게 된다면,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 자체를 알아차리고 중단해 보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고민과 불안이 떠오를 때 다른 생각으로 전환해 보는 것이죠. 만약 그 조건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적어도 미리 대비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이미 뜯기를 시작해 버린 상황을 알아차리는 것보다, 그런 습관이 생길 만한 상황이 발생하기 전부터 미리 차단하거나 준비를 해 둠으로써 자신감을 확보한다는 것입니다.
3. 경쟁반응 훈련
무의식적인 습관의 발동을 줄여 보려 노력한다 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뜯고 싶다'하는 충동을 이겨 내는 것입니다. 강박은 '~해야 한다' 같은 의무의 생각과 충동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도록 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찝찝해집니다. 찝찝함을 넘어 불안해지고 고통스러워집니다.
피부 뜯기 같은 습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뜯지 않고 견디고 있으면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럴 때는 피부 뜯기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다른 행동을 마련 해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뜯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 주의를 전환할 수 있을 만한 자극거리로 말이지요.
피부를 뜯는 행위가 주는 물리적 자극은 대부분 상처 부위를 매만지는 손끝에서 전달됩니다. 따라서 피부 뜯기를 대체하기 위해 마련할 경쟁반응 역시 손끝으로 무언가를 매만지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이든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조약돌이나 지우개 같은 것을 만지작거릴 수도 있습니다. 머리끈이나 고무줄을 들고 다니면서 늘려 보고 튕겨 볼 수도 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피젯 같은 장난감을 들고 다녀 보는 것도 꽤나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뾰족하거나 날카로운 것, 다칠 위험이 있는 물건은 금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충동이 느껴질 때마다 그걸 다른 걸로 대체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경쟁 대체제는 말 그대로 대체제이기 때문에 원래의 자극 자체가 주는 강렬한 후련함은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슷한 물리적 감각을 통해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는것, 그 정도의 역할만 해도 충분합니다. 뜯고 싶다는 충동이 강렬하게 지속되는 것은 불과 수초에서 수분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강박의 신경회로가 만들어 낸 결과물, '습관'을 교정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좀 더 구체화된 방법으로 설명드렸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른 모든 습관들을 바꾸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보행 습관의 교정, 운동 습관 교정, 말버릇 습관의 교정 같은 것들처럼 말입니다.
핵심은 반복과 훈련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습관이 어느날 하루 아침에 사라지기란 불가능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습관을 조금씩 조금씩 덜어내 가는 과정에서의 고충은 불가피합니다.
그렇지만 결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순간 한순간의 성취를 되돌아 보고 확인할 때 분명히 변화는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총기 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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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