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당산 숲 정신과, 이슬기 전문의]
학교 다닐 때 수업 중에 선생님 몰래 간식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몰래 먹기에 과자는 최악의 음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과자가 부러지고 입안에서 씹힐 때 나는 소리도 그렇지만, 과자는 늘 바스락거리는 봉지에 포장되어 가방에서 꺼내기조차 쉽지 않다. 심지어 다른 나라의 과자도 거의 예외 없이 비닐봉지에 들어 있다. 편의점에 가면 비닐 포장지와 은박 봉지에 포장된 과자가 즐비해 있다. 종이 상자로 포장된 걸 뜯으면 그 안에는 또다시 작은 비닐로 포장된 것이 보인다.
왜 과자봉지는 모두 투명한 셀로판, 은박 봉지 등 ‘바스락거리는’ 재질로 만들어진 것일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며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있다. 인간의 심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곳에 반영된 것처럼 말이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응용심리학 저널(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발표된 연구를 살펴보자.
주부 50명에게 유산지로 포장한 빵과 셀로판지로 포장한 빵을 대상으로 ‘주관적으로 느끼는 신선도’를 측정하게 했다. 실험 결과, 피실험자들은 실제 빵이 구워진 날짜와 상관없이 셀로판지로 포장한 빵이 더 신선하다고 지각했다.
유산지와 셀로판지는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당신은 셀로판지와 과자 봉지를 생각하면 무엇이 가장 떠오르는가? 익숙한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도 위와 비슷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은 이러하다.
참가자들은 외부 소리를 차단한 독립된 부스에 들어간다. 다양한 감자칩을 앞니로만 깨물고 바로 뱉은 후, 감자칩마다 신선도를 표시한다. 연구자는 부스에서 감자칩 깨물 때의 소리를 측정하여, 감자칩 깨물 때의 소리와 피실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신선도’의 상관관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감자칩을 깨무는 소리가 2kHz~20kHz의 고주파수 범위일 때 더 신선한 것으로 지각했다. 심지어 같은 과자를 깨물었을 때, 소리만 증폭 시켜 들려주어도 더 신선하다고 지각했다. 즉, 실제 신선도와 상관없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더 클 때 신선도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과자 포장지가 만국 공통 바스락거리는 재질인 이유는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통해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왜 ‘맛’이 아니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과자의 신선도에 대한 감각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진화심리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인류는 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신선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했다. 부패한 것을 먹기 전에 피하려면 미각뿐 아니라 시각, 청각, 후각 등으로 부패 여부 및 정도를 파악해야 했다. 우리가 현재 미각만이 아닌 오감으로 음식을 즐기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씹을 때 소리가 나는 것들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말이다.
이에 대한 예시로 신선한 야채가 썰리는 소리, 고기 패티가 구워지는 소리를 강조한 햄버거 광고, 면발이 후루룩 입속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강조한 라면 광고를 떠올릴 수 있다.
유튜브의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 또한 청각이 크게 작용한다. 먹방 유튜버는 음식을 먹는 소리를 극대화해서 들려주기 위해 데시벨을 높인다. 말을 할 때는 소곤소곤 하지만 음식물을 씹는 소리는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이는 그저 입맛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신선도를 느끼도록 자극하는 것에 가깝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음악이 크거나 소음 가득한 레스토랑과 같이 시끄러운 환경보다, 조용한 환경에서 음식을 더 신선하다고 판단할 것을 예측했다. 음식 명상에서는 음식의 질감뿐 아니라, 음식의 소리에 집중해서 먹는 것을 권한다.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 음식 판매 홈쇼핑에서도 주변 소리를 최대한 배제한 뒤 음식물을 씹고 삼키는 소리를 크게 들려준다.
컨디션에 따라 입맛이 오르락내리락하듯, 식욕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인생을 즐기는 방법으로, 음식을 더 맛있게 제대로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의 머릿속에는 이미 몇 가지 광고 혹은 먹방이 떠올랐을 것이다. 조용한 환경에서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에 집중해 식사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