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삼성 마음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과거에는 ‘정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정신력을 연상했었지만, 현재는 우울, 불안, 집중력, 트라우마, 불면 같은 것들을 연상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들은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다. 부모 세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자녀들 역시 부모의 반응을 예상하기 힘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자녀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는 얘기를 했을 때 부모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크게 세 가지 반응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부정-분노
생각보다 자주 나타나는 반응이고, 또 자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반응이기도 하다. 부모의 양육이 자녀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녀 정신의 문제는 부모 양육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따라서 자녀가 자신의 정신이 아프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부모 자신의 양육에 대한 비난 또는 부모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자녀의 아픈 상태를 부정해서 자신에 대한 비난을 무효화시키거나, 자신을 비난한 대상인 자녀에게 분노를 표현하게 된다. 또 실제로 비난이 심한 부모들의 자녀는 우울 등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기에, 동일한 맥락으로 부정과 분노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자녀가 얘기하기 전, 부모의 반응을 정확히 예상할 수 있다.
2. 걱정-응원
현재 아픈 상태의 자녀를 걱정하고, 응원해주는 반응이다. 부모는 자녀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다는 것, 또 약물치료를 받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염려가 되지만, 자녀가 아픈 상태 자체에 집중을 하며 자연스럽게 걱정과 응원을 하게 된다. 부모의 지지를 받으며 치료받는 자녀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빠르게 회복이 된다. 또 이런 반응을 보이는 부모는, 실제로 부모가 자녀의 정신적인 문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수정하는 빈도도 높다. 따라서 자녀의 아픔이 가족 간의 유대가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3. 자책-우울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지만, 도움도 주지 못하는 반응이다. 자녀 정신의 문제가 부모 양육의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자녀를 아프게 만들었다는 자책을 하고 부모 스스로 우울에 빠지게 된다. 부모가 무너지는 모습을 자녀가 봤을 때, 자녀는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내 마음속에 있는, 믿고 있었던 부모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슬픔과, 그런 슬픔을 알려준 부모에 대한 분노이다. 이미 아파 흔들리고 있는 자녀의 자존감을 부모가 더 흔들어버리는 셈이 된다.
하지만 위 세 가지 반응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분노했던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긍정적인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며, 걱정하고 응원했던 부모가 지쳐 자책하고 우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위기의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적당한 거리, 적당한 관심이다.
부모는 자녀를 식물을 키우듯이 대하는 것이 좋다. 매일 애정 어린 시선을 주되 자주 만지거나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과하지 않은 정도의 물을 주는 것이다. 내가 물을 주고 싶을 때 물을 준다면, 대부분의 식물은 과습으로 죽거나 말라죽게 된다. 물은 식물이 원할 때, 필요한 만큼만 줘야 한다. 부모를 위해서도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다. 자녀의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자신의 삶이 무너지게 되고, 무너진 삶에 대한 분노는 결국 자기 자신과 자녀에게 향하게 된다. 과습으로 식물을 죽이는 사람의 마음도 편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자녀를 위해 필요한 거리는, 식물을 바라보는 정도의 거리이다. 이 거리는 아픔이 있는 자녀와 부모가 서로의 애정을 느끼기에 넉넉하고, 서로의 아픔에 상처 받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그리고 결국 이 거리가 회복을 이끌어 줄 것이다.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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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재옥쌤 짱!"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