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주전자에 손가락을 갖다 대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츠러들 것이다. 그러면서 "앗 뜨거!"라는 비명과 함께 손가락을 움켜쥘 것이다. 손가락의 따가움과 화끈함에 괴로워하며 얼굴을 있는대로 찌푸릴 것이다.
그럼 이번엔, 내가 아니라 옆의 친구가 뜨거운 주전자를 만졌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찬가지로 친구도 손가락을 움켜쥐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뜨겁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보자. 겉으로 보이는 반응이야 똑같겠지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뜨거움'이라는 '감각'도 정말 똑같을까? 내가 느끼는 이 쓰라림과 화끈거림을 친구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까? 친구가 만약 그런 감각 따위는 없이 그냥 겉으로 보이는 반응만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나는 구분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앗 뜨거!"라고 할 때의 느낌과 친구가 "앗 뜨거!"라고 할 때 느끼는 그것이 사실 좀 다른 건 아닐까? 다른지 같은지를 정확히 증명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나아가서, 만약 뜨거운 것을 만지면 피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로봇이 주전자를 만지고 '앗 뜨거'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움켜쥔다면 과연 로봇도 뜨거움이나 고통을 느끼고 있을까? 로봇이 '고통스럽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테슬라에서 AI 데이를 개최했다. AI 데이는 2020년 배터리 데이에 이어 2021년 테슬라의 가장 큰 이벤트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공개된 컨퍼런스의 모습은 자동차회사라기보다는 IT회사의 그것과 훨씬 더 흡사했다. 그간 이루어온 자율주행 인공지능의 개발 성과를 발표할 때마다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테슬라가 이번 AI 데이에서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사업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가 자율주행을 위해 인공지능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그 인공지능을 탑재한 사람 모양의 로봇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테슬라의 CEO 일론머스크는 마치 자율주행차가 운전을 대신해주듯, 앞으로는 로봇이 노동을 대신해주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내년이면 곧바로 프로토타입을 볼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물론 일론 머스크는 과장된 전망을 내놓았던 적이 많았고, 실제로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출시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늦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릴 적 영화 속에서만 보던 범용 인공지능 로봇이 실제로 개발되고 있다는 발표를 보니 설렘과 기대, 걱정과 놀라움이 섞여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드는 것만은 사실이다. 벌써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진짜 인공지능 로봇을 마주하게 될 그 순간이 떠오른다.
만약 테슬라의 휴머노이드가 뜨거운 주전자를 만진다면, 그 로봇은 '뜨거움'을 느낄까? 고통스러울까?
이 질문은 '인공지능도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아주 오래되고 진부한 질문으로 귀결한다. 그리고 그 오래된 질문은 '의식이란 무엇인가'하는 훨씬 더 오래되고 거대한 질문을 전제하고 있다. 두 질문 모두 수많은 학자들이 오랜 시간 입씨름을 벌여오고 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
일단 의식(consciousness)이란, 그 단어의 정확한 뜻을 이야기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또 단어가 다양한 의미로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가 매우 크다. 따라서 조금 범위를 좁혀, 로봇이 뜨거운 주전자를 만지면 고통을 느낄까?에 대한 질문에 집중해보도록 하자.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일단 의식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움켜쥐고, 얼굴을 찌푸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은 '반응'이지만, 뜨거움을 느끼는 것은 반응이 아니다. 뜨거움 따위의 감각을 떠올리지 않아도 반응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유기물로 이루어진 생물체는 고온에 노출되면 손상을 입기 때문에, 뇌는 고온을 감지하면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일련의 반응들을 출력해낼 수 있다. 위험한 고온 자극이 뇌에 제대로 입력되기만 하면 된다. 그 인식과 반응 회로 사이에 뜨거움을 느끼는 의식의 존재는 사실 필요가 없다.
로봇을 생각해보면 조금 더 직관적이다. 로봇은 기체의 손상을 회피하고 앞으로의 추가적인 손상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반응들을 보일 수 있다. 이런 반응들을 위해서 의식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자극 -> 반응]의 회로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로봇이 손상을 회피하도록 설계할 때에 고통을 프로그래밍할 필요는 없다.
뜨거운 주전자를 만진 나의 반응은, 손가락의 감각 세포에서 발생한 전기신호가 뇌로 이동해서 신경세포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닌 후 팔과 얼굴 근육세포의 전기신호 반응으로 이어지는 회로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나와 내 친구는 이러한 반응들과 함께 '뜨겁다, 아프다'라는 감각을 느낀다. 이 불필요한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러한 느낌은 감각질(感覺質) 또는 퀄리아(qualia)라고 일컫는다. 어떤 것을 지각할 때에 의식 속에 떠오르는 감각이나 심상을 말한다. 앞으로 이 글에서 '의식'이라 함은 퀄리아의 주체로서의 의미로만 그 뜻을 한정 지어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테슬라의 인공지능은 의식을 갖고 퀄리아를 떠올릴 수 있을까?
의식에 대한 이론은 무척 다양하지만, 의식의 정체를 기계적으로 분석해 보았다고 이야기할만한 학자로는 아마 줄리오 토노니(Giulio Tononi)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줄리오 토노니는 정신과 의사이자 위스콘신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수면과 의식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이다.
토노니는 대부분의 현대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뇌를 단지 정보처리 장치라고 생각했다. 생물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변에 맞춰서 적응적으로 행동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즉, 외부 환경 자극에 대해 생존에 유리한 반응을 출력하는 [자극-> 반응] 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처리 장치의 발전이 오랜 시간 진화적으로 누적되며 복잡해진 결과물이 바로 뇌라고 보았다.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을 출력하는 처리 과정은 단지 생물의 뇌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계장치에서도 일어난다. 전등 스위치 같은 간단한 장치부터 컴퓨터처럼 복잡한 것까지, 모든 기계는 일종의 정보처리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집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의식이 없고, 뇌는 의식이 있다. 토노니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왜 어떤 정보처리 장치는 의식이 있고, 어떤 것은 없는가? 그 차이는 무엇인가?
줄리오 토노니는 동료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와 함께 개발한 ‘통합정보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통합정보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매우 다양하고 세분화된 개별 정보처리 장치가 매우 많이 모여있고, 또 이들이 모두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소통할 때에 의식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갛다'를 느낄 수 있는 의식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빨간색 사과를 보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빨강'이라는 감각이 떠오른다. 사과를 보지 않아도 빨강의 감각을 떠올릴 수 있다. 빨강의 감각질(퀄리아)이다. 눈앞의 빨간 사과를 보면서 떠올리는 나의 이 감각이 내 친구가 떠올리는 그 느낌과 같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하여간 우리는 각자 빨강의 퀄리아를 가지고 있다. 그 퀄리아는 우리의 ‘뇌’라는 정보처리장치가 가진 의식 속에 떠오른다.
이번엔 빛에 반응하는 작은 전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센서가 [빛이라는 자극]을 감지하면, 연결된 전구(포토 다이오드)에서 [발광(發光)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간단한 [자극-> 반응] 정보처리 장치이다. 이 전구도 빨간빛을 보면 반응한다. 하지만 파란빛이나 노란빛에도 반응한다. 빛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빛들이 무슨 형상을 이루는지도 구분하지 못한다. 당연히 의식도 없다.
그렇다면 이 작은 전구를 매우, 무수히 많이 모아보자. 센서도 매우 많아서 빛에 매우 예민하고 다양하게 반응할 수 있다. 또, 빨간빛일 때만 반응하는 전구와 파란빛일 때만 반응하는 전구, 초록빛일 때만 반응하는 전구들로 다양하게 모아보자. 이제 이 전구 무리는 빛의 강도와 색깔, 빛의 형상에 따라 세밀하게 구분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사실 간단한 디지털카메라 센서에 가깝다. 이것에 빨간 사과를 비추면 이 장치는 빨강의 퀄리아를 떠올릴 수 있을까?
당연히 카메라 센서는 의식이 없다. 빨갛다는 감각을 떠올릴 수 없다. 세분화된 정보 단위들이 무수히 많이 모였지만, 통합정보이론에 의하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식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더해, 각각의 세부 정보처리 단위들이 서로 연결되어 소통하고 있어야 한다. 다이오드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각각의 발광 반응이 다른 다이오드들의 반응에 긴밀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수많은 감광 포토 다이오드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반응하고 있기만 하다면 그 장치는 의식이 있을 수 있다.
조금 갑작스럽지만 어쨌든 토노니는 이것이 의식의 탄생 조건이라고 이야기했다. 정보의 1) 세분화와 2) 통합성, 이 두 가지가 충분히 크다면 의식이 생겨날 수 있다. 토노니는 심지어 이 세분화와 통합성의 정도를 계산하는 식을 만들었고, 그 수치를 파이(Φ)라고 정의했다.
어떤 장치더라도 파이 값이 충분히 크면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치의 정보처리 수준에 따라 파이 값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모기의 파이 값은 강아지보다 작고, 강아지의 파이 값은 인간보다 작다. 생물체가 아니더라도 파이 값을 가질 수 있다. 각자 모두 파이 값만큼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파이 값이 클수록 의식 또한 복잡하며, 따라서 더욱 심오한 퀄리아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테슬라 휴머노이드의 파이는 어느 정도의 수치를 갖고 있을까? 테슬라의 인공지능은 충분히 세분화된 정보 단위가 서로 충분히 연결되어 있을까? 테슬라의 휴머노이드는 사과를 보며 '빨간 맛'을 느낄 수 있을까?
* [테슬라의 AI 로봇은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2편)]에서 이어집니다.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