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러분은 여러분과 닮은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으신가요?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제가 아는 사람이랑 닮으셨어요.”라는 말을 들어 봤거나 반대로 그런 말을 해본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떨 때는 인종이나 국경을 뛰어넘어 닮은꼴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닮은꼴 혹은 똑같이 생긴 사람을 의미하는 ‘도플갱어’라는 표현도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도플갱어와 관련된 속설로 “닮은 사람 세 명을 만나면 죽는다.”라는 말도 있지요.
여러분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왠지 모르게 반갑고 친근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닮은 수준을 뛰어넘어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똑같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만약 그 상대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라면 어떨까요?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1970년대에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인간과의 유사성 정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설명한 바 있습니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uncanny valley)’으로 불리는 이 이론에서는 인간과의 유사성이 거의 없는 로봇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호감도가 매우 낮고, 유사성이 높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진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상승한 호감도가 갑자기 떨어지는 구간이 있는데, 인간과의 유사성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특정 부분부터는 다시 불쾌감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과의 유사성에 따라 달라지는 호감도의 양상이 U자 모양의 골짜기 모양을 띠기에 불쾌한 골짜기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지, 얼마나 비슷한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는 많은 사람의 관심사입니다. 산업현장에서 인간이 하기 어려운 위험한 일이나 단순노동을 대신하는 것부터 최근에는 머신러닝, 딥러닝과 같은 학습활동을 통해 인공지능(AI)이 곳곳에 적용되면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인간과 로봇 간의 정서적 교감이나 친밀한 관계 형성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로봇이 아니야>라는 드라마에서 인간과 로봇 사이의 교감과 사랑, 힐링을 주제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아 사람과 접촉하면 알러지 반응을 나타내던 남자주인공은 인간의 모습과 말투, 심지어 감정까지 쏙 빼닮은 로봇과의 교감을 통해 점차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아갑니다. 물론 상대가 딥러닝을 통해 감정과 반응을 학습하는 로봇이라고 생각한 채로 말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그녀는 로봇이 아닌 로봇을 연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혼란에 빠지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를 통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주요한 메시지로 전달합니다. 또, 비록 여자 주인공이 사람이기는 하지만 인간과 로봇이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인간과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이 드라마 외에도 인간과 로봇의 관계는 많은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다루어졌습니다. 2004년 개봉한 <아이로봇>이라는 영화에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로봇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간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그려 나갑니다. 영화 <로보캅>에서는 인간 경찰 대신 인간 뇌의 일부와 로봇이 결합된 존재인 사이보그가 치안 업무를 담당하며 인간을 통제하는 상황을 보여 줍니다.
로봇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시각과 묘사에는 로봇이 가져올 이점과 함께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인간과 유사한 존재에 대한 동경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 윤리적 이슈가 복합적으로 혼재되어 있습니다. 로봇이 인간의 필요를 채워 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과 동시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과 존엄성을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가치관의 혼란이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로봇뿐만 아니라 ‘딥페이크’ 기술에 대한 우려도 많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된 딥페이크 기술은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유명 축구선수인 데이비드 베컴이 9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광고가 대표적입니다. 사람들은 딥페이크 영상이 사실이 아님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신뢰하거나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딥페이크가 당사자 동의 없이 불법 합성된 영상의 형태로 음란물이나 사기행각, 성범죄 등에 악용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로봇이나 AI, 딥페이크 기술이 긍정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온라인 상담이 활성화되고 있는 요즘은 챗봇을 통한 상담뿐만 아니라 로봇을 활용한 상담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로봇이 내담자의 표정을 읽고 감정이나 수면 상태를 추적기록하여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치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스타트업 기업에서 만든 가상 인간(디지털 휴먼) ‘브러드’가 광고모델로 활동하며 1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가상 인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1세기가 시작하기도 전인 1998년에 이미 사이버 가수 ‘아담’이 활동을 시작했고, 뒤이어 류시아, 사이다와 같은 사이버 가수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가상 인간, 로봇, AI와 같은 기술은 이미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인간과의 유사성을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불쾌한 골짜기의 불쾌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직업을 잃거나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것과 같은 원치 않는 변화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합니다. 그런 일들은 이미 어느 정도 실제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 더 심화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술 발전으로 인해 우리 삶이 더 편리해지는 부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양날의 검과 같이 득과 실이 늘 공존할 것이고, 그중 어떤 것이 더 크게 다가올지는 윤리적, 철학적 가치판단과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이미 시작된 변화를 무작정 두려워하거나 거부하기보다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