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p.109)
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대표작인 「변신」 도입부이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났을 때, 말 그대로 해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이 해충이 되어 기상천외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 소설의 목적이 아니다. 소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을 별일 아니라는 듯 건조한 묘사로 끌어나간다. 이러한 서술기법은 ‘당신의 존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독자에게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는 주인공 그레고르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레고르는 해충으로 변한 자신의 존재를 걱정하기보다, 실질적 가장으로서 자신이 해충이 되었기에 일을 못 하게 된 것을 걱정한다. 마치 그레고르 자신의 존재보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듯이.
소설은 해충이 된 뒤 그레고르의 생각과 행동 변화와, 주인공 그레고르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를 담담한 문체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변한다는 환상적인 소재를 통해, 너무나 현실적인 가족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많은 해석이 난무한다. 우리가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은 주인공 그레고르가 해충으로 변한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 및 사고의 흐름이다.
일어나려면 팔이나 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고 다리만 많았다. 그 다리들은 끊임없이 멋대로 움직였고, 뜻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한 다리를 구부리려고 하면 그 다리가 먼저 펴지는 것이었다. 한 다리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간신히 해놓아도 그 사이에 다른 다리들이 제멋대로 아프게 요란스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쓸데없이 침대 속에 있어서는 안 되겠어.” 그레고르가 혼잣말을 했다. (p.113)
해충이 된 그레고르는 움직일 방도를 찾는다. 하지만 몸은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과거에 침잠하는 것뿐이다.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온 그레고르는‘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인가?’라는 물음을 들여다보기보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라는 물음에 사로잡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레고르는 우울감에 젖고, 자신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떠올린다. 자신이 해충이 되었다는 것보다 그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더 초조해지고 우울해지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레고르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무기력한 상태에서도 자신이 왜 해충이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좋아질 수 있는지가 아니라, 자신이 일하지 못한다는 걱정에 빠진다. 가족들을 부양하는 경제적 기능을 통해 자신을 확인받아왔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그레고르가 해충이 된 부분은 위와 비교했을 때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 그레고르의 심리를 비추어주는 서술에 따라 독자 또한 그렇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독자는 그레고르의 안위를 걱정할 뿐, 어쩌다가 그가 해충이 되었는지 궁금해했던 것마저 잊어버린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다. 우리는 경제적, 사회적 기능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것에 익숙하고, 자기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 마음이 안 좋을수록 그 상태를 인정하고 마주하기보다,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기능 여부를 통해 자기 존재를 보여주려고 한다. 우울감이나 무기력을 피해 일을 하고 움직일수록 공허한 마음이 더해가는 이유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위로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알 수 없는 우울감이나 무력감, 잠이 안 오는 상태가 종종 찾아온다면 눈을 감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나는 지금 정말로 괜찮은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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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