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 (1)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자라는 것은 그저 신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다 하지 않는 사람에게 철이 안 들었다는 표현을 쓰듯, 성장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며 다양한 사건을 겪고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프고 사랑하고 배우며 내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성장이란 다양한 측면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중 하나가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화이자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큰 인기를 얻은 ‘라이언킹(The Lion King, 1994)’은 어린 사자였던 주인공 심바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통해 내적 성장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받아들이기 힘든 거대한 사건을 겪은 후 도망치고, 여러 인물과 관계성을 통해 천천히 일상을 회복하며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서사는 동화적인 상상력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각종 등장인물의 역할과 주인공 심바의 생각 변화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심바는 ‘프라이드 랜드’를 다스리는 아버지 무파사에게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배운다. 무파사는 보호자이며 교육자로서 어린 심바에게 하나의 세상 그 자체의 존재이다. 하지만 심바가 성장 단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채 익히기도 전에 불행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왕좌를 향한 욕심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해 삐뚤어진 무파사의 동생 스카로 인해 무파사가 죽고 만 것이다. 스카의 계략으로 무파사가 죽은 뒤 스카는 어린 심바에게 ‘네 탓에 무파사가 죽은 것’이라는 죄책감을 심어준다. 어린 심바는 아버지 무파사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죄책감과 두려움에 못 이겨 현실을 등진채 프라이드 랜드에서 도망친다.

 

사진_네이버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
사진_네이버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

 

이처럼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을 제대로 마주하지못해 현실에서 도망쳐버린다. 물론 어떤 사건이냐에 따라 심각성이 다르겠지만, 사건 그 자체보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적 동요가 중요하다. 견딜 수 없는 트라우마라면 도망치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하지만 도망쳤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더욱 가중되는 경우 문제가 된다. 등장인물인 티몬과 품바는 지쳐 쓰러진 심바를 발견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여기서 나오는 ‘하쿠나마타타(Hakuna matata)’는 스와힐리어로 ‘문제없다’라는 뜻이며 애니메이션에는 ‘근심 걱정 모두 떨쳐버려’라는 뜻으로 쓰였다. 심바는 이를 통해 위로받고 회복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심바가 느끼는 하쿠나마타타는 티몬과 품바가 느끼는 하쿠나마타타와 차이가 있다. 티몬과 품바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고 노래했지만 심바는 그렇지 못하다. 어쩌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도피라는 측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 도피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받아들이지 못할 과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힘을 회복할 여유가 필요하다. ‘라이언 킹’은 사건 직후 곧바로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의 시간을 갖는 장면을 설정하여 극에 밀도를 더하는 영리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티몬과 품바는 심바에게 회복과 여유를 알려주는 것 외에도 중요한 역할을 쥐고 있다. 하쿠나마타타의 삶을 통해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던 세 인물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티몬은 별이 검은색 천에 반딧불에 박혀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품바는 별이 가스 덩어리라는 식견을 말한다. 그리고 아버지 무파사가 해준 말을 떠올린다. 무파사는 어린 심바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심바, 별들을 보렴. 하늘에서는 위대한 선왕들이 우릴 지켜보고 있단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널 지켜보는 선왕들을 생각해. 늘 인도해주실 거야. 그리고 나도 있을 거야.”

이 장면은 심바가 아버지 무파사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아닌 자신을 지켜보는 존재로 떠올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같은 별을 보더라도 각자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각자의 마음에 담긴 경험과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_네이버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
사진_네이버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

 

어린 시절 친구였던 날라를 만나고 즐겁게 지내도 심바는 행복해지지 못한다. 심바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며, 그 때문에 생긴 죄책감과 두려움에 여전히 갇혀있기 때문이다. 날라는 행복했던 기억을 상징하는 듯하다. 행복했던 기억은 우리가 현재를 살아갈 힘을 주지만 근본적인 트라우마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심바에게 힘을 주는 것은 날라가 아닌 라피키이다. 라피키는 무파사가 다스리던 프라이드 왕국의 수상으로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며 무파사와 심바를 이끌어주는 존재다. 어른이 된 심바는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도망쳤다는 사실과 뭘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지만, 그전에 아픈 과거와 맞서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심바에게 라피키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는 너를 아프게 할 수 있지. 그런데 그 과거는 말이야. 도망칠 수도 있고, 뭔가를 배울 수도 있는 거지.”

심바는 이 말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어 트라우마로 상징되는 인물인 스카를 마주한다. 그리고 당시에 스카가 아버지 무파사를 절벽에 떨어뜨리는 모습을 떠올리고 과거를 극복하게 된다. ‘라이언 킹’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충분한 회복 기간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개인의 아픔을 보듬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게 한다. 어린 사자였던 심바는 어른 사자가 된 후에도 트라우마에 갇혀 있었지만, 내적 성장을 통해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게된다.

“삶을 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는 걸. 그리고 우리가 아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이거지. 모든 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수면센터
대한민국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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