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양부모가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입양기관은 각종 서류를 검토하고 상담과 교육을 통해 양부모가 앞으로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지 세밀하게 판단해 가정법원에 입양 허가를 신청한다. 가정법원 역시 같은 절차를 거친다. 그런데 정인이가 양부모에게 입양될 당시는 이와 같은 철저한 검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입양이 허가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입양 아동의 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입양 과정에서 양부모가 아이를 정상적으로 키울 수 있는지를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입양 후에도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입양 후 1년 동안 법원에서 모니터링 기간을 가진 후에야 자녀로 등록할 수 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아동 학대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기는 어렵지만, 법과 제도의 정비는 입양 아동의 학대를 막는 출발점이다.

입양에 대한 사회의 몰인식과 불편한 시각도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아동을 바꾼다든지”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입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경우다. 친부모가 전쟁, 질병, 범죄, 법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아이의 양육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자식으로 삼아 키우는 박애정신에 기초한 제도가 입양이다. 마음이 변했다고 취소하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정인이 양부모도 아이를 분풀이 대상으로 삼다가 죽여 버리겠다는 악한 마음으로 입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를 입양해서 친자식 이상으로 잘 양육해 사회에 크게 이바지하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시킨 수많은 사례가 있다.

 

사진_픽사베이
사진_픽사베이

 

아동 학대를 막기 위한 사회의 감시망 확충은 필수적인 장치다. 정인이는 세 차례에 걸쳐 구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감시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렀다. 첫 번째 신고 때는 경찰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했고, 차 안에서 방치되어 있는 정인이를 발견한 시민에 의해 두 번째 신고가 접수됐지만, 역시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작년 9월 23일에는 정인이가 병원에 다녀간 직후 담당 의사가 학대가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모처럼 정인이가 어린이집에 왔는데,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 상태가 안 좋아 선생님이 엄마 몰래 병원에 데리고 온 것이다. 이때도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가 출동해 조사했으나,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린 것이다.

누가 됐든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학대가 의심되거나, 신고가 접수되었을 경우,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서 즉각 출동해 아이를 격리시키고, 전문가의 진단과 조사를 통해 학대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아이를 학대하는 것은 남의 집 가정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범죄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 기간 동안 주요 범죄 신고 건수는 지난해보다 감소했으나 아동 학대에 관한 신고는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 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아동 학대를 조기에 발견하고, 피해 어린이를 적절히 보호하며, 수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어린이집, 학교, 병원,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사이에 유기적 협력 체계가 마련되고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아동 학대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이 어린이를 힘으로 제압하고 억누를 수 있는 나약한 존재 혹은 자신의 분노나 억압을 쉽게 풀어 버릴 수 있는 만만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과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성숙한 정신세계와 합리적 행동양식을 갖추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이 폭력적이라면, 가정 안에서 어린이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면, 그것은 어른들의 비이성적이고 몰지성적인 태도와 행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것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 한 국가의 평화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닌 것처럼 가정의 평화도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변화를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일상의 언어와 대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폭력 행위는 폭력적인 생각과 폭력적인 언어를 통해 유발된다. 정신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이 폭력 행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언어를 바꾸면 대화가 달라지고 행동도 변한다. 폭력은 대화 방식이 아니다. 그런데 폭력에 자주 노출되면 자기 의사를 상대방에게 강제하는 수단으로 대화가 아닌 폭력을 사용한다. 폭력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고 의사가 관철되는 걸 자꾸 경험하다 보니 그것이 일상적 대화의 방식이 된 것이다. 학대 경험을 자꾸 하면 아이 마음속에는 “원래 이런 식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의견 조율이 안 될 때는 폭력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거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의학계에서도 분노를 풀 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표출하는 게 좋다고 믿었다. 이성이나 도덕으로 너무 감정을 억누르면 나중에 큰 병이 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될 수도 있으니 그때그때 샌드백을 때리거나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식으로 푸는 게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분노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되면 그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 연구 결과 드러났다. 분노가 해소되는 게 아니라 상승되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은 분노를 즉각 표출하기보다 진솔한 대화나 다른 건전한 방법으로 풀도록 권유하고 있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국제 평화단체인 비폭력대화센터(CNVC)의 설립자이자 교육책임자인 임상심리학 박사 마셜 로젠버그는 저서인 『비폭력 대화(원제: Nonviolent Communication)』에서 모든 폭력에는 폭력적인 언어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훈련을 통해 모두가 비폭력 대화를 체질화할 수 있어야 폭력이 난무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비폭력 대화는 ‘관찰-느낌-욕구-부탁’의 과정을 거친다. 상대방을 관찰하고,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하며, 이면에 감춰진 욕구를 파악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부탁하는 것이다. 분노와 폭력에 대한 그의 처방은 공감에 귀 기울이며 비폭력 대화에 이르는 것이다.

“나는 분노란 모두 삶을 소외시키고, 폭력을 도발하는 사고방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든 분노의 핵심에는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을 깨워주는 자명종으로 분노를 활용한다면, 분노는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곧 우리에게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있고, 이 욕구가 충족될 가능성이 낮은 방식으로 지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활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분노는 우리 욕구를 충족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처벌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활력을 쓰게 한다. ‘의분’에 동참하는 대신, 나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욕구에 공감으로 귀 기울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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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수면센터
대한민국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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