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32)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차이나 과장의 꿈은 퇴직이다. 멋지게 사표를 내고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갈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언제 그런 날이 올지, 어떻게 그날을 맞이하며 보내야 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아무도 눈치를 채는 사람이 없다. 워낙 능력 있고 조직 문화에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그는 이 일에 딱 맞는 사람이다. 항상 즐거워 보이고 에너지가 넘쳐나는 듯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해서 보기 좋게 일을 마무리한다. 그는 상사에게는 가장 듬직한 부하인 동시에 후배에게는 제일 믿음직한 선배다. 같은 부서는 물론 다른 부서에서까지 그를 따르며 롤 모델로 삼는 직원들이 많다. 그야말로 완벽한 직장인이다.

이런 차이나 과장을 그 누가 언제나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여기겠는가? 도대체 왜 그는 이렇게 완벽하게 직장에 적응하고 있으면서도 늘 퇴직을 꿈꾸는 걸까?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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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차이나 과장의 모습을 보면 직장에 있을 때와 판이하다.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탈진한 상태로 퇴근한 그는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곧바로 소파 위에 쓰러진다. 옷을 갈아입고 씻을 기력도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뿐이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다. 회사에서는 그토록 깔끔하고 청결하며 정리 정돈을 잘하는 그이지만,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거실에는 머리카락과 휴지가 널브러져 있고, 침실에는 이부자리가 엉망으로 구겨져 있으며, 주방에는 설거지 안 한 그릇이 수북하다. 혼자 사는 노총각인 그는 노상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 차이나 과장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잘 빗어 넘긴 정갈한 머리에 계절에 어울리는 세련된 슈트 그리고 유행에 딱 맞는 화사한 넥타이는 멀리서 봐도 반짝반짝 빛날 정도다. 처음 본 사람이 봐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조직의 최고 에이스다. 자리에 앉아 그날 할 일을 점검하는 그에게서는 퇴직이 꿈인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주말. 출근하지 않는 날은 일찍 일어날 필요도, 세수할 필요도, 옷을 갖춰 입을 필요도 없다. 침대나 소파 위에서 빈둥거리며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내가 너무 가식이 심한 거 아닌가?’

‘회사에서의 나와 집 안에서의 나, 어떤 게 진정한 내 모습일까?’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있을 때의 엘리트 차이나 과장이 진짜 자신인지 아니면 집에 있을 때의 백수건달 차이나가 정말 자신인지 자기가 생각해도 알 수 없을 만큼 헷갈렸다.

차이나 과장처럼 타인의 눈으로 보는 나와 내 눈으로 보는 내가 너무 달라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스스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의도한 게 아니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자기도 그런 삶이 더없이 부담스럽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 공적 자아(Public Self)와 사적 자아(Private Self)다. 공적 자아는 타인에게 인식되는 나의 모습이다. 남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사적 자아는 스스로만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남들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나는 잘 아는 적나라한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두 자아는 같을 수가 없다. 자기 관리와 통제가 대단히 엄격한 사람의 경우라고 해도 그 차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적을 뿐이다. 모든 사람은 이런 이중성을 지닌다.

차이나 과장의 공적 자아는 완벽에 가깝다. 한결같이 에너지 넘치게 일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며 타인들에게 모범이 된다. 반면 사적 자아는 한없이 초라하다. 기운이 다 빠진 채 녹초가 되어 소파와 침대를 어슬렁거리는 한량이다. 같은 사람의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많은 에너지가 쓰이기에 본인은 더 힘겹고 고달프다.

그렇지만 이런 차이는 당연한 거라고 봐야 한다. 집에 와서도 회사에서 하던 것처럼 하면 숨이 막혀 살기 힘들다. 회사에 가서도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행동하면 조직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하는 분위기일수록 이 같은 차이는 한층 벌어진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양보다 집단주의가 보편화된 동양 문화권에서 두 자아 사이의 차이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이나 과장처럼 자신의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 사이의 간격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즉 숨기고 싶은 내 모습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보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적 자아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사적 자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그와 같은 모습이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한정된 내 에너지를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에 잘 분배하는 게 중요하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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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에 내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사용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

첫째, 나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사적 자아를 위해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동안 나 자신을 위해 얼마나 투자했는지를 따져본다. ‘작년에 외출복을 사는 데 돈을 얼마나 썼을까? 집에서 편하게 입는 옷을 사는 데는 얼마나 돈을 썼을까?’, ‘한 달 평균 다른 사람과 외식하느라 쓴 비용은 얼마인가? 집에서 나 혼자 식사하느라 들어간 비용은 얼마인가?’ 하나하나 점검해 보는 게 좋다. 당연히 공적 자아를 위해 쓴 돈보다 사적 자아를 위해 쓴 돈이 적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적 자아를 위해 사용하는 비용을 늘려본다. 타인을 위해 돈을 쓰는 만큼 나를 위해서도 돈을 써야 한다. 집에서 입는 옷도 멋진 걸로 사서 입고, 혼자 밥 먹을 때도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 회사에서 틈틈이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가다듬듯이 집에서도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게 좋다. 혼자 있는 시간에 투자하는 것은 사적 자아, 즉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둘째, 사적 자아가 휴식하고 생활하는 공간인 집을 잘 챙기는 것이다. 사적 자아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집 안을 잘 챙기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청소도 열심히 하고, 물건도 가지런히 놓고, 매사 깔끔하게 사는 사람이 자기 집 안은 엉망인 상태로 방치한다. 사적 자아에 대한 홀대다. 집은 또 다른 내 자아다. 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깨끗하게 예쁘게 가꿔야 한다.

셋째,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것이다. 회사 직원들이나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는 건 공적 자아의 대인관계다. 친구들은 가족은 아니지만, 사적으로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사이다.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회사 사람들과만 대인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다 보면 공적 자아가 더 중요해 보이고, 그것이 진정한 자기 모습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그리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언제부턴가 고향 친구나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머릿속에 회사와 관련된 것들로만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너 왜 그렇게 얼굴 보기 힘드냐? 회사 일 너 혼자 다 하냐?”

“그게 아니고, 열심히 안 하다가 잘리기라도 하면 어쩌냐? 내가 이 회사 말고 갈 데가 있냐?”

“무슨 소리야? 너 정도 능력과 경력이면 더 좋은 회사 얼마든지 갈 수 있어. 알아봐 줄까?”

“그래? 정말이야?”

이런 대화를 마음 놓고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친구밖에 없다. 친구 말대로 꼭 이직하는 게 좋다는 말이 아니라 친구와 사적 자아가 자주 만나다 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고, 없었던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며, 낮아졌던 자존감이 다시 높아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무조건 사적 자아는 진실이고, 공적 자아는 거짓이라는 게 아니다. 공적 자아를 가꾸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사적 자아를 가꾸기 위해서도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나를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나 자신이 나를 좋게 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나에 대한 나 자신의 평가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사랑하며, 나를 끝까지 책임질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한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조장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민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나를 지키는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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