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박사 이광민의 [슬기롭게 암과 동행하는 방법] (11)
[정신의학신문 :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의학박사]
Q1: 암을 겪는 과정이 너무 막막하고 힘듭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자신감도 떨어지고요. 저는 회복 탄력성이 없는 걸까요?
A: 회복 탄력성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회복 탄력성을 “내가 해내야 한다. 내가 이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 탄력성이 없는 것이고 지금의 상황에 지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회복 탄력성은 오히려 압박감과 부담감으로 다가옵니다. 회복 탄력성은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억지로 긍정을 짜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버텨내는 것,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어느 정도까지 에너지를 모으고 있는 것, 이게 회복 탄력성일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가 지난 다음에서야 내 안에 축적된 긍정적 요소를 하나씩 찾아내는 게 가능합니다. 힘들 때는 힘겨운 게 당연합니다. 억지로 그걸 부정하면 할수록 힘든 정도만 더 크게 다가옵니다. 힘든 상황일 때는 현재를 그저 버텨내면서 “지금은 웅크리고 있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의미 있는 걸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긍정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또 다른 시야가 보이기 시작할 거야.” 이렇게 생각을 끌고 가는 것이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길입니다.
Q2: 암 치료를 마친 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있지만, 재발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있을까요?
A: 염려되는 부정적 상황이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면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뚜렷하게 결과가 예상된다면 결과를 받아들이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지만, 정해진 것도 없으면 막연하게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만 커집니다. 이쪽인지 저쪽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태일 때 사람은 더 불안해지거든요. 그럴 때는 결과에 대한 근거가 나타났을 때 그때부터 고민하겠다고 의식적으로라도 생각을 미뤄두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봐야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고 불안해지면서 생각만 복잡해질 뿐입니다. 우리는 불필요한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 다른 현실에 몰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주제가 단순한 작업일 수도 있고, 운동처럼 몸을 움직이는 걸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에 몰두하면 지금 당장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생각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불안에는 나한테 필요한 불안이 있고, 필요 없는 불안이 있습니다. 나한테 필요한 불안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불안이라면 이것은 내 생각에서 몰아내려 해야 합니다. 생각을 돌리려고 애를 쓰는 것이죠. 암의 상황은 분명 우리에게 불확실한 환경을 만들고 우리의 정서를 힘들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지금은 심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고잉 온 토크’에서 드리는 여러 이야기나 나눔이 비록 비대면이지만, 여러분의 삶 속에서 긍정적인 요소들을 찾아내는 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3: 내가 왜 암에 걸렸을까 생각해 보면 암 발병 전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거든요.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그 상황과 마주하게 될까 두려워요.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요?
A: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중에 암 경험자들에게 정서적 측면과 심리적 차원에서 도움을 드리는 진료 영역을 정신종양학이라고 합니다. 정신종양학 전문가가 암 경험자를 진료할 때 경계하며 접근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삶의 스트레스 때문에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정서적 갈등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 즉 암의 원인을 자꾸만 나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이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돌연변이 암세포는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몸 안 어딘가에도 있습니다. 그런 암세포가 우연히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덩어리를 형성하게 되면 우리는 암이라고 진단합니다. 이건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암이 발생한 원인을 나의 상황으로 몰고 가면 우리는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 이후에도 이런 마음을 담아둔다면 내 삶은 암 이후에도 괴롭기만 합니다. 물론 우리의 삶의 방식은 이전보다 더 건강해져야 합니다. 이건 암이 있건 없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간다면 내 삶은 질적으로 더 나아질 겁니다. ‘고잉 온 토크’와 같은 모임을 통해 내 안에 품고 있던 여러 앙금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가진 고민이나 어려움을 진솔하게 나누고 같이 소통하는 과정이 도움이 됩니다. 함께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 방법도 찾게 됩니다.
※ ‘고잉 온 캠페인’은 대한암협회와 올림푸스한국에서 암 경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입니다. 그중 ‘고잉 온 토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광민 박사와 암 경험자가 만나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대처법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암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소통 채널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영상 내용을 정리해 연재합니다.
암 경험자들의 사연과 고민을 보내주시면 ‘고잉 온 토크’ 영상과 글을 통해 다루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goingon.tal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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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