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박사 이광민의 [슬기롭게 암과 동행하는 방법] (12)

[정신의학신문 :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의학박사] 

 

성숙한 방어기제란?

예술이 당신 마음에 어떤 힘이 되고 있나요? 여러분 중에는 예술을 가까이 접하는 분도 계실 테고, 가끔 즐기는 분도 계실 테고, 조금은 멀게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예술은 위안과 휴식이 될 수도 있고,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술의 영역을 넓혀서 생각하면 소소한 우리 삶의 부분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말이든, 글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몸짓이든 전부 예술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합니다. 우리 마음속 무의식에 있는 여러 가지 욕구, 욕동, 욕심, 감정 등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고 미성숙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이런 무의식적인 에너지를 그대로 표출하면 누군가에게 해가 되거나 나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해내려고 하는 심리적인 작용을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그 안에는 건강한 방어기제도 있고, 불건강한 방어기제도 있습니다. 성숙한 방어기제가 있는가 하면, 미성숙한 방어기제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비교적 성숙한 방어기제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욕망이나 욕심이나 욕구 등을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즉 나에게도 도움이 되면서 주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표현하는 방어기제입니다. 이런 성숙한 방어기제에는 네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동일시입니다. 동일시는 이런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욕망이나 욕심을 그대로 표현해내면 개인적인 욕심밖에 충족되지 않으니 이걸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롤모델 혹은 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의 삶을 바라보면서 그 삶을 쫓아가려고 노력하는 거죠. 

두 번째는 이타주의입니다. 마더 테레사나 슈바이처 박사 같은 분을 떠올리면 됩니다. 자기 삶을 희생해 가면서 누군가의 삶을 채워주기 위해 헌신했던 분들입니다. 그분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감정이란 게 있고, 욕심이란 게 있고, 때로는 나쁜 마음이라는 것도 있었을 겁니다. 다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풀어낸 게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충족시켜주는 형태로 건강하게 변형시켜 풀어낸 겁니다. 본능적인 욕망이나 욕심과는 정반대로 표현해내려고 노력했던 것이죠. 이처럼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욕구나 욕망이나 욕심을 풀어낼 수 있는 방어기제를 이타주의라고 표현합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성숙한 방어기제와 예술 

동일시와 이타주의는 예술과 조금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술과 관련된 성숙한 방어기제에 관해서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유머와 승화입니다. 승화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예술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어기제입니다. 유머는 그중 일부라고도 볼 수 있겠죠. 유머는 내가 설령 힘들더라도, 내 마음에 우울과 슬픔과 짜증이 있더라도, 이걸 그대로 표현해내지 않고 조금 더 상대방한테 웃음을 줄 수 있는, 억지로라도 웃을 수 있는 형태로 뽑아내는 것입니다. 

얼마 전 코미디언 김신영 씨가 ‘김다비’라는 부캐(부 캐릭터)를 통해 부른 ‘주라주라’라는 노래가 히트를 했죠.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생각보다 꽤 슬픈 내용이거든요. 직장인들의 고뇌 같은 게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죠. 우리 안에 있는 감정의 에너지들이 유머를 통해 사회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승화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나 마음에 담긴 고뇌와 슬픔 같은 것들을 예술적인 영역으로 한 단계 끌어올려 표현하는 것이죠. 충동이나 욕구를 사회적, 정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발전시켜 충족하는 일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 여러 가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삶에서 표현해내는 여러 가지 방식들이 이러한 성숙한 방어기제를 통해 예술과 연계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제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이 제가 하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진료를 통해서나 지금처럼 ‘고잉 온 토크’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성숙한 방어기제로 조금 더 표현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삶의 형태들을 예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술이란 미술이나 음악이나 무용처럼 화려하게 뭔가 나타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살아가면서 표현되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들 역시 성숙한 방어기제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면 그게 바로 일종의 예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서 여러분 각자 가지고 있는 역할들 또한 예술이라는 커다란 틀에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마음에 힘이 되는 예술이란?

쿠사마 야요이라는 일본의 설치미술가가 있습니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검은 점이 연달아 찍혀 있는 노란 호박이 있죠. 코로나 사태로 예술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와중에도 지난해 국내 미술 경매시장에서 그녀의 작품은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했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강박증이 심했다고 합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고통스러운 삶이었으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내면의 상처가 오히려 아름다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강박적인 성향이 자신을 괴롭힐 때는 괴로운 질병이지만, 작품으로 표현될 때는 누군가에게 예술적 영감과 의미를 주는 승화의 형태로 올라오는 겁니다. 

 

클로드 모네 역시 유명한 프랑스 인상파 화가죠. ‘수련’이라는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역시 말년에 백내장이 찾아왔다고 그래요. 백내장은 우리 눈 안에 있는 렌즈가 탁해지는 병이거든요.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말년으로 갈수록 흐릿흐릿한 표현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백내장이 심화했기 때문이죠. 잘 안 보이니까 또렷하게 그리기 힘들었던 겁니다. 화가에게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건 음악가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장애이자 고통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물체가 흐릿하게 보이는 걸 있는 그대로 표현해냄으로써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합니다. 이것 역시 예술적 승화의 한 형태인 겁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혹시 제인 톰린슨이라는 분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녀는 유방암 환자였습니다. 1990년대 초반 20대 후반의 나이로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나서 6년 뒤에 재발했습니다. 재발 당시 나이가 30대 중반이었고요. 시한부 선고를 받았죠. 삶의 시간이 6개월 정도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분은 좌절하지 않고 남은 시간 동안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아, 다들 내가 하지 못할 거라고 여기는 운동에 도전해 봐야겠다.’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실제로 런던 마라톤부터 시작해서 철인 3종 경기까지 완주했습니다. 시한부 선고 기간인 6개월을 훌쩍 넘어 그 이후로도 삶의 시간이 계속 연장되었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6년째 되던 해에 자전거로 미대륙을 횡단합니다. 그러면서 암 환자를 위한 기금 마련에 나서 무려 33억 원이라는 큰돈을 조성합니다. 그리고 미대륙 횡단에 성공합니다. 그 시점은 이미 암이 몸 안에 다 퍼져 있을 때입니다. 미대륙을 횡단한 후 1년 뒤 그녀는 임종을 맞았습니다. 몸에 암이 있는 와중에도 이뤄낸 성과 뒤에 그녀가 가졌을 신체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암을 경험하는 동안 이룬 일들은 인간 승리의 또렷한 흔적으로 우리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녀는 생전에 영국 여왕에게 훈장을 받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미국 철도가 생겨났을 만큼 많은 사람의 사랑과 응원을 받았습니다. 암은 절망과 좌절일 수 있지만, 이분은 그것을 강한 정신과 운동으로 극복하고 승화시킨 인물로 영원히 남아 있게 된 거죠. 

 

여러분들 역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 ‘아,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불편함과 괴로움이 삶 속에서 이렇게 승화되어 건강하게 표현되는 것들이 있었구나.’ 떠오르는 게 있으실 겁니다. 결국, 그런 것들이 바로 성숙한 방어기제를 통해서 표현되는 우리 삶의 한 형태입니다. 저는 넓은 의미에서 이와 같은 삶의 형태들이 예술이라는 커다란 그릇 안에 담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고잉 온 캠페인’은 대한암협회와 올림푸스한국에서 암 경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입니다. 그중 ‘고잉 온 토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광민 박사와 암 경험자가 만나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대처법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암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소통 채널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영상 내용을 정리해 연재합니다.

암 경험자들의 사연과 고민을 보내주시면 ‘고잉 온 토크’ 영상과 글을 통해 다루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goingon.talk@gmail.com)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