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저는 요즘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실제로 죽는 방법들을 많이 찾아보고 있습니다. 지금 저한테 엄청 힘든 일은 없지만, 인생에 있어서 때때로 닥쳐오는 자잘한 불행들이 저를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어렸을 때 주변에서 굉장히 성격이 밝고 친화력이 좋은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때 두 번의 왕따를 당하고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또 친구를 사귀어도 제가 무언가를 잘못했는지 친구들이 말없이 저를 떠나가더군요. 처음에는 모두 그 친구들이 잘못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 저한테 이건 저의 문제라고 해서 그때 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왠지 저 자신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외모 면에서도 미와 추를 가리면 추하다는 쪽에 가깝고, 뚱뚱해서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대뜸 제 욕을 하는 것을 들어본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도 굉장히 나빠서 현재 다른 사람들이 한 번이면 할 수 있는 일들을 저는 대여섯 번은 해야 하고, 눈치도 없고 어리숙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또한, 행동과 생각 모두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박자씩 느리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대화를 지속할 능력이 없어서 친구를 사귀거나 어떤 집단에서 유대감을 쌓는 것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게 왠지 겉에서 보면 이렇게까지 우울할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런 성격을 가진 저로서는 저의 이런 점들이 너무 혐오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수치심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밤에 저 자신이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들면서 계속 울게 됩니다. 그리고 살아갈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제가 죽는다고 해서 그걸 계속 슬퍼해 줄 사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살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모님이나 대학교에 다니면서 잠깐 만났던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그 순간에는 슬퍼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제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또 요즘에는 제가 전에는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나 책을 읽는 것이 크게 재밌다는 생각이 안 들게 되고, 뭔가 한 가지를 5분 이상 계속 보지 못하고,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하는 식으로 계속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자는 게 싫어서 새벽 6시나 7시가 될 때까지 계속 핸드폰을 하다가 잠들고 낮에 2~3시에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가끔은 제 삶이 꼭 다른 사람의 삶을 보는 것같이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너무 싫고 제 삶이 슬픈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진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식욕이나 성욕이 저하되는 일도 없고, 오히려 낮과 저녁에 1끼씩 먹고 밤에 미친 듯이 야식을 먹는 경우도 많았고, 거의 매일 자위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우울한 밤과는 달리 낮에는 학교 다니면서 매일 과제도 기한에 맞추어서 잘하고 수업도 빠지지 않고 가면서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는 멀쩡히 웃기도 하고, 가끔씩만 눈물이 나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은 일주일에 1~2번밖에 하지 않아서 저는 우울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받고 싶었지만, 우울증도 아닌데 괜히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타박 들을까 봐 가지 못하겠습니다.

이게 우울증이 맞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단순히 우울한 기분이 드는 걸 우울증으로 착각하는 걸까요?

 

사진_픽사베이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우울증인지 여부가 궁금하다고 질문을 하셨네요. 진단을 내릴 때 DSM이라는 기준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1. 거의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 거의 매일 이어지며, 이는 주관적 느낌(예컨대 슬픔, 공허감, 아무런 희망이 없음)이나 객관적 관찰 소견(예컨대 자주 눈물을 흘림)으로 확인된다.

2. 거의 하루 종일 거의 모든 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 감소된 상태가 거의 매일 이어짐.

3. 체중 또는 식욕의 심한 감소나 증가

4. 거의 매일 반복되는 불면이나 과수면

5. 정신운동의 초조(예: 안절부절못함) 또는 지체(예: 생각이나 행동이 평소보다 느려짐)

6. 거의 매일 반복되는 피로감 또는 활력 상실

7. 무가치감, 또는 지나치거나 부적절한 죄책감이 거의 매일 지속됨.

8. 사고력 또는 집중력의 감퇴, 결정을 못 내리는 우유부단함이 심해져 거의 매일 지속됨.

9. 죽음에 대한 생각이 되풀이되어 떠오르거나, 특정한 계획이 없는 자살 사고가 반복되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움.
 

위의 기준 중 다섯 가지 이상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기준일 뿐이고, 실제로 다양한 양상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실제로는 우울한 기분이 장기간 지속된다고 생각된다면 크게 부담 가질 것 없이 정신과에 방문하여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비염 혹은 감기인 것 같아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려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더군다나 쓰신 글의 내용만으로 추측해 볼 때 우울증으로 진단될 가능성이 상당히 커 보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우울증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우울하고 죽고 싶거나, 살이 빠지고 잠을 못 자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의 하위분류인 비정형 우울증 같은 경우에는 일상생활을 잘하면서 사람들과 있을 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불면증이 아니라 도리어 잠을 많이 자거나 식사량이 늘어 체중이 증가하기도 합니다. 직접 진료를 봐야 알 수 있겠지만, 글쓴이분은 이러한 비정형 우울증의 진단에 충분히 들어맞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울증의 진단기준에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겉에서 보면 이렇게까지 힘든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하셨는데 겉에서 어떻게 보이든지 간에 내가 주관적으로 힘들고 우울감을 느낀다면 그것이 맞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글쓴이분께서는 자신이 별거 아닌 일로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쉽게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보살피거나, 진료를 받으러 가기를 꺼리시는 것 같습니다. 나의 감정은 100% 옳다는 말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정신과 진료를 포함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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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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