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중독포럼 우보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타인과 함께하는 것은 부담과 의무의 연장이고, 눈치 보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 장단 맞출 필요 없이 혼자 쉬고 싶은 날.

이런 날 그냥 편안히 기대고 함께 쉴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고, 혹여 떠오른다 해도 그 누군가도 힘든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느라 버거울 거라는 걱정에, 내가 짐이 되어 짐을 얹느니 그냥 혼자 있게 되는 날.

그런 날 혼술, 하고 싶을 수 있다.

(혼술: 혼자 마시는 술, 또는 그런 행위)

 

힘겨운 입시 전쟁을 치르고 입학한 대학에선, 동기사랑 나라사랑 같은 구호는 옛적 이야기이다.

취업준비로 학점관리와 스펙 쌓기가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아싸(아웃사이더)가 되곤 한다.

취준생, 공시생. 심각한 취업난과 경제 불황, 그리고 전쟁 같은 경쟁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기에는 주머니도 마음도 팍팍하고 지치고 불안한 그들.

그들이 조용히 편의점 술로 혼술을 하게 되는 것도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다.

 

아이들, 집안일 등으로 정신없이 누군가를 위해 온종일 나를 쓰다 아이들도, 남편도, 많던 일들도 모두 잠든 금, 토요일 밤.

잊었던 예쁜 누나가 되어 로맨스를 상상하게 하는 금토 드라마를 보며 맥주 한잔 하는 그 짧은 시간. 오직 나만을 위한 릴랙스 환기 시간이다.

불금은 대체 누구를 위한, 누구의 불금일까 생각해본다.

엄마로, 아내로 살다 보면 친구나 지인들과 모임을 가지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나도 엄마의 감성으로, 혼술하는 그 상황이 한껏 이해가 된다.

 

사진_픽사베이

 

혼술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에서 이제 낯선 신조어가 아니다.

예전 같으면 궁상맞고 지질하게 혼자서 무슨 술이냐 하며 청승맞을 혼술이 이제는 업무 연장선이 되는 피곤한 회식자리보다, 관계 유지에 대한 부담감으로 원치 않아도 참여했던 도심 속 술자리보다 우리에게 어느새 더 편안해졌다.

물론 혼자 있고 싶을 때 늘 혼술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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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와 사정은 이심전심으로 서로 이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그것의 해결에 혼술은 일정 부분 한계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혼술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 정리는 이쯤에서 필요하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의 가치인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생활의 균형)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한 실천으로 혼술을 엉뚱하게 포장하는 이야기에는 "에이, 그건 아니지. 어디다 갖다 붙이는 상술과 합리화인가."라는 말도 하고 싶다.

혼술을 하더라도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음주 습관을 탑재하여 혼술이 자칫 일상 속 습관성 만성 음주로 발전되는 것을 막고, 나 스스로 나의 음주습관을 관리해보자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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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문제의 심각성 및 중독의 단계를 평가하기 위한 도구로 '한국형 알코올 중독선별검사(NAST)'라는 척도가 있다.

이 척도의 2번째 문항이 “혼자서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이다.

물론 이는 알코올 중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음주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술을 혼자 마시는 양상으로 변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건전한 혼술 행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기존의 많은 연구와 경험으로 밝혀졌듯, 혼자서 술을 마시는 행위는 습관성 음주와 만성 음주로 이어지기 쉬워 알코올 중독으로의 진행에 취약하기 때문에 세심히 살펴볼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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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을 하더라도 긴장을 모두 풀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본인의 음주상태를 의식적으로 체크하며 민감성 음주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혼자서 술을 마시는 행위를 평소 즐긴다면 주기적으로 자신의 음주 습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같이 마셔도 부어라 마셔라 강권하며 2차, 3차 과폭음하는 한국의 술자리 문화나 회식문화도 결코 안전한 음주 문화는 아니다.

요즘 혼술하는 이유 중에는, 길게 이어지고 과폭음하는 술자리보다는 혼자서 가볍게 한잔한다는 이유도 있어, 술에 대해 잘 알고 안전음주원칙이 접목된 혼술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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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한 혼술을 위한 Tips

1. 알코올은 일시적 즐거움을 주는 대신, 절제를 못할 시 심신의 건강을 해치고 습관성과 중독을 유발하는 유해 물질임을 인지할 것.

2. 음주량이 증가할수록 다양한 건강상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음주량과 횟수를 제한할 것.

3. 마시기 전에 음주량을 미리 정하고 그만큼만 준비하고 소비하기. (집에 술을 쟁여두지 않는다.)

 

4. 취하기 위해 마시기보다는 가볍게 한잔 즐기기.

5. 음주량은  각 주종별 표준잔으로 하루 성인 남성 2잔, 성인 여성과 노인은 1잔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6. 원샷하지 않기. 천천히 나눠 마시기. (보통 한 시간 동안 분해되는 알코올 양은 시간당 1표준잔인 10g 정도로, 알코올 분해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므로 천천히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7. 배고플 때 음주하지 않기.(식사 먼저 하고 음주는 식후에 따로 하기)

8. 신선하고 양질의 좋은 재료(채소, 과일)의 안주와 함께하기.

9. 가능한 저도수의 알코올로 소비, 독주는 물에 희석시켜 마시기. (음주시 물, 우유, 과일주스 등을 함께 마시기)

 

10. 빈도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한 번 마시면 사나흘은 쉬어주기. (1주일 또는 1달에 마실 음주량과 음주 횟수를 정해놓고 이를 넘지 않도록 노력할 것)

11. 스트레스를 풀거나, 상하고, 화나고, 슬픈 감정을 달래는 용도로 음주하지 않기.

(사는 동안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은 일상 속에서 우리와 늘 함께하므로, 음주를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풀고 달래는 용도로 사용하면 음주가 일상화, 습관화, 만성화되며, 내 삶과 나를 해치는 후유와 중독성 질환이 유발될 가능성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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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질환이 있을 때, 투약시에는 금주하기.

13. 중요한 일을 앞두고, 운동시, 운전시, 작업 중에는 음주하지 않기.

14. 음주 외에 소중한 나를 쉬게 하고 재충전하고 즐겁게 하는 건강한 활동들 다양하게 개발하여 실천해보기.

 

혼자일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은 많다.

하고 싶은 것 앞에 '혼자'의 '혼'을 붙여 혼독서, 혼까페, 혼운동, 혼산책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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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라면 나는 함께 가는 것이 더 좋다.

지지고, 볶고, 다투고, 싸우고, 맞추는 수고가 들더라도, 사랑해서인지 서운함은 어느새 작아지고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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