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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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꿈 나들이’행사에 참석하여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진다’라고 이야기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대사이기도 한 이 문구는 대통령의 입을 통해 2015년 상반기를 흔든 유행어 중 하나로 인기를 끌었다. 물론 그 인기의 배경에는 실책 없이 부진한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서 근거 없는 무속적 희망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는 대통령의 태도를 풍자하는 분위기가 섞여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 말 자체로만 놓고 보면,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속에서는 감동적인 어구였던 문장이었던 만큼 꽤나 멋진 낭만을 담고 있어 보인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온 국민의 가슴을 하나로 끓어 오르게 했던 문구 역시도 ‘꿈은 이루어진다’였던 점을 곱씹어 보면 말이다. 그리고 무척 흥미롭게도 정신분석적으로 볼 때 역시 대통령이 인용한 예의 그 문구가 영 근거 없는 이야기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대상관계이론에서 윌프레드 비온(Wilfred Bion)은 영아와 모친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며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를 통한 영아의 모성관계의 내재화에 대해 주장했다. Bion은 엄마의 일차적 모성몰두(maternal preoccupation, Winnicot, 1957)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성몽상(maternal reverie)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가 아기를 대신해 몽상이나 백일몽을 하면서 아이의 장래 행복이나 성취에 대한 상상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기의 자아-감각을 발달시키는 필수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즉, 엄마가 아이에 대해 간절히 원하면 정말로 아이가 그렇게 자라나는데 심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다소 어려운 단어들이 몇 차례 사용되었으니 잠시만 짚고 넘어간 뒤에 다시 이야기해 보자.

 

우선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는 원하지 않는 자신의 일부를 외부로 투사하고 이에 따른 상대의 반응을 다시 동일시하는 방식의 방어기제를 말한다. 예를 들면 상대방을 미워하는 감정이 들지만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상대방이 나를 미워한다고 나의 감정을 투사한 뒤, 상대의 감정으로 투사된 그 미움을 동일시하여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을 다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흔히 상대방이 나를 미워한다고 투사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이 나를 미워하도록 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공포, 불안이라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은 영아는 적절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감정을 엄마에게 투사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엄마의 반응을 자신의 감정으로 동일시하며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Bion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때 아기의 이러한 투사를 알아채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엄마의 무의식적인 직관인 모성 몽상(maternal reverie)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엄마가 아이의 반응을 일일이 이해하고 해석하는 의식적인 과정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일종의 환상적인 직관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Winnicot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하여 분만 후 몇 주간은 엄마가 아기에게만 깊이 몰두하게 되며 이 때는 마치 병적으로 보일 만큼 외부로의 관심이 차단된 채 아이에게 관심이 집중되게 되는데, 이를 일차적 모성 몰두(primary maternal preoccupation)이라 표현했다. 이런 몰두 상태에서 아이와의 교감은 흡사 텔레파시처럼 환상적인 무의식적 교류를 가능케 하고 이 능력을 바로 모성 몽상이라 이야기 한 것이다.

이 때 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엄마에게로 던진 감정을 담아내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의 감정으로 재처리하여 반응한다. 그리고 이를 아기가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의 건강한 양육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기는 자신의 불안이 재처리된 엄마의 모성 몽상을 동일시(identification)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엄마의 몽상을 통해 아기는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감정적으로 재처리되기 이전의 감각 덩어리와, 그것에 대한 감정적 해석의 처리 결과물이 서로 상호교환 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담는 역할(Contain)과 담기는 역할(Container)을 하는 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기는 서로가 서로를 담는 컨테인과 컨테이너가 되며 무의식적 상호교류를 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아기가 잘 자라주기를’, ‘아기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아기가 멋진 어른이 되기를’, ‘아기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은 몽상이 되어 아기의 자아에 내재화 되게 된다. 그렇게 간절히 바란 엄마의 꿈은 아기의 미래를 통해 이루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좋은 의미에서 건넨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라는 표현이 비아냥 섞인 풍자로 sns와 인터넷 포털을 달군 이유는 아마 대한민국 기성세대의 알맹이 없는 몽상이 이른바 삼포세대들의 아픔을 공감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새로운 세대는 그 차갑고 잔혹한 현실에 신음하고 괴로워한다. 더욱이 과거처럼 성장가도를 밟던 때와는 달리 정체되고 하락하는 현실에 처음 적응하는 젊은이들은 불안하다. 그 불안은 안락하던 부모의 품에서 떨어져나오며 느끼는, 전에 경험하지 못한 실존적 불안이다. 그 불안은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다. 결국 그 불안은 해결되지 못한 채 떨어져나와 기성세대를 향해, 사회를 향해, 국가를 향해 투사되고 만다. 헬조선, 지옥불반도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으로 체제를 향한 적개심으로 투사된다. 그렇다면 어린 영아와도 같은 사회 초년의 젊은 세대가 이제 곧 투사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응을 동일시 차례일지 모른다. 흙수저에 비탄하고 탈조선을 꿈꾸는 이들이 들끓는 지금의 현실이야말로 그들을 위한 간절한 바램이 필요할 때 일 것이다.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줄지도 모른다. Bion이 이야기하였듯 이는 어떤 환상적인 직관으로 이어져 가능하게 될 일일지도 모르고, 한 세대라는 거시적 자아가 자라나는데 필수적인 과정으로서 이루어지게 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안을 투사하는 아이들에게 ‘노오력’할 것만을 강요하고 ‘간절히 바래볼 것’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더욱 큰 불안을 내재화시킬 따름이다. 간절하게 바라는 몽상의 역할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이다. 아이의 성장과 아이의 불안을 비난하기만 하거나 오히려 두려워하는 사회는 자라나지 못한다. 왜곡되어간다. 성장은 상호 교환되며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기성세대가, 아니 우리사회가, 대한민국이 직접, 태동하는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정말 간절하게 몰두(preoccupation)하고 몽상(reverie)할 때, 그 때 비로소 꿈은 이루어질지 모른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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