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윤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과연 이 세상은 우리가 살아갈 만한 곳일까? 우리에게 세상은 어떤 곳인지 잠시 생각에 잠겨 보자.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평생 동안 사랑을 필요로 한다. 이 사랑이란 나와 타인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인데, 모든 인간이 생애 처음 상호 작용하게 되는 타인은 바로 ‘엄마’이다.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맞이하는 관계, 그로부터 시작되는 인생의 출발. 인생 초기에 엄마로부터 따뜻하고 사려 깊은 돌봄을 받을 수 있었는지 여부가 개인의 정서적 안정과 평생의 대인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엄마 뱃속에서 보낸, 인생의 준비 기간 10개월. 미숙했던 생명체가 모체로부터 영양 공급을 받으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눈, 코, 귀, 팔, 다리가 자라 세상에 나오기를 준비하기까지의 그 시간부터, 우리 모두는 세상에 나와 첫 숨을 쉬기까지 엄마의 보살핌 없이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진_픽셀

 

세상은 편안하고 믿어도 되는 곳이라고 여기는 기본적 신뢰감이 발생하는 원천은 엄마로부터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물론 그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도 양과 질에는 개별적인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안전 기지의 역할을 해 주었던 사람, 나의 엄마로부터의 사랑이 지금의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볼 때 사랑이 솟구치고 나도 모르게 아이와 함께 웃게 되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나의 엄마가 나에게 느꼈던 과거의 그 감정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변화 가득한 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엄마가 나에게 원한 것이고 내가 나의 아이에게 간절히 원하게 될, 같은 바람이다.

엄마와 나의 관계. 안정적인 형태, 불안정적인 형태, 상호적인 형태, 일방적인 형태 등 다양한 그림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양호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래서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라면, 내가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엄마로부터 제공받은 사랑에 대한 감정적 기억이 뇌의 회로에, 무의식의 한편에 차곡하게 저장되어 있는 것임을 증명할 수 있다.

 

사진_픽셀

 

여행과도 같은 인생을 누리면서 살아 보는 것을 평생의 완성할 수 없는 숙제로만 남길 수는 없다. 우리의 미래를 여행과 같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여기-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과거 경험이 남긴 해결되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의 뿌리를 알고자 하지 않는다면 여행과 같은 인생을 보내기에는 힘이 부족해진다.

먼저 엄마와 나,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단 둘만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그리고 엄마도 나도 각자의 부모와의 경험을 기억해 내면서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보자. 긍정적인 관계의 강화를 꾀하되 부정적인 상황이 반복되는 장면을 조금씩 수정해 나간다면, 훗날 나로 인해 내 아이도 겪게 될 불편한 기억을 하나씩 감소시켜 둘 수 있을 것이다. 각종 감정적 고통이 동반되는 경험에 대해 탐색하는 용기를 내서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재구성해 보면 좋겠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