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간공감> 방송대학TV OUN 대학로 열린 강연 공개 녹화

[정신의학신문 : 이윤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을 접한 지 14년이 흘렀습니다.

사람의 몸을 공부하고자 했던 것에는 사실 제 스스로가 아팠던 경험이 바탕에 있었습니다. 그 때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요. 학교에 가기 싫어서? 흔히 말하는 ‘꾀병’이었을까요?

성장하면서 이따금씩 그 시절을 돌이켜 보는 작업을 반복하게 되었고, 정신과 공부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때 저의 상태에 대해서 정신과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심리적 요인에 의한 신체 증상’ (psychological factors affecting medical conditions)을 보임과 함께, ‘가벼운 우울 기분을 동반한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를 앓았던 것이라고 지금은 스스로 통찰(insight)할 수 있게 되었지만, 통찰력이 대단히 부족했던 그 때는 그저 아팠었습니다. 학교에 유난히 가기 싫은 날이면 꼭 더 아팠던 그 시절의 구체적인 경험담에 대해 용기를 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약 한 달 전에 가지게 되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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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춘의 아픔’을 소재로 방송 촬영을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처음 경험해 본 공개 강연 방송 녹화는 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만으로 임했던 녹화였는데, 촬영 후에는 잘 해내지 못했다는 후회와 함께 준비 부족의 탓으로 돌려 핑계를 찾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하였지요. 정신과 의사로서 청중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을 만족스럽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이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그 때 저는 환자 역할(sick role)을 하면서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몸이 아픈 것으로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일 병원에만 갈 수는 없었고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아파서 병원에만 계속 다니는 학생으로 남을지, 어쨌든 주어진 교과 과정을 소화할 수 있는 학생이 되어볼지, 주어진 환경 내에서는 스스로 선택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주변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후로는 병원을 찾을 일 없이 튼튼하게 잘 지내게 되었다는 저의 경험을 방송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만, 저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긁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도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을 해 보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진료실을 찾아오시는 다양한 연령층의 환자분들 중, 특히 타과에서 정신과에 의뢰되어 협진을 보는 경우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호소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심료내과(心療内科)라고 해서, 심신의학(心身医学), 즉 정신신체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을 바탕으로 한 전문과가 주요 대학병원에 개설되어 있는데요. 심료내과는 환자의 신체뿐만 아니라 심리사회적인 면을 포함하여 인간을 통합적으로 진료하고자 하는 전인적 의료를 목표로 하는 진료과라고 합니다. 원래 정신신체의학은 독일에서 탄생하여 미국으로 전달되어 정신과 의사를 중심으로 발전한 역사가 있습니다. 정신분석이나 역동정신의학을 접한 학자들을 기초로 발전해 온 것인데요. 일본에서는 심료내과라는 명칭 하에 병의 원인, 경과에 있어서 심리적 요인이 크게 관여하는 기질성 질환을 중심으로, 심신의학을 다루는 분야가 발전했습니다.

저는 사람의 몸, 그리고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정신과 의사로 살고 싶었던 이유 중 한 가지는, 제 자신이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정신과 의사가 되어서 행복해졌을까요? 지금도 저는 일, 가정, 인간관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여러 인생의 문제에 대해 늘 궁리합니다. 끊임없는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이슈에 대해서 어제도 오늘도 고민을 했고, 내일도 고민하고 있겠지요.

강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은 ‘지금 내가 행복한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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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게 대체 뭔데, 꼭 해야 되는 걸까요?

Posttraumatic growth, 외상후성장이란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외상후장애’라는 말이 더 익숙하실 것 같은데요.

누구나 살면서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대단히 불확실한 것이고,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복원력’, ‘회복력’ 또는 ‘탄성력’이라고 하는 'resilience'를 가지고 있는데요, 성공하려면? 혹은 행복하려면? 무조건 강해야만 하는 걸까요? 감정과는 거리를 두고 그 어떤 고난과 고통 속에도 참고 이겨내며 무너지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데 그렇게 버티고만 있다가는 크게 한 번 넘어졌을 때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아주 강한 데미지를 입게 됩니다. 뚝, 하고 부러져 버리는 거죠. 단단히 버티는 것보다는, 넘어졌을 때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유연성을 평상시에 장착해 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힘, 그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행동을 결정하는 생각과 감정은 뇌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요. 과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인간의 뇌에는 마음의 요소별로 각 담당 영역이 있는데, 어떻게 각 영역을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뇌를 조금 더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뇌세포에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끊임없이 변할 수 있는 ‘신경가소성’(neural plasticity)이라는 능력이 있는데, 과거에는 신경가소성이 특정한 시기에만 발달한다고 여겨졌었지만 성인기에도 신경의 재생이 가능하다는 증거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뇌는 지속적인 자극에 의해 신경 세포 구조가 변화될 수 있고 나아가서는 뇌 각 영역의 기능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데요, 균형과 여유가 잘 유지되는 건강한 뇌라는 무기를 업데이트 시켜 나가는 일상에서의 개인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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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장기화되는 이런 세태 속에서, 우리는 만성적인 무력감,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이라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무력감을 느끼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갈 힘이 없다 여겨 미리 좌절해 버리는 상황에 빠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의 고통이 끝이 없어 보여도 분명히 더 성장할 것이고 더 멀리 내다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뇌에는 신경 가소성이 있고, resilience가 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어떤 나의 마음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녔다면, 이제 스스로 그 문제를 알아내고, 문제가 반복되는 고리를 끊어 내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남의 탓, 상황 탓만 하고 있기에는 우리 인생은 한 번이고, 짧으니까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꿈을 키우고 싶지만 현실의 높은 벽이 나를 가로막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발생합니다. 이런 생각을 의식적으로 스스로 잘라내는 연습을 해야 건강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는데요, 불편한 감정들을 넘어서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요.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1) 먼저 고통스러운 현재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건데요. 고통 속에 경험하는 감정도 삶의 일부입니다. 그 감정은, 노력해서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잘 관리하여, 삶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혼자서 글로 기록해 보는 것도 좋고,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단절시키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원망하기보다, 나의 고통을 나눌 만한 사람들을 찾아서 고통의 경험을 나누십시오. 건강한 사람이란 고통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불편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치유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고 담아둔다면 몸과 마음이 아플 수 있습니다. 감정을 억압시키지 말고 해소시켜 주세요. 또 건강한 사람이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불편한 것일수록 그 대상을 회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회피하면 할수록 불편한 감정은 더 크게 자라고 그 결과 점점 더 불편해지는 악순환에 들어가게 됩니다.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직면할 수 있어야 감정을 잘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솔직해져야 합니다.

 

2) 두 번째로는 즐거운 상상을 자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미소를 의식적으로 연습해 보십시오. 행동은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이 생각과 감정은 다시 사람 몸의 생리적인 반응에 영향을 주지요. 각종 정신의학 저널의 여러 아티클에는 안면 근육이 기분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가설을 증명하고자 하는 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facial feedback hypothesis’,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인데요. 웃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습관이 될 것이고, 뇌에서 새로운 뉴런이 만들어지겠지요? 또, 인생에 좋은 것들에 감사하고 표현하는 습관을 만들다 보면, 더 높은 수준의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저 사소하게 아침에 눈을 떠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내 어린 아이가 아침에 출근 준비하는 나를 향해 엄마라고 불러 준 것, 오늘도 함께 할 수 있는 남편 부모님 동생들 친구들이 있다는 것.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도 감사할 수 있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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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과 고난을 마주하고 넘어서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실패를 극복할지 말지, 선택하십시오. 우리는 문제에 맞설 수도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결과가 어찌 되든 그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욱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겠지요. 정체성을 잃을 정도의 큰 고난, 극복하기 어려운 상실, 정말 겪고 싶지 않은 것들이지만요, 어려움을 나의 성장의 토대로 삼을 것인지 회피하고 포기할 것이냐, 선택이 성장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매일매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상처 받은 많은 사람들 모두가 후유증의 희생자로만 남지는 않습니다. 정신의학자 프로이트가 정신분석기법을 개발하였고 이후 많은 치료 기법이 발전되어 왔는데요, 오랜 정신치료를 통해 ‘통찰’(insight)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뇌 신경 회로가 새롭게 다져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통찰을 통해서 하나씩 변화되는 과정을 겪는 것을 훈습(working through)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다는 것, 아주 매력적인 결과물이지요.

사실 통찰하고 훈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잘 하고 싶지만 늘 실패를 반복하게 되는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인데요.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아도 10년 20년 30년 뒤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 갈 자신의 모습을 위해서라면 치열하게 노력해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내가 ‘외상 후 성장’을 할지 ‘외상 후 마음의 장애’를 안고 키워 나가며 살아갈지, 그것을 결정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회가, 고통을 두려워만 해서 먼저 포기해 버리는 무력감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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