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송어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반복이야말로 적응의 지름길이라고들 합니다.

어려운 것, 잘 하지 못하는 것은 반복하면 기억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수를 연발하던 야수가 반복 훈련을 통해 수비에 익숙해지고 당황하면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못하고 얼어버렸던 사람들도 암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적응과정을 위해서는 안전한 발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몸이죠.

공에 맞아 두개골 골절이 된 타자들은 강도 높은 훈련으로도 몸쪽 공에 공포심을 지우기 힘들어합니다. 단지 반복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문제이죠.

수행을 버텨내고 또한 기억의 저장고 역할을 해야 하는 몸이 불안정해진다면 적응 또한 어려워집니다.

 

사진_픽셀

 

공황장애로 괴로워하며 피하고 피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진료실을 찾은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과연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지의 문제인데 너는 너무 약하다. 마음을 굳게 가져라”라고 조언합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내가 정말 아픈지, 내가 아픔을 의식하기 때문에 더 아픈지, 내가 아프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더 아픈지, 내가 충분히 아픔을 다루지 못해서 아픈지 등등의 고민들에 빠지게 되죠.

그리고 의사에게 묻는 것은 그 질문들 중 극히 일부이고요.

 

오늘은 일반적인, 공황장애의 단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공황장애의 7단계

제 1 기 증상 발현 단계

제 2 기 공황 단계

제 3 기 건강 염려 단계

제 4 기 제한적 공포증 단계

제 5 기 사회 공포증 단계

제 6 기 광장 공포증 단계

제 7 기 우울증 단계

 

 

1. 증상 발현 단계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심장이 뛰는 심계항진(palpitation), 가슴이 답답한 흉부 불편감(chest discomfort), 어지러움(dizziness)등의 자율신경계 항진과 관련된 비특이적인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이런 정도의 증상은 반드시 공황장애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불안장애, 우울장애, 신체화장애 등등의 질병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질병이 없는 일반인들에서도 있을 수 있죠.

 

2. 공황 단계 -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이제 올 것이 왔습니다. 비특이적이고 가벼운 증상들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다가 공황발작(panic attack) 정도의 증상이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공황'발작'이라고 하여 경련성 질환(간질)에서의 발작을 연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발작은 attack이라고 할 정도로 심한 강도의 증상이 갑자기 발생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적어도 공황발작이라고 할 정도의 강도라는 것은 '이 상태에서는 통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잃을 것 같다', '죽을 지도 모르겠다' 정도를 일컫습니다. 흔히 '죽음'과 맞닿아있는 정도의 두려움, 공포를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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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건강 염려 단계 - '내 병을 과연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가? 의심스럽다.'

한두 차례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 그리고 심장발작, 뇌졸중등의 질병을 연상하게 하는 증상을 경험한다면?

당연히 병원을 찾게 되겠지요. 병원을 찾아가 심장과 뇌와 관련된 검사를 하게 되나 대개 30분에서 1시간이면 증상이 저절로 가라앉기 때문에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있다고 해도 심장박동이 빨라져 있거나 혈압이 올라가 있거나 하는 정도이고 몇 시간 정도 안정을 취하면 정상화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귀가조치'를 받고 '또 이러면 어떻게 하지?'하는 두려움을 안은 채 집으로 가지요.

생명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여러 병원을 찾으며 컴퓨터 촬영, 내시경, 심전도, 뇌파검사 등 특수검사를 반복하기도 한다.

 

4. 제한적 공포증 단계 - '이 곳을 가면 저런 증상이 나타났어...'

대부분의 공황발작은 첫 발작의 경우에는 상황이나 장소와 연관 없이 갑자기 나타납니다.

그러나 반복되면 사람은 자연히 귀납주의적 사고의 습관에 따라 공황발작이 일어났던 장소나 상황을 증상과 연관(association)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특이적인 증상들-'숨을 못 쉬거나', '통제력을 잃을 것 같거나', '온도가 올라가 더워지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나'와 관련하여 이러한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이 큰 장소나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공포증이 나타납니다.

과거에 공황발작을 경험했던 장소를 일차적으로 두려워하게 됩니다.

 

5. 사회 공포증 단계 - '사람들이나 혼잡한 곳에 가면 불안해...'

불안은 기본적으로 휘발성 같은 것이 있어서 다른 주제나 소재로 옮겨가기 쉽습니다. 일단 불안의 톤이 올라가면 자율신경계 자체도 항진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황발작과 불안 발작은 여러 장소, 여러 상황에서 거듭 일어나게 되고 점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이 적어집니다.

집 밖으로 나가기가 꺼려지고 점점 일상적인 사회활동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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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광장 공포증 단계 - '통제를 못할 것 같아 아예 다니기가 힘들다...'

사회 공포증 단계가 심해지면 아예 통제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모든 상황, 장소를 회피하게 됩니다. 회피행동의 극단은 광장 공포증으로 이어지게 되죠.

 

7. 우울증 단계

지금까지의 단계를 따라가다 보면 공포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점점 위축되고 사회적 직업적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상황 때문에 '우울'해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공황장애의 생리적 특성상, 이런 자연경과에서의 자극이나 스트레스 없이도 우울증 발생에 취약하게 되면서 우울증까지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에 따라서는 40~80% 정도는 우울장애를 같이 갖고 있을 정도로 흔하게 나타납니다.

 

 

공황장애의 끝은 그래서 끝없는 자기 회의일지도 모릅니다.

내 몸을 내가 의심하게 되고, 이게 실제로는 몸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 정신을 의심하게 되며, 이런 내적 갈등들은 내 행동을 제약하는 자신과 그럼에도 살아가고자 하는 자신의 싸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싸움은 반복으로는 무뎌지기 힘든 것이죠. 자신에 대한 의심을 반복하다 보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포기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 숨게 되어도 공황의 발작은 그런 나를 지나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공황도 내 몸에서 나타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많은 경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자기 회의에 빠지지 않고 나의 극복을 도와줄 손길이 필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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