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뇌부자들 [22화 Part 2] 에피소드

[정신의학신문 : 손정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M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전부터 궁금했던 점이 있어서 사연 드립니다.

 

길에서나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혼잣말하고 욕하는 분들을 가끔 보게됩니다. 그런 사람들보면 저는 그 칸을 떠나거나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혼자 있을때 혼잣말하고 욕을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나도 저렇게 되는거 아닐까? 싶었어요.

 

저는 자주 예전에 있었던 이불킥할만한 일들을 떠올려서 혼잣말로 욕을 하거나 그 상황에 몰입되어서 그 때 하지 못한 말을 소리치곤 하거든요.

오늘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부터 몇 주 전, 심지어 15년이 지난 일까지 생각이 떠오르고 순간 부끄럽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입니다. 그 당시에 했던 행동, 말 등 지우고 싶은 기억을 되뇌이곤 혼자서 변명을 하거나 날 쪽팔리게 만든 상대에게 욕을 해대곤 합니다. 집에서만 그러면 괜찮은데 어쩔땐 회사에서도 혼잣말로 욕을 할 뻔하기도 하고, 길가에서는 확실히 밖으로 소리를 내서 혼잣말 한 적은 많은 것 같네요.

 

스스로 왜 그런 생각들을 자꾸 끄집어 내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정도가 심해지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싶기도 합니다. 혹시 남들도 그럴까, 혹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 내가 비정상인지 정상인지 헷갈리기도 하고요. 너무 사소한 이야기같지만, 오래 전부터 해 온 저의 말 못할 걱정입니다. 제가 소심해서 그런 걸까요? 저만 그런건가요?

 

사진_픽사베이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혼잣말이 고민이 돼 사연을 주셨네요.

사실 M씨처럼 혼잣말 때문에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M씨가 혼잣말을 하게 되는 상황은 주로 부끄럽거나 후회되는 기억이 자꾸 떠오를 때라고 하셨는데요. 이렇게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머리 속에 자꾸만 떠오르는 특정 생각을 반추, 반추사고(rumination) 라고 합니다. 막연한 생각이나 상상에서부터 구체적인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수 있죠. 이런 때 흔히 ‘어떤 생각에 꽂혔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그 내용이 부정적 기억에 관한 것들이라면 괴로울거구요.

 

우리의 기억은 강렬한 감정과 연관되어 있을수록 더 오래 남고, 의지와 관계없이 떠오르기가 쉽습니다. 이것이 강박 증상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의 플래쉬백(재경험)처럼 극심한 경우 일상 생활을 어렵게 할 만큼 큰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창피하고 후회되는 감정과 관련된 기억들은 우리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의지와는 관계 없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하죠. M씨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꾸 떠올라 순간적으로 부끄러움에 빠지게 된다고 했던 기억 역시 이렇게 강렬한 감정에 연관됐기 때문이겠죠.

 

반추는 부정적 감정과 관련된 생각이라는 측면에서 ‘걱정’과도 비슷한데, 그 내용이 과거의 경험인지 미래에 관한 예상인지로 구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걱정’은 현재의 불안 수준과 연관되는 반면, 반추는 ‘내가 예전에 왜 그랬을까’라는 자책과 후회와 관련있기에 우울감이 심한 상태일 때 특히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반추 자체는 병이 아니고, 감정 경험을 처리하는 일종의 성격 성향 혹은 습관으로서 반추를 좀 더 자주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반추를 할 때에 나도 모르게 내뱉는 혼잣말 역시도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방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취소undoing라는 방어기제와 연관됩니다. 취소는 받아들일 수 없거나 죄책감이 드는 행위를 하거나 생각이 든 이후에, 이를 심리적으로 무효화하기 위해 이전과 반대되는 실질적이거나 상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인데요. 반추 때문에 겪는 후회와 자책감으로 고통스러울 때 이를 떨치기위한 상징적 행동이나 당시 상대방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대응(가령 욕이나 분노, 변명)으로서 혼잣말이 튀어나온다고 볼 수 있겠죠.

 

사진_픽사베이

 

이런 반추와 혼잣말이 유독 잦다면, 우선은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를 때 그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습관(인지 재평가라고도 합니다)을 들여보는 노력이 도움이 될 겁니다. 또 지금 본인이 일상적인 스트레스들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제때 소화되지 못한채 과하게 쌓이고 있다고 느낀다면, 주위 가깝고 편한 이들에게 이 감정들을 말로 털어놓아 환기시키는 대화를 시도해 보세요. 그리고 반추와 함께 혼잣말이 나올 것 같을 순간에, 주먹을 쥐어보거나  옆자리의 아내에게 일상적인 대화를 건네는 식의 대체 행동을 만들어 연습해보시는 것도 혼잣말을 줄이는데에 도움이 될겁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반추와 혼잣말의 배경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과도하게  의식하거나, 내 행동의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게 평가하는 과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는건 아닌지 살펴보는게 좋겠죠. 또 한편으로는 정말로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면 어느 정도 반복해서 떠올라 혼잣말을 하곤 하는 것이 어쩔 수 없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스스로를 토닥여 주시는 것도 좋겠습니다(혼자 있을 때는 사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혼잣말을 한답니다). 말 못할 이불킥, 흑역사, 상처는 우리 모두 잊지 못하고 갖고 사는 것이니까요. 이런 여러 노력들이 혼자서는 어렵거나 마땅치 않다면 전문적인 상담도 고려해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가지 더,  M씨의 고민과는 직접 연관이 없지만 정신과적 증상으로서 혼잣말을 반복하게 되는 경우에는 환청과 틱이 있습니다. 환청의 내용에 감정 자극(가령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라면 화가 나겠죠)을 받아 반응하고 대화를 하는 조현병 환자분들이나, 강박적으로 끊임없이  의미 없는 단어나 욕설을 외치게 되는 틱 장애 환자분들은, 이런 본인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조절하기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M씨가 보았던 분들 역시 이런 이유로 혼잣말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알맞은 치료를 받지 못해 본인과 주위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M님의 반추와 혼잣말, 병이 아니니 너무 걱정은 하시지 말고, 내 안에 쌓여온 감정들을 살펴보는 계기로 삼아 보시길 바랄게요.

 

뇌부자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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