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벤조디아제핀을 주성분으로 하는 지금의 수면제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해요. 첫째, 꿈을 없애요. 둘째, 중독성이 강해요. 셋째, 최근에는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 소설 ‘잠’ 중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잠! 불면에 대해 공부하고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팬으로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과학과 상상의 조화는 언제나 즐겁지요.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던 중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이 치매를 유발한다’는 내용이 반복되어 저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왜 ‘잠’을 읽던 중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는지, 벤조디아제핀의 치매에 대한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Q. 벤조디아제핀계열의 약물이란 무엇인가요?

벤조디아제핀은 대표적인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gamma-aminobutyric acid)의 수용체에 작용하는 약물입니다. 우리가 불안을 느낄 때 뇌에서는 공포를 담당하는 영역인 편도체(Amygdala)와 걱정을 담당하는 신경회로(Cortico-striata-thalami-cortical(CSTC) loop)가 과활성화되는데, 약을 복용하면 이러한 과활성화가 억제되어 증상이 조절되는 것이죠. 그 외에도 이 약물은 수면, 통증, 기분 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불안 장애, 불면, 공황장애 등의 증상 치료에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Q. 벤조디아제핀계열의 약물이 정말 치매를 유발하나요?

벤조디아제핀의 치매에 대한 영향은 여러 사례 및 연구를 통해 그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이를 우려하는 시선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아직 전공의이던 시절에도 유사한 기사가 나와 잠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 기사는 당시 발간된 논문의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었습니다.

 

Association between Benzodiazepine Use and Dementia: A Meta-Analysis

GC Zhong, Y Wang, Y Zhang, Y Zhao; PloS one; 2015

이전에 나온 유사 연구들을 모아 메타분석을 시행한 논문입니다. 총 6편의 논문을 메타분석에 사용하였고, 다 합하면 11,891 명의 치매 환자와 45,391 명의 참가자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상대 위험도(Relative Risk)를 분석해보니 약물의 과거 사용자, 현재 사용자, 한 번이라도 복용한 적 있는 사람 모두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의 위험도가 올라갔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결과만으로 보면 굉장히 무서운! 연구결과임에 틀림없죠. 하지만 이 연구결과가 곧바로 ‘벤조디아제핀 복용=치매 위험 악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본 논문에서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벤조디아제핀을 복용하기 시작한 이유가 치매의 전조 증상 치료를 위해서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습니다. 치매 환자들은 치매로 인한 기억력 저하 이전에 불안, 우울과 같은 증상을 먼저 겪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경우는 약을 먹어서 치매가 생긴 것이 아니라 치매가 생겨서 약을 복용한 경우가 되지요. 현재의 벤조디아제핀과 치매의 연관성에 관한 논문들은 대부분 이러한 원인-결과 관계를 결론 짓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우울증, 불안 장애 등과 같은 질환의 치매에 대한 영향성에 대해서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우울증이 치매의 위험성을 높인다든가, 높은 불안 수준이 치매 발병을 촉진시킨다든가 하는 연구도 이미 발표된 바들이 있습니다.

 

위의 논문과 같은 해에 발표된 논문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Amyloid β, Anxiety, and Cognitive decline in Pre-clinical Alzheimer Disease

RH Pietrzak, YY Lim, A Neumeister, et al; JAMA Psychiatry; 2015

이 논문에서는 알츠하이머병과 연관성이 높다고 알려진 아밀로이드베타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정상인들 중 높은 불안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낮은 불안도를 가진 사람들에 비해 여러 인지기능저하가 더 조기에 나타났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안과 같은 조절되지 않은 정신과적 증상이 치매의 발병 속도 및 악화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면 오히려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을 복용해 증상을 조절하면 치매 악화속도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증상이 치료 되었을 경우 인지기능저하의 속도가 다른 사람들처럼 늦어지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어 이 또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외에도 벤조디아제핀이 치매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내용의 논문이 나오기도 하고, 오히려 벤조디아제핀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의 연구가 보고되기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처럼 오늘 주제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아직 결과를 도출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고, 사실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벤조디아제핀의 치매에 대한 영향(그것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론도 매우 다양하지만 아직 가설일 뿐 그 어느 쪽도 증명된 것은 없습니다. 결국은 엄밀히 말하면 ‘아직 모른다’가 정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진_픽셀

 

Q. 그렇다면 이런 결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약을 처방하는 사람, 의사의 입장에서 위와 같은 결과들은 앞으로도 예민하게 고민하고 연구 결과를 주시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위험성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무시하지 않고 환자를 치료할 때 필요 이상의 약물을 사용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유비무환.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미리 조심하는 것도 의료인으로서의 자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약을 복용하고 계신 분이라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위험성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잠’을 읽으면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약을 드시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얼마나 놀라실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갈 때까지, 그리고 처방 받은 약을 먹기로 결심할 때까지 많은 고민과 아픔이 있었을 걸 압니다.

벤조디아제핀의 치매에 대한 위험성은 아직 단정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며, 좋은 결과, 나쁜 결과, 중립적인 결과 다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결과가 부디 치료의 기회를 막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걱정되시는 부분이 있다면, 꼭 진료해주시는 전문의와 상의하시어 최선의 치료방법을 결정하시도록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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