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님의 사연

 

저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20살 K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들어가 한달 정도는 제 자신을 살필 시간도 없이 일을 배우며 회사생활에만 열중을 했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처음 직장 상사들과 식사를 같이 할 때에 불편함이 많았지만 그것도 곧 적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혼자 지내는 것에선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달 정도가 지나자 부모님과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적은 월급이 제일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월세와 식비 적금으로 일정하게 나가는 지출은 많은데 그에 비해 적은 월급이 그걸 뒷받침해주질 못했습니다. 전 직장에서 모은 돈들을 오히려 까먹고 있으니 부모님 눈에는 제가 한심하고 걱정도 되었던 것이죠. 부모님과 한번 갈등이 생기니 점점 자괴감에 빠지고 내가 여기서 일을 계속 해야 하는가 그냥 본가로 내려가야 하는가 같은 고민들만 매일 하니 인생이 꼬여버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마음은 이미 본가에 내려가 있었지만 내려가봤자 자리가 없을까 불안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집에서 샤워를 하느라 부모님 전화를 받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뒤늦게 연락을 드리니 어머님은 제게 넌 남 앞에서만 가식 떠는 싸이코라며 걱정에 못 이긴 화를 내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저는 갑자기 끓어오르는 감정에 울면서 옆에 있던 커터칼을 들어 제 몸 이곳저곳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성이 안 차면 드라이기로 제 몸을 지지고 전선으로 목을 조르고 벽에 머리를 박는 등 스스로를 자학했습니다. 어느 정도 반복을 하다 보니 점점 진정이 되었습니다 처음 느끼는 속 시원한 감정에 그 뒤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괴감이 들면 습관적으로 자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끼니도 매번 거르고 몸에 좋지 않은 행동들을 매번 하니 몸은 점점 망가졌지만 이상하게도 제 건강이 나빠지는 걸 보니 희열감이 느껴졌습니다.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일 등에 대한 열정도 식고 쓰레기처럼 살고 있는 자신을 보면 부모님께 너무 죄송합니다. 빨리 죽어버려야겠단 생각만 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제게 의지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우울증과 더불어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어머님 눈치를 보며 자라 철도 일찍 든 편이고 눈치도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아픈 엄마 위주로 자라다 보니 엄마에 대한 애착도 남들보다는 더 큰 것 같습니다. 엄마가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죽고 싶다는 생각, 엄마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어버려야지 같은 생각은 10살 정도부터 했습니다. 커갈수록 느껴지는 부담감도 커지고 청승 떨고 있는 제 자신도 싫고 습관적으로 자해를 하며 자살생각만 하는 저는 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사진_픽셀

 

뇌부자들의 답변

 

얼마나 괴로운 마음에 자해를 반복하고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하게 되셨는지, 사연을 읽으면서 K님께서 겪고 있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 전해져 안타까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걱정이 돼서 먼저 드리고 싶은 조언이 있습니다. 최근의 괴로운 마음 상태- 심한 우울과 자괴감, 무의욕, 전에 없이 심해진 자살에 관한 생각과 시도는 치료가 필요한 주요 우울 장애를 앓고 있는 걸로 생각되는 모습일 수 있다는 점이에요. 혹시 불면이나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식욕이 저하되거나 증가되는 등의 변화가 있다면 가능성이 더욱 높아요. 이전에 혹시 수 일에서 수주 이상의 비교적 긴 기간 동안, 일종의 에피소드처럼 지금처럼 힘든 마음 상태가 이어졌던 시기가 있었다면 당시에도 우울증을 앓고 지나간 것이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최근 외부 상황, 타지에서 혼자 지내며 겪은 경제적 어려움, 부모님과의 갈등과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었을 수 있는데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어 우울증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병이 나는 데는 당연히 타고난 체질도 연관이 있는데, 어머님이 우울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으시다면 이러한 가족력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방법으로 스스로의 몸에 손상을 입히는 자해 행동 역시 우울 상태에서 악화될 수는 있으나, 아주 흔한 증상은 아닙니다. 자해 행동에는 어릴 적 트라우마나 애착 관계의 문제, 성격 요소가 많이 관여하기에, 한번 시작이 되면 우울증이 호전된 이후에도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반응으로서 반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분노를 당한 후 시작해 심한 자해를 하고 나면 속 시원한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 건강이 나빠지는 걸 보며 희열감이 느껴졌다고 하셨는데, 많은 자해 환자분들이 비슷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어느새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 끊을 수가 없다며 괴로워하시기도 하구요.

 

정신분석적으로는 이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마음 밑바닥의 나쁘고 미운 어머니(양육자)를 향한 공격성과 분노가 현실에서 그나마 수용될 수 있게 자기를 손상시키는 행동으로 변형되어 표현된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아무리 미워도 현실의 어머니를 차마 해할 수 없기에, 자기 마음 속 엄마를 향한 공격으로서 자해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장기간의 면담 치료를 통해 이러한 마음 속 상처를 스스로 이해하게 되면서, 자해 행동이 호전되기도 합니다. 저희가 직접 분석 면담을 한 것이 아니기에 K님 상황에 이런 해석이 얼마나 알맞을지는 파악하기 어렵고, 자해에 대한 이런 해석도 있다는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사진_픽셀

 

지금의 우울감, 무기력감, 자살에 대한 심한 생각과 충동 등의 증상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울 장애의 치료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울과 불안, 연관된 여러 증상들에 대해서 약물 치료를 받으시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치료입니다. 알맞은 약(필요한 경우 약을 교체하기도 해요)을 정해 충분한 기간(통상 2개월 이후부터 본격적인 효과를 보입니다) 복용하면 점진적인 변화를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또 진료를 통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리라 판단되는 분들에게 별도의 면담 치료를 함께 권유하기도 합니다. K님은 어머님과의 관계에서 오랜 기간 상처, 갈등을 겪은 것이 지금의 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돼서, 이런 마음을 살펴보고 이해하기 위한 분석적 면담치료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다만 이러한 치료는 본인의 힘든 감정과 생각에 집중해야하는 과정이라, 심한 우울상태에서는 너무 괴로울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우울증이 어느 정도 호전된 후 시작을 고려합니다.

 

명상의 치료적인 요소를 정신과적인 치료법으로 정립한 ‘마음챙김치료’, 감정이 악화하기 시작하는 때의 징후들을 알아차려 자해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조절하는 방법과 갈등을 만드는 대인관계의 패턴을 교정하는 훈련을 하는 DBT(변증법적 행동치료), 우울감을 일으키는 부정적 믿음을 찾고 교정하는 인지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숨이 가볍게 가쁜 정도의 유산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 역시 신경전달물질들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우울 증상을 호전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아요.

 

그런데 급한 불에는 일단 소화기가 필요한 것처럼 지금 정도로 마음이 힘든 상태라면 약물 치료가 가장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망가지고 침대에만 마냥 누워 지낼 만큼 일상 생활이 어렵고 자해 행동과 자살 사고가 반복되는 지금 상태가 더 심해지거나 계속된다면, 집중적인 치료와 본인 심신의 보호를 위해서 입원 치료도 고려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루 빨리 밝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되찾아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행복한 20대를 보낼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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