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똑똑한 사람이 되려면 타고나기를 똑똑하게 태어나야 한다. 명석한 두뇌는 결국 타고 나는 것이라고들 한다. 실제 생물학적 의학적으로도 지능은 유전적인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 많이 밝혀져 있다. 콩 심은 데 콩나며 팥 심은 데 팥 나고, 세 살 지능은 여든까지 간다는 것이다. 잘난 놈이 계속 잘난 것이다.

 

물론 인간은 뇌의 발달이 모두 완료된 상태로 출생하지 않는다. 출생 후의 시냅스 형성과 가지치기의 뇌 발달 과정에는 타고난 기질 이외에도, 성장환경과 교육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아동 인지기능 연구에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더 낮은 지능을 보이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더 높은 지능을 보임이 밝혀진 바 있다. 선천적인 지능 지수 이외에도, 자라나는 환경에 의해 지능 지수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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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슬프게도 그 성장환경마저도 우리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좋은 성장환경이란 것도 당사자들에게는 기질을 타고 나듯, 그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야만 한다. 머리가 좋으려면 타고난 뇌와 훌륭한 가정환경이라는 금수저가 필요하다.

 

참 매정하기가 이를데 없는 연구결과들이다.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보건만, 개천에서 자라면 머리까지 나빠진다니 그저 막막해진다. 정말 각박한 환경에서 악을 쓰며 힘들게 자라온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지능이 덜 발달하게 되는 것일까.

 

"머리 좋다고 다 공부 잘하는 거 아니다."

"공부 잘한다고 다 성공할 줄 아니, 이것저것 산전수전 다 겪은 애들이 돈도 벌 줄 아는거야.“

 

흔히들 하는 이런 말은 사실, 머리가 썩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공부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아이들에게 때때로 위안을 주기도 한다. 또는 머리가 좋다고, 공부 좀 한다고 거들먹거리는 아이들에게 핀잔의 한 마디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게 단순히 말뿐만은 아닌 게,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들은 주변에서 실제로 그런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되곤 한다. 반드시 어릴 때 비상한 두뇌와 IQ를 자랑하던 아이들만이 성인이 되어 사회적으로 뭔가를 이뤄내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또, 다소 떨어지는건 아닌가, 이해력이 부족한건 아닌가 싶던 아이들이 사회에서는 오히려 더욱 크게 성공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곤 한다. 초등학교 동창회의 주차장에서는 누가 어떤 차를 끌고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경우들을 볼 때면, 성공과 성취를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것들에는 정말로 뭔가 우리가 측정하지 못하는 어떤 개인의 능력들이 있는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IQ나 성적만으로는 충분히 가늠하기 어려운 어떤 능력-상황 대처 능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능력, 경쟁에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능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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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동 심리정신의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한 미국 뉴욕의 한 연구팀에서는, 총 201명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2년간 추적관찰을 하며 지능과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했다. 아동들은 1)험난한,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2)상대적으로 여유있고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로 분류되었다. 2세에서 4세까지의 발달에 따른 전향적인 환경 영향을 평가했는데, 주목할만한 점은 연구에서 단순히 기존의 방식처럼 IQ만을 측정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보다 직접적인 성취능력-아동들의 문제해결능력을 평가하는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측정 도구를 도입하였다. 과연 힘든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부유하거나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에 비해 인지기능과 문제해결 능력의 발달이 저해되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연구의 주된 목표였다.

 

연구 결과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낮거나,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등)이 역시 안정적인 환경의 아이들보다 시각적 문제 해결 능력이 더 낮았다. 블록들을 가지고 제한시간 내에 어떤 특정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문제에서 힘든 환경의 아이들은 문제를 쉽게 포기하거나 잘 해결해내지 못했다. 2년동안 아이들을 추적 관찰했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 격차는 좁혀지지 못했다.

 

그렇지만, 연구팀은 블록들을 조합하는 애매한 시각적 문제해결 능력에 더해 보상이 주어지는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추가로 측정했다. 연구자들은 투명한 박스 안에 장난감을 넣어놓고, 퍼즐 자물쇠를 이용해 박스를 잠가 아이들에게 박스를 주었다. 아이들이 집중해서 퍼즐을 풀어 박스를 열면 그 안의 장난감을 꺼내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앞선 블록 맞추기 테스트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비교적 쉽게 문제를 포기했던 것에 비해, 힘든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더 오랫동안 문제에 집중하고, 문제를 해결해낸 것이다. 특정 성격을 타고난 아이들의 경우에 더 두드러진 결과이긴 했지만,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은 심지어 일반적인 방법으로 자물쇠 퍼즐 해결이 실패하자, 문제에 매달려 새로운 창의적인 방법으로 자물쇠를 풀어내기도 했다.

 

박스 자물쇠를 풀며, 부유하거나 평안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굳이 박스 속의 장난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다른 장난감을 집에서 많이 가지고 놀아봤을 수 있고, 저것 말고도 집에 다른 장난감이 많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몇번 시도해서 열리지 않는 박스를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가 딱히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지금 눈 앞의 저 장난감을 꺼내지 못하면 장난감을 손에 넣어볼 기회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좀 더 나아가, 어쩌면 눈 앞에 있는 무언가를 지금 당장 안간힘을 써서 얻어내지 못하면 다시 기회를 얻지 못했던 환경 속에서만 자라왔을 수도 있다. 블럭 맞추기 같은,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지만, 당장 장난감을 얻을 수 있다면 필사적이 될 수 있도록 자라온 것이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이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절박함을 늘 안고 살아왔을 수 있다. 고작 4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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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 이론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운송업체가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런던까지 배송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운송업체는 청어를 산 채로 런던까지 배송해달라고 의뢰를 받았지만, 매번 그 긴 장거리 이동 중에 청어가 수십 마리씩 죽어나가기가 일쑤였다. 죽어나가는 청어들 때문에 신선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고객의 불만에 업체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업체는 청어의 운반 수조에 메기를 넣었다고 한다. 이동하는 동안 청어들은 수조 속에서 메기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칠 수 밖에 없었고, 도망쳐 다닌 청어들은 결국 런던에 도착할 때 까지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메기에게 먹힌 청어들은 두어마리에 불과했고 말이다.

 

어쩌면 메기에서 잡아먹힐 위험 속에서 늘 바짝 긴장을 하고 절박하게 살아나가는 청어의 삶은 고달픈 것일지도 모른다. 가난한 환경의 아이들이 박스 속 장난감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다소 씁쓸하다. 그런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기 위해 교육 받았다기 보다는, 그렇지 않고서는 자라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아이들의 선택권 없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더한다. 우리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절박함으로 내모는 가정환경은 우리가 원했던 것도, 바꿀 수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처량하다.

 

그렇지만, 그런 진흙 같은 환경 속에서조차도 보상을 향해 노력하고, 해답을 얻어내기 위해 문제에 매달리고, 결국은 얻어내고야 마는 그 집념이야말로 진흙밭에서 오롯이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가 건져올릴 수 있는 귀중한 열매가 아닐까 싶다. 다소 씁쓸하지만, 우리가 선택했던 것은 아닌 흙탕물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직접 찾아낸 귀중한 열매이자 보상인 것이다. 비록 IQ와 성적으로는 측정할 수 없지만 그러한 열매들 속에서 우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니체는 "우리를 죽이지 않는 모든 고통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환경에서 발버둥치며 한 뼘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조 :  Jennifer H. Suor / A life history approach to delineating how harsh environments and hawk temperament traits differentially shape children’s problem-solving skills / 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 58:8 (2017)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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