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송미선 해솔마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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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 세대

N포 세대라는 말은 어느새 인가 K-POP 가사에도 나오고, 각종 기사의 한 자락을 차지하는 익숙한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단어에 대한 시사상식 사전에 나오는 정의는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최선을 다하면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는 ‘성공신화’를 믿고 열심히 달려온 부모세대와 현재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자녀 세대가 같은 공간 안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주변 상황과 여러 가지 정보를 통해, 끝까지 노력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사회의 변화를 느끼지만, 내 아이만은 대다수가 바라는 삶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대 간의 충분한 소통,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서로에 대한 실망, 좌절, 외로움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포기해버리는 아이

소아청소년기의 정신 건강이란 연령에 맞는 발달 과제를 잘 이행하고 있을 때 지켜집니다. 아이들의 발달 과제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이를 쫓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꿈을 꾸고 이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저는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늘 ‘너의 꿈은 무엇이니?’하고 물어봅니다.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그건 어렵데요.
제가 수학을 못하거든요.’

‘저는 도서관에서 책을 관리하는
사서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뉴스를 보니 그 직업은
이제 없어진다고 해요.’

‘지금 공부해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가기 어려워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가느니 공부
안하는 게 나아요.’

‘제 꿈은 잘 먹고 잘 사는 거에요.
무슨 일이든지 상관은 없어요.’

‘열심히 하면 안되요.
더 많은 것을 바랄 테니까요.’


제가 진료를 하면서 이따금 암울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은, 시도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일들이 점차 어린 아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것 때문입니다. 대학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대란에 뛰어든 청년뿐만 아니라 매달 영어학원에서 테스트를 받으며 마치 자신의 가능성이 저울질 당하는 느낌을 받는 초등학생들도 포기라는 선택을 쉽게 해 버립니다. 자신의 힘으로 시도를 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 안에서의 가능성을 찾아내기 보다는, 성공이 확실하지 않는 일은 아예 근처에 기웃거리지 않는 것입니다. 불확실성을 견디며 노력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것이 주변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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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기 어려운 부모

‘저는 이제 아이한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안 시킬 수도 없잖아요.’

‘왜 우리 아이는 해보려고 하지도 않는지
너무 답답해요.’

‘우리 아이가 남들처럼만,
평범하게 살았으면 해요.’


아이가 쉽게 포기하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은 아이가 풍요로운 분위기에서 자라 너무 나약하다고 비난합니다. 인공지능 사회가 되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달라지고 있지만 부모님은 자신이 미래를 위해 준비해 온 방법을 아이에게 요구합니다.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부모가 늘어나며 사교육 시장은 팽창하였고, 경쟁이 심해지며 우열을 가리기 위해 더욱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아이들은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소수라는 것도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다양한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적고, 지금 대열에서 낙오하게 되면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는 불안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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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준을 맞추는 것에 대한 포기

과학기술의 발전, 인간 수명 연장,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인해 집단 전체가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시대입니다. 하지만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생존의 불안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쟁이라는 종착역 없이 달리는 기차에서 내리기 위해서 이제 다양성에 대한 고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이들이 먼저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맞춰야 하는 타인의 기준은 대체로 부모의 것입니다. 부모가 자신만의 가치관을 추구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자신의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어른들이 먼저 서로 눈치를 보며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전쟁을 하기 보다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담론을 해야 할 때입니다.

 

 

저자_송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해솔마음클리닉 인천클리닉 원장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삼성인지감성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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