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송미선 해솔마음클리닉 원장]

 

‘**엄마들의 모임’ ‘교육정보 커뮤니티’ 등의 포털 사이트 카페에서는 아이들 교육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가 넘쳐납니다. 전국의 많은 엄마들이 비슷한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요.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곳마다 다양한 정보가 오고 갑니다. 학원 정보, 학교 교사에 대한 평가, 아이들의 교우관계, 진로 고민, 아이들을 위한 영양관리 등 많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내용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아이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공통분모로 만난 관계이긴 하지만 이 또한 인간관계에 해당하는데 대화의 주제는 엄마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느끼는 고민, 동질감을 비롯해 대체로는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잘 지켜낼 수 있을까’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서로에게서 정보를 탐색하는 것이 주가 됩니다.


“저는 이제껏  @@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어요.”
“제가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어요.”
“제가 이렇게 하는 게  @@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요?”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세요.”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을 키우시는 어머님이 걱정과 염려를 한가득 안고 상담을 하러 저에게 오셨습니다. 어머니의 고민은 이렇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직접 아이에게 받아쓰기, 구구단을 가르쳤고, 고학년 이후에는 부지런히 정보를 찾아내서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짜 왔어요. 몸에 좋다는 유기농 식품만 먹이고 행여나 아이가 또래보다 키가 덜 클까봐 성장 클리닉에도 데려갔어요."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어머님의 삶의 중심에는 늘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노력을 하신 덕분에 아이는 시행착오를 덜 거치고 중학교 시절 내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늘 우수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만나는 주변인이 내 아이를 칭찬할 때마다 어머님은 큰 기쁨과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자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평일에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오면 바로 자야하고, 주말에도 학원 가느라 저와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없어요. 유일하게 주말에 같이 식사하는 동안에도 아이가 핸드폰만 보고 있고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아요. 우울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요."

 

아이의 말수가 줄고 엄마에게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면 어머님의 걱정은 점점 더 커졌다고 합니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아이를 계속 신경 쓰게 되고, 결국 어머님은 아이의 속마음이 알고 싶어졌고, 지금 아이의 심리상태가 문제가 있는지 걱정하셨습니다.

 

사진_픽셀

 

아이가 삶의 가장 큰 목적이자 이유였던 어머님은, 아이와의 거리감을 느끼면서 내면의 균형이 깨지고 혼란스러워지셨습니다. 아이에게 몰두하느라 소원해졌던 배우자와의 사이를 들여다보니 더욱 외로워지기도 합니다. 이제 자신에게로 관심을 옮기고자 교양 강좌도 듣고 몸도 가꾸어보지만 허탈한 감정에 사로잡힌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아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 시간이 허무하다고도 하십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 곧 대학 입시를 앞둔 중요한 시점에 행여나 아이에게 해주어야 하는 것을 놓치는 게 아닌가 싶어 다시 조급해진다고 합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과 아이가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같음에도 엄마와 아이는 마음 편하게 대화를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분명 엄마의 넘치는 열정과 관심으로 자라왔으니 더 소통이 원활해야 할텐데, 왜 아이는 대화를 않는 걸까요. 부모님과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왔으니 스스로 만족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엄마는 왜 허무함을 느낄까요.

 

사진_픽셀

 

소아기, 청소년기의 중요한 발달 과제를 엄마의 도움으로 해결해 오던 아이는 고등학교에 진학 한 이후 엄마의 도움을 받기 힘든 상황이 되면서 오히려 혼란스러워합니다. 학업을 비롯해 진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 도움보다 자신의 노력과 생각, 선택, 판단이 필요해지는 상황은 자신의 문제를 다루기에도 아이는 벅찹니다. 게다가 자신을 볼 때마다 걱정하는 엄마를 보면 엄마와 대화하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엄마 또한 아이가 힘겨운 마음을 내비치면 자신이 해결해 주어야 할 것 같아 마음에 답답해지고 속상해집니다. 이러한 엄마 모습을 보면서 아이의 마음은 더 무거워지고요.


“엄마한테 이야기하면 너무 걱정할 것 같고, 서로 부담스러워요.”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으니 서로 이야기 안하는 게 나아요.”

 

엄마가 아이의 삶에 애정으로 관여하고 개입하여 아이가 스스로 관리하는 기능을 키워내는 것은 초등학교 기간 안에 끝내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아이가 커 나가면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깨닫고 한 발자국 물러서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의 내적 성장을 위한 길입니다.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하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아이의 내적 성장을 위한 초석은 엄마 자신도 본인의 삶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내면의 중심에 아이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엄마 스스로 추구하는 삶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방법을 차근차근 찾아나가야 합니다. 아이의 눈에 자신의 성공여부가 엄마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의 주체적 삶을 보며 아이 자신의 삶과도 스스로 타협을 이뤄나가는 방식을 고민하게 해야 합니다.

 

사진_픽셀

 

촘촘히 나무가 서로 가깝게 얽혀 있으면 마찰에 의해 오히려 불이 난다고 하지요. 엄마와 아이는 한 숲에 있는 각자의 나무라 생각됩니다. 불안정한 사회에서 아이에 대해 느긋한 마음을 갖는 일은 쉽지 않지만, 아이가 홀가분히 자신의 삶에 임하기 위해서는 엄마와 아이의 사이가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무들의 간격이 산불을 지키듯이 엄마가 삶의 주체를 자신으로 삼고 엄마의 정체성을 확고히 보여주는 것이 엄마와 아이의 사이를 지키는 길입니다. 엄마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건강하게 독립하고 난 이후의 삶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글쓴이_송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해솔마음클리닉 인천클리닉 원장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삼성인지감성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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