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주는 사랑 2.

아버지가 교육을 받고 계시던 무렵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와 형과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중에, 형이 어머니에게 “엄마! 아빠가 요사이 바뀌고 있어.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다. 어머니가 너희와 사이가 좋아지는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니 형이 "엄마도 그 교육 받았으면 좋겠다" 라고 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는 무섭고 엄한 아버지라서 교육을 받고 착하고 어진 아버지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형이 자상하고 인자한 자신에게 똑같이 교육을 받으라고 하니 의아해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형에게 물었다. “왜, 내가 너에게 잘 못해 주는 게 있니?”라고 묻자 형은 “아니요, 엄마는 나에게 참 잘해 준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럼 왜 나에게 그 교육을 받으라고 그러니?"하고 물었다. 형은 “그냥” 이라고 답했다. 어머니는 삐치셨다. 어머니는 경산에서 약국을 하고 계셨다. 많이 바쁘셨다. 그래서 형에게 “내가 그 교육 받을 시간 어디 있어?”라고 하니까, 형이 “엄마 이 아들이 중요해요, 돈이 중요해요?” 했다. 할 말을 잃은 어머니는 그날 당장 교육을 신청하셨다. 우리 형님 참 까다로웠다.

어머니는 교육을 받으면서 그 내용이 자신이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해온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배우지 않고도 거의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왜 아들이 교육을 받으라고 했을까 궁금하셨다. 며칠이 지난 후 저녁 가족모임 자리에서 어머니는 “너희는 엄마가 참 잘 해주고 또 잘 들어주고 좋은데 왜 엄마가 교육을 받았으면 좋다고 했니?”라고 물었다. 형은 “엄마와 이야기하면 답답하다”고 했다. 지금도 어머니는 책을 많이 읽고 어느 누구와도 대화가 잘 통한다. 그럼 왜 형은 어머니와 이야기하면 답답하다고 했을까. 형의 이야기는 엄마가 너무 잘해주니까 엄마의 부탁을 거절할 때 힘이 들고 답답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몹시 추운 겨울 날 축구를 한다던가 길거리 농구를 하려고 하면 어머니가 “추운데 감기 걸릴라, 집에 있어” 라고 할 때 거역하지 못하고 따라야 하는 마음이 답답하다고, 혹은 자전거를 타고 친구와 놀러가려고 하면 “자전거는 위험하니까 타지마라” 라고 할 때 답답함을 느꼈다고 했다. 참 중요한 이야기이다. 사랑이란 미명 아래 아이를 꼼짝 못하게 하지 않았는지, 아이를 조종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7급 공무원 - 마마보이 공작원

친구 이야기이다. 지금도 친구에게 동창회 모임에 가자고 하면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고 온다. 효자다. 동창회 모임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겨우 이야기를 한다. 부인의 불만이 이루말할 수 없이 컸다. 얼마 전 저녁 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모친이 가지 말라고 하니 못 간다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교에 다닐 때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은 착한 아이가 마마보이가 되어 어른이 되어도 일일이 부모의 허락을 받아서 홀로서지 못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옛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방식보다도 요즘은 오히려, 어머니의 무조건적이고 따뜻한 사랑이 더 많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럼 어머니의 무조건적, 따뜻한 사랑은 무엇이 문제가 되는 걸까? 가장 표면적으로는 아이를 마마보이로 만든다는 것이다. 아끼고 보호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것만이 사랑일까? 아니다. 사랑은 홀로 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설사 어머니가 없더라도, 아버지가 없더라도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사랑을 주고 생명을 주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아끼고 보호해주고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사랑은 내가 없어도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생명을 주는 사랑이다. 생명을 준다는 것은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것, 이것이 ‘교육’이다. 옛날처럼 자식을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끊임없이 배워야한다. ‘교육 – 생명을 주는 사랑’의 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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