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뇌부자들 [12화 Part 2]

 

K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초반의 직장인 입니다. 저희 회사에 특이한 직원이 한 분 있어서 이렇게 사연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 하나씩 있다지만, 직장생활 칠년 차 이런 사람은 처음 봅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그녀, A씨는 얼굴도 예쁘장 하고 말투도 사근사근합니다. 처음 입사하자마자 전 직원에게 먹을 것을 돌리더라구요. 원래 저희 회사 그런 분위기는 아닌데.. 그땐 그냥 좀 친절한 사람인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로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과자를 돌리거나 커피를 사주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생일 선물을 챙기기까지 하더군요. 제가 이유 없이 베푸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편이라 불편했지만, ‘저 사람은 원래 주변을 챙기고 신경 쓰는 좋은 사람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입사 6-7개월이 지난 뒤 A씨의 업무가 조금 많아지기 시작할 때였을까요? ‘업무가 힘들다, 자신이 업무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한다’라며 하소연하기 시작했죠. 거기까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팀장, 부장 심지어 전무님까지 회사 내 모든 사람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리고 처음엔 본인의 처우에 대해서만 말하더니, 그 다음엔 사람들과 있었던 일이나 소문을 과해석하여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진_픽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A씨는 타인들과 업무적으로 의견이 부딪히는 일이 생길 때면 자기 말이 맞다고 해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당신 생각에도 제가 잘못인 거 같나요?"로 시작해서 상대의 말은 조금도 듣지 않고 계속 본인의 입장을 내세우기만 반복하더군요. 듣는 상대가 지쳐 조금이라도 냉정하게 말하는 날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 가서 "섭섭하다" 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사실 일이라는 게 서로 협조하며 하는 거고, 일하다 보면 요청을 거절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녀는 조금이라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퇴근 후에도 연락이 와서 “그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윗사람이 허락해줬다 왜 그런거냐” 라는 식으로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반박을 하면 그 말을 조금씩 바꾸고 자기 식으로 해석해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니니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친절하고 무언가 나눠주기 좋아하는 그녀, 하지만 조금이라도 거절을 당하면 인정 받을 때까지 집요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고 다니는 그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힘들다며 주변 사람에게 끊임없이 하소연 하고, 잘못했다는 지적을 받으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본인이 맞다고 주장하는 분에 대한 사연이네요. 사연 속 주인공보다 정도는 덜하겠지만 이러한 성격을 가진 분은 주변에서 한 명쯤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크다는 점 입니다. 사연의 주인공인 A양이 업무의 힘든 점을 이야기 하고 다녔던 것은 일을 적게 하고 싶어서이기보다는, “너 정말 대단하다, 힘든 일인데도 잘 해내고 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겠지요. 또 입사하자마자 과자를 돌리고 커피를 사줬던 것 역시 이러한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보입니다. 정신과에서는 이처럼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서고 싶어하고 사랑과 인정에 목말라 있는 성격의 유형을 연극성 인격(histrionic personality) 이라고 부릅니다.

 

사진_픽셀

 

연극성 인격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피상적인 감정교류만으로도 상대방과 친밀하다고 느끼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인간관계에 있어 거리 조절을 잘 하지 못하고 실제보다 자신과 가깝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건데요, A양이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생일 선물을 사주었던 것은 이런 경향이 표출된 것이 아닐까 싶네요. 또한 연극성 인격을 가진 사람들은 ‘연극’ 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감정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눈에 띄게 화려한 화장이나 의상, 악세서리를 착용함으로써 타인의 시선을 끌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적절하게 표출된다면 타인에게 매력적인 인상을 주기도 해서, 실제로 성공한 연예인들 중에는 연극성 인격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연극성 인격은 어떻게 형성 되는 걸까요? 정신분석학적인 설명을 여성 기준으로 간단히 드려 보겠습니다. 어린 여자아이는 어머니의 섬세하고 반응적인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데요, 어머니가 지나치게 연약하거나 아버지에 비해 집안 내에서 현격하게 낮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때엔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지 못할거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 결과 어머니를 향한 애정을 거둬들이고 대신 신체적으로 강인하고 권위적인 대상인 아버지의 보살핌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요. 귀엽게 웃기도 하고, 가끔은 아버지한테 안기면서 애교도 부리고요. 이런 행동이 성인기까지 이어지면 결국 신체적 매력이나 나긋나긋한 말투, 이런 것들로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는 패턴이 고착화 되게 됩니다. 또한 스스로를 강한 아버지와 대치된,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기저에는 열등감이 자리하게 되죠. 그래서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인정에 끊임없이 의지하려 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연극성 인격을 지닌 환자 분들은 감정 표현이 극적인 반면 핵심적인 내용을 잘 이야기 하지 않고, 치료자의 말을 왜곡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실 정신과 의사인 저희들도 면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이러한 성격적 특성은 주변 사람이 지적을 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A양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지내고, 그 분이 하는 이야기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말라는 말씀을 K씨께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도 A양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또 다시 해온다면, 그 내용을 문제삼기 보다 이야기를 왜곡해서라도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강한 욕구가 A양의 마음 속에 있다는 걸 떠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마 A양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이전보다는 조금 덜 해지지 않을까요? 저희가 드린 이야기가 K씨께 아주 속시원한 대답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뇌부자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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