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태웅 아이나래 원장]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모’가 되었다고 느끼고, 주변으로부터 ‘부모’라는 호칭을 듣게 됩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곧 부모가 되겠구나’ 라고 느끼는 건 아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엄마의 뱃속에 생기고 나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10달이라는 충분한 마음의 준비기간이 있었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부모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진_픽셀

적어도 저희 부부에게는 그랬습니다. 6년전 첫째를 낳았을 때를 생각해보면 저희 부부는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의 역할을 시작해서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안절부절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부모가 대신해서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것도 훌륭하게 말입니다. 누구나 아이를 낳게 되면 좋든 싫든 간에 ‘엄마 또는 아빠, 부모’라는 새로운 호칭을 얻게 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현대 사회가 되면서 흔히 말하는 어른(성인)으로 변화되는 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물론 부모가 되는 시기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독립적인 하나의 성인이 되는 조건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적인 독립이며 다른 하나는 심리적인 독립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결혼 적령기에 이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하여 제대로 독립을 한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주제로 생각되어 다음에 한번 따로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실제로 결혼을 하여 원가족과는 다른 한 가정의 가장이나 배우자의 역할을 부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회피하거나 부인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아직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의존성을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말입니다. 이런 경우 신체적으로는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될 능력이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 자녀와 적절한 애착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준비 없이 ‘부모’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저희 부부는 각자 떨어져 레지던트를 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말부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핑계 같지만 하루하루 병원 일에 치여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임신기간 동안에도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할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채 그야말로 아이를 낳고 기를 최소한의 준비밖에 못했던 거 같습니다. 속으로는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도 있고 부모님도 옆에 계시니 어떻게든 크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착각이었습니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헤아릴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을 얻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을 뿐 제대로 아이를 안는 법도 몰랐고 산부인과를 퇴원하고 막상 집에 데려와서는 아이가 다칠까 걱정되어 목욕도 제대로 못 시키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부모일 뿐이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도록 DNA에 코딩되어 있지만 다른 포유류과 달리 DNA 어딘가에 코딩된 양육 능력이 없기 때문에 출산 전후 양육에 대해서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 부모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책임과 역할을 부여 받습니다.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등의 보모의 역할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세상의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놀이를 같이 해주는 친구의 역할, 그리고 아이의 기질과 특성을 파악해서 적절히 훈육하는 교육자의 역할 등 1인 다(多)역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만큼 부모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고, 이에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부모 스스로가 의존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자신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아이에게 ‘부모’ 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 시간이 필요합니다.

: 부모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글 이나 칼럼, 양육지침서, 주변 어른들의 조언 등은 시간을 단축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자녀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의 방식을 만드는 데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어떠한 양육지침서도 매 순간 벌어지는 현실 속의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반복되는 실수와 잘못을 하며 새로운 경험이 많아지고 이에 충분히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 과정 속에서 결국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매일 벌어지는 전쟁 같은 육아에서 버텨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 있게 하고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변(특히 배우자)으로부터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부모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변이나 대중 매체를 통해서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완벽한 부모’ 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면서 점점 양육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그러면서 ‘내가 과연 부모로서의 자격이 있나?’, ‘잘 해 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스스로 ‘난 그럴 수 없을 거야.’ 라고 대답하며 좌절합니다. 저 역시 매일 같이 두 딸을 키우면서 ‘소아 정신과 의사로서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는 게 맞나?, ‘누가 주변에서 비웃지는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걱정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내려 놓기’ 입니다. 종종 진료실에서 첫째 아이와는 달리 둘째, 셋째 아이의 경우 키우기가 편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큰 거 같다고 이야기하시는 부모님들을 만납니다. 아무래도 첫째를 키우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마음이나 계획대로 아이들이 크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여유를 가지게 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대신해서 모든 일들을 해주는 건 불가능하며 불필요합니다. 오히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뺏고 새로운 적응 능력을 키우는데 방해가 됩니다. 결국 부모는 과도한 기대와 책임감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세요.

: 아이를 위해서 부모만의 시간을 만드세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한 가지 일을 해결하면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비유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이고, 스포츠로 따지자면 그야말로 장기전인 셈이죠. 그런 경우 초반에 너무 힘을 빼서 지치게 되면 중반 이후에 고전을 하다가 결국 지게 됩니다. 육아도 마찬가지 입니다. 계속해서 일이 생기기 때문에 일관된 양육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적절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 아이가 중심이 되어 그만큼 부모의 희생이 뒤따르기는 하지만 반드시 아이에게 종속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출산 후나 스트레스가 많이 생기는 시기에 자신만의 활동이나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산후 우울증이나 육아 우울증에 빠지기 쉬워집니다. 지금 하지 못하면 나중에도 못 하게 되므로. 이런 저런 핑계를 대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본인 만의 시간을 만들어 보세요.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자녀와 건강한 애착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절대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고 놀라운 경험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그 문제에 압도되어서 지치거나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나?’, ‘부모로서 자격이 부족한가?’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옆에서 보기에 늘 완벽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부모일지라도 이런 고민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면 혼자서 고민하지 마시고 아이에 대해서 배우자와 함께 상의하게 되면 해결책을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이에 대해서 생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 자체로도 이미 훌륭한 ‘부모’가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강태웅 :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전임의 수료,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평생회원,
대한청소년정신의학회 평생회원, 아동정신치료학회 정회원, 현재 아이나래 정신건강의학과 청주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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