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약국(YG) 엔터테인먼트" "양귀비(YG) 엔터테인먼트"

 

얼마 전 빅뱅 탑의 마약 적발 뉴스에 대해 최근 인터넷 누리꾼들이 조롱 섞인 비난과 함께 유행시키고 있는 단어들이다. 세계적인 인기그룹 빅뱅의 멤버 탑은 얼마 전 대마초 흡연 혐의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소속사 또한 이에 대해 혐의사실을 인정했다. 지난번에 이어 YG 소속 연예인만 세번째 마약류 사건이 터지면서 인터넷에서는 YG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사진_YTN 방송화면 캡쳐

 

이번 사건으로 인한 YG로서의 가장 큰 타격은 무엇보다 기업의 도덕적 이미지 훼손일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지드래곤, 박봄에 이어 YG에서만 유독 관련 뉴스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뿐 아니라, 사건 이후에도 소속사가 보여주었던 회사 차원에서의 미진한 대응과 당사자들의 빠른 복귀 활동 등에 대한 대중의 불편한 시선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반복은, 돈이 있고 힘이 있는 대형 기획사라면 불법적인 일도 금세 무마시킬 수 있다는 식의 모럴 해저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약 범죄를 일으킨 구성원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식의 태도를 보이고, 이러한 태도 이후에 여전히 같은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며 심화되는 패턴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남편이 술만 안 마시면 그래도 참 성실하고 착해요"

"남편이 중독 수준은 아니에요. 안 마실 때는 딱 끊고 안 마셔요"

 

심각한 수준의 알코올 의존으로 인해 개인과 가정이 파탄의 지경에 이르러 병원에 내원하게 되는 순간에도, 환자에 대해 보호자들은 종종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진료 현장에 있다보면, 명백한 문제들이 알코올이나 물질 사용으로 인해 반복되고 있음에도 이 문제를 부정하고 덮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보호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알코올 의존으로 병들어 있는 것은 환자 이지만, 환자의 병든 마음을 감추기 위해 우왕좌왕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은 보호자인 경우가 많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하나의 병리로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물질사용은 환자와 주위 사람, 가족들까지 모두를 무저갱처럼 깊은 마음의 병으로 천천히 끌어 내린다.

 

"공동 의존(Co-dependence)"라는 개념은 이와 같은 현상을 대해 잘 설명한다. 1930년대에서 50년대에 이루어진 알코올 중독자 아내들에 대한 연구에서 공동의존의 패턴이 발견되어 학술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점차 대중을 통해 그 개념이 확장되었다. 1983년에 미국의 심리학자 Janet G. Woititz가 저술한 Adult Children of Alcoholics에서는 공동의존의 개념을 인용하여 알코올 중독에 대해 설명하였고, 당시 뉴욕 타임지에 48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공동의존의 핵심은 문제가 되는 자신을 보호하거나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 오히려 그 문제를 점차 악화시키는 역기능적(dysfunctional) 가족의 행태가 된다는 것이다.

 

사진_현장르포 동행 제95화 알콜릭 내 남편 (2009년 12월 10일 KBS 1TV 방영 / 제작연출 :타임 프로덕션 / 연출 남기세 / 글, 구성 김은희)_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과 그의 가족이 헤쳐나가는 술과의 힘겨운 싸움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부인의 행동 즉, 공동 의존의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흔한 공동의존의 형태 중의 하나로 뒷감당(enabling)을 예시할 수 있다. 가족들이 중독환자의 행태를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덮어버리려 하는 태도(뒷감당하는 태도)가 환자로 하여금 더욱 물질 남용에 빠져들게 만들고(enabling) 결국에는 문제를 더욱 곪게 만드는 과정이다.

 

알코올 의존 환자가 과도한 음주로 빚을 져도 가족들이 빚을 계속 갚아 준다던지, 돈을 주어도 족족 술을 사는데 쓰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돈을 벌어서 환자에게 주는 등의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또는 알코올로 인해 직장에 출근을 못해도 가족들은 이를 감추고 아파서 결근을 하게 되었다고 대신 변명을 해주기도 한다. 음주로 인한 문제점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행동들이지만 결국은 오히려 환자의 음주를 도와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

 

많은 경우 이와 같은 병리적 가족 행태는 환자의 문제를 부정(denial)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무의식에 기인한다. 환자의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내 남편이 그럴 리가 없어" "내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식의, 논리를 앞서는 무의식적 방어기제로서 작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의 방어기제는 많은 경우, 보호자들 자신의 죄책감에 대한 도피처로 기능하기도 한다. 환자의 문제가 사실은 나의 책임이 아닐까, 라는 불편한 무의식으로부터 스스로를 떨쳐내기 위한 도피처로서 말이다.

 

내조를 잘 하지 못해 남편의 사업이 실패했고, 그래서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 마약에 중독이 되어버린 아들을 둔 어머니의 경우, 어린 아이를 홀로 외국으로 유학 보냈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 남편의 음주량이 조금씩 늘어나고, 사고가 잦아지는 사실들을 알면서도 조금씩 묵인하여 사태를 키웠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 이러한 무의식적인 죄책감들은, 내 남편이, 부인이, 아들딸이 중독에 빠졌다는 사실에 대한 부담감과 뒤섞여 가족들의 눈을 가린다. 외부의 개입이, 실질적인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케 한다. 그렇게 더욱 심화되는 문제는 그 부담감과 책임감을 더욱 자극하며 악순환의 꼬리를 물린다.

 

물질 남용, 의존 환자의 치료에서는 개인에 대한 약물적 행동적 치료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공동 행태에 대한 개입이 필수적이다. 중독을 보이는 환자 자신에 대한 접근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나 향후의 재발에 대한 예방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병리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행태가 현재의 상황이 병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임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는 병식(Insight) 획득의 과정은 환자 혼자서만 해낼 일이 아닌 것이다.

 

환자를 감춰두고 감싸기에 급급한 가족들 역시 곪아가는 상처를 직시할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만 한다. 책임이라는 막중한 임무는, 오롯이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용기를 갖췄을 때에만 그 무거운 죄책감을 덜어낼 틈을 내어준다. 환자와 가족. 공동체와 사회. 모두가 함께 받아들임의 과정과 굴레를 벗어날 새로운 발돋움이라는 발단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

 

YG 엔터테인먼트는 단순한 연예기획사를 넘어 우리나라와 세계에 압도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하나의 문화 공동체이다. 연예계의 스캔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이지 않는 가십거리이다. 그럼에도 일련의 사건들로 YG가 유독 비난을 받는 것은 그동안 그들이 보여주었던 역기능적인 공동 행태들 때문일 것이다.

 

이번 빅뱅 탑의 혐의에 대해서 YG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혐의를 부인하던 지난번과 달리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했다. 회사에 대한 비난이 일파만파 부풀어오르고 있는만큼, YG에서도 그동안의 모습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대형 기업으로서의 모범이 될 태도를 보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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