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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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시절, 같은 동아리 선배 중에 그런 선배가 있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에 꼬박꼬박 얼굴을 내밀며 나오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거나 참여하는 것도 아니면서 특정 안건이 있거나 결정해야 할 사안이 있을 때 구석 자리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그게 되겠니?” 혹은 “이런 순진한 녀석들, 너흰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라며 세상만사를 통달한 듯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선배 말이죠.

당시 정말로 순진무구했던 후배들은 ‘저 선배는 정말 세상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나 보네.’라며 그를 우러러보거나 왠지 나쁜 남자의 매력에 끌린다며 남몰래 흠모하는 여학생도 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상실한 채 또다시 실패하거나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 자기만의 성 안에 갇혀 있던 지독한 냉소주의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동아리 모임에 균열이 있거나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힘을 모아야 할 때, 결국 구성원들 간에 화해하도록 독려하며 다시 모두 함께 축제의 장에서 화합하게끔 이끌어 준 선배는, 평소 궂은일을 도맡으면서도 생색내지 않고 힘들어하는 후배에게 언제나 꾸준한 관심과 도움이 되는 조언을 아끼지 않던 마음 따뜻한 선배였음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처럼 어떠한 행위나 실천, 관계에 대한 혹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냉소주의적인 시각은 인간에 대한 신뢰나 특정한 신념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일이나 친밀한 관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기보다는 불신과 분노를 발판 삼아 무관심하고 냉담한 태도로 일관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냉소주의(cynicism)란, 다른 사람의 의도나 세상에 대해 불신하거나 비관적인 관점을 가지는 마음의 상태를 뜻하며 냉소적, 영어로는 ‘시니컬(cynical)’이라는 표현은 쌀쌀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어 비웃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이렇게 시니컬한 사람들은 타인의 동기나 행동의 선의와 순수함에 대해 자주 의심하고, 사회의 보편적 가치나 제도, 요구 등을 무시하거나 비판하고 때로는 조롱하는 모습마저 관찰되기도 하죠. 

 

그렇다면, 이처럼 냉소적인 태도나 관점을 취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러한 표면적 태도의 이면에는 어떠한 심리가 숨겨져 있는 걸까요? 시니컬한 사람들은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 자체가 거절에 유독 민감하거나 누군가로부터 거부당하거나 배신당한 경험이 빈번한 경우 등 사람마다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안정 애착을 형성한 사람에 비해 시니컬한 태도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요.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애착이론의 선구자인 존 볼비(John Bowlby)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동들을 치료했던 경험을 통해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절대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냉담한 태도를 취했으며, “무관심의 가면 뒤에는 심한 고통이 있고, 냉정한 태도 이면에는 실망감이 숨어 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주 양육자였던 부모로부터 잦은 거부를 당했던 경험과 그로 인해 생겨난 불신과 실망의 마음이 점차 세상이나 타인으로부터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두꺼운 자기방어의 벽을 세우며 냉소적으로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니컬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는 이유나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척이나 다양하므로 불안정 애착 요인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시니컬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냉소적인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명제가 성립될지언정, 상처받은 사람이 모두 냉소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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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냉소적인 관점을 지니는 것이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이자, 삶에 대한 유익한 태도일까요?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조던 피터슨(Jordan B. Peterson)의 저서  『질서 너머(Beyond Order)』라는 책에는 자신의 직업이 대해 냉소적이었던 한 청년이 그의 강의 영상을 보고 직업에 대한 태도를 바꾼 후 자신의 삶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청년은 조던 피터선의 강의를 본 후에 평소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직업은 물론 삶에 대해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자신의 관점과 행동을 변화시키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청년은 이후로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스스로 비하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매사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기 시작하자, 빠르게 고속 승진하게 되었으며, 지금 현재 자신의 자리와 인생에 생각보다 더 큰 가능성과 기회가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는 물론 자신의 직업적 위치와 사회제도에 대해 냉소하는 대신 겸손한 자세로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점차 성공의 길이 열렸던 놀라운 경험을 몸소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삶에 대한 냉소적인 관점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던 사람이 그러한 태도를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삶을 낙관하고 무언가를 열망하며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또다시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타인과 세계에 대한 실망감을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과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냉소하는 삶의 자세로 결국 우리가 기대하고 취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요.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과 대상에 대해 냉소하게 될 때, 우리는 삶에서 기꺼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나 위안, 서로에 대한 관심과 우정, 배려와 사랑처럼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고, 분열과 고독, 무력감과 공허와 같은 것들이 우리의 내면과 삶 속으로 스며들지 모릅니다. 

만약 여러분도 지금 이 순간, 혹은 언젠가부터 냉소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냉소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냉소를 냉소함으로써 바뀔 수 있는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에 눈을 돌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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